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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에 있어 독립?

<황금철인>과 <은하전설 테라> 사이의 시간

by 그냥저냥 ㅏ랑


(아래는 2024년 10월 8일 오오극장에서 <황금철인>(1968)과 <은하전설 테라>(1983)의 상영 후 진행한 강연의 원고를 정리한 글이다.)






21세기 이전의 한국 애니메이션, 그것도 극장용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들을 오늘날의 우리가 보는 건, 정말이지 참으면서 봐야 할 정도로 힘든 일입니다. 제 또래인 90년대생들에 있어 몇 안 되는 예외라면, 과거 명절마다 KBS나 투니버스 같은 TV 채널에서 틀어줬던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정도일까요? 사실 저도 이런 애니메이션들을 순전히 재미로 보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약간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저도 당장 오늘 저희의 화두인 <황금철인>과 <은하전설 테라>도 지난 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리마스터링해 공개하기 전까진 전혀 본 적이 없으니 말이죠. 차라리 <은하전설 테라>를 갖고 합성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현명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 <황금철인>과 <은하전설 테라>를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보고 논할 필요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출처: SBS 뉴스)

제게 이 두 SF 애니메이션은, 그리고 특히 <은하전설 테라>는, 원래 제가 갖고 있던 가설을 확신으로 바꿔준 작품이에요. 어떤 가설이냐 하면, 한국 애니가 이러나저러나 결국 일본 애니의 한 갈래라는 생각 말이죠.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국내 오타쿠들은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를 비판하는 데에 몹시 열을 올립니다. 그중에서도 90년대 이전 작품들에 대해선 잔인할 만큼의 공격성을 보이는데요, 가령 <로보트 태권브이>의 김청기 감독을 비롯한 40년대생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에 대해, '일본 애니의 표절로 점철된 아류를 만들었으면서 자기네는 독자적인 한국 애니를 만들었다는 구라를 쳤다'라고 비난하고, 심지어는 아예 역사에서 이들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거죠. (그들의 중요성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김청기나 임정규에 대한 평전이나 단독 주제의 연구가 긴 분량으로 발표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이는 오타쿠뿐 아니라 (문화가 새로운 투쟁 현장으로 인식된) 90년대의 논객들에게도 상식적인 반응이었고, 또한 지금의 우리에게도 상당히 존속되고 있습니다. 몇 안 되는 예외가 김청기에 대한 구원비평을 싣고 나아가 (태권브이 동호회와의 이른바 '협업'을 통해) <로보트 태권브이>의 판권 정리와 복원 작업 그리고 (불완전한 판본이긴 했지만) 물리매체 출시까지 시도했던 «딴지일보»죠.


사실로만 따지면, 이런 표절 비판은 틀린 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분명 그걸 빌미로 옛날 한국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을 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선 좀 달리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한국 애니에 대한 독립과 선진화의 의지가 곧 한국 애니를 일본 애니의 한 분파가 되게끔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즉 당시의 한국 애니들이란 (이미 보편적인 것이 된) 일본 애니의 요소를 한국적 환경에 이식하려는 시도였다면? 다만 당시 애니메이터나 연출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말이죠. '표절이다' 혹은 '그 속에서도 개성을 추구했다' 혹은 '표절의 결정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같은 환원을 넘어서, 당시 창작자들의 주체적인 애니메이션 만들기가 왜 표절의 모양새를 띄게 되었는지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분명 상당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이어질 얘기들을 보편적인 한국 애니메이션사 서술에 대한 불평 정도로 생각하며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이 당시 한국에선 만화영화란 명칭이 일반적이었습니다만, 이 자리에선 최근의 관습에 따라 애니메이션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또 명칭의 번잡스러움을 피하고자, (애니메이터와 연출가를 포함하여) 당시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던 이들을 모두 창작자로 일단 부르겠습니다.


먼저 그 당시 애니메이션 시장을 돌아볼까요? 1960년대로 돌아가보면 디즈니의 61년작 <101마리의 달마시안>같은 극장용 애니나 <스파이더맨>과 <핑크 판다> 같은 TVA까지, 전반적으로 저연령층 대상의 코미디나 슈피히어로물이 제작되고 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미국이 한편에, 그리고 63년부터 <철완 아톰> TVA를 필두로 급속도로, 엄청나게 발전한 일본이 한편에 서서 시장을 거의 좌지우지 헸습니다. 오늘날 애니메이션 시장 구도는 사실 60년대부터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었던 거죠.


<철인 28호(鉄人28号)>

SF 애니메이션으로 논의를 좁히자면, 이 분야는 이 당시 '과학붐'이 일었던 일본이 거의 독점했습니다. 무수한 일본 애니들이 헐값에 처음 소개됐던 70년대 미국에선, 이런 일본 애니의 다양성과 질에 미국인들이 엄청 놀랐고 해서 이 즈음부터 이른바 양덕의 새싹이 뿌리를 내렸다고 합니다. 하여튼 그래서, SF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아톰>과 같은 해에 애니화된 (우리에겐 <전략 삼국지>로 유명한) 요코야마 미츠테루 원작의 <철인 28호>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톰이 안드로이드를 대중화했다면 <철인 28호>는 거대로봇물 유행을 열어젖혔죠. 물론 <철인 28호>의 로봇은 이후의 보편화된 메카닉물과 달리 로봇을 입거나 탑승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인기를 끌던 초중반부에선)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것이긴 했지만, 로봇이 주축이 된 액션물은 분명 엄청난 센세이션이었고 이후 SF물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담이지만 <황금철인>에 나오는 악당인 청동로보트는 <철인 28호>에 나오는 악당 로봇 중 하나랑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어요. 참조를 안 했을 리가 없겠죠?


이 이후 80년대의 창작자들이 보고 자랐거나, 참고했거나, 직접 하청을 맡아 그렸던 70년대 주요 일본 SF 애니들을 먼저 잠깐 나열해 보겠습니다. <과학닌자대 갓챠맨(독수리 오형제)>, <마징가 Z>, <바벨 2세>가 72년 방영 시작이고, 이 중 <마징가 Z>는 일본 현지에서 방영이 끝난 75년에야 한국방영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국내에서 엄청난 열풍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어서 <겟타로보>와 <우주전함 야마토>가 74년작, <우주기사 테카맨>이 75년, 국내에선 당시 <애꾸눈 선장>으로 방영된 <캡틴 하록>, 연출가로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작점인 <미래소년 코난>과 <은하철도 999>가 78년작이고요, 80년대 일본 애니의 청사진이라 할 토미노 요시유키의 <기동전사 건담>이 79년작입니다.


<황금박쥐> OP

그럼 그 시대에 한국 애니메이션은 어땠는가를 이어 얘기해야겠죠. 국내 제작된 SF 애니엔 67년작 <황금박쥐>, 용유수 감독이 만든 1971년작 <번개아텀>과 1972년작 <괴수대전쟁>, 76년작 <로보트 태권브이>, 77년작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79년작 <별나라 삼총사>와 <우주 흑기사> 등이 있습니다. 이중 <황금박쥐>는 67년 한일 수교 정상화에 따라 한일합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프로듀싱을 한국의 TBC가 맡았을 뿐 창작 부문은 거의 일본이 하고 생산 부문을 한국이 한, 즉 이후의 외주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한국 창작자들이 서둘러 자체적으로 만든 게 바로 오늘 상영한 <황금철인>이었죠. 그리고 직전에 상영한 84년작 <은하전설 테라>는 당시 한국 극장판 애니의 끝자락을 이룬 작품으로, 가뜩이나 축소되었던 국산 극장판 애니 산업은 86년의 <각시탈>에 약 2천 명의 관객만 들면서 사실상 폐업 상태에 이릅니다. 90년대에 대기업 자본이 영화계로 유입되며 판이 아예 바뀌기 전까지, 한국 애니는 간간이 TVA로만 제작 및 방영되었죠. (당연하지만 저는 이 시기 국산 TVA를 마냥 폄하하려는 게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1990년까지 한국은 애니메이션 매출 규모만 세계 3위를 찍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애니메이션을 생산했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박정희 정부의 ('건강한 반공 국민' 육성을 목표 삼은) 어린이 정책도 있겠고, 애니메이션이 일반 극영화가 아닌 문화영화로 분류되어 외화수입 쿼터를 위한 떨이상품으로 막 제작된 것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무엇보다 해외 애니메이션 하청업 때문입니다. 아까 흘리듯이 말씀드렸지만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주로 일본과 미국의 원청 사업체로부터 일감을 받아 동화(형상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 위한 프레임)를 그리고 셀(얇은 투명판)에 색을 칠한 뒤 프린트해 다시 일본과 미국에 넘기는, 오늘날의 말을 쓰자면 외주업으로 먹고살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 자체로 충분히 크고 중요한 산업이었죠.


그렇다면 하청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1965년 TBC가 애니메이팅 하청 계약을 처음으로 맺었고, 1969년 국제아트프로덕션이 미국 업체와 하청 계약을 체결하긴 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개별 회사들의 경우지 이걸 계기로 하청 사업이 산업으로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이때 애니메이터들의 주 작업은 할리우드의 20~30년대 ‘흑백’ 상업 애니메이션 필름들에 색을 칠하는 거였답니다) 그럼 언제가 본격적인 시작일까요? 공식적으로는 1973년이 기점입니다. 유니버설아트의 정병권·조민철이 자기들이 제작한 CF 등을 샘플로 이곳저곳에 열심히 보낸 결과 일본 타츠노코사로부터 대규모 하청 계약을 따와 (당시 한참 방영 중이던 <과학닌자대 갓챠맨>을 포함한) 여러 TVA의 동화 및 채색 작업을 도맡았고, 그 결과물이 꽤 좋으니까 '한국 애니메이터들이 일을 잘한다'라는 입소문이 금방 퍼져 다른 애니 제작사들도 수월하게 계약을 따게 된 거죠. (여담이지만, 재밌게도 딱 같은 해 1월 13일 자의 «경향신문»에선 한국 애니의 외화 획득 가능성에 대한 기사가 실렸답니다) 게다가 70년대 후반 들어 해외 박정희 정부가 애니메이션 하청 수주를 수출 주력산업으로 밀어주면서 80년대엔 일본 애니의 웬만한 하청을 한국이 독점했다 말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확 성장했어요. 그래서 당시 한국 애니 창작자들은 중산층에 금방 편입될 수 있었고, 또 일본 현지의 베테랑 못지않은 그림/애니메이팅 실력도 얻었죠.

태권 브이(좌)와 (제트 스크랜더를 장착한) 마징가 Z(우)

근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들은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어요. '언제까지 왜놈들 뒤치다꺼리만 할 거냐, 우리도 우리 손으로 애니메이션 만들자' 이런 생각에 조금씩 뭉쳤던 거죠. 작은 프로덕션도 만들고, 영화사에 애니메이션부를 만들어 달라고 읍소하기도 하는 식으로요. 여기엔 민족주의적 의식도 있었겠고, 더 큰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겠고, 순전히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도 있었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황금철인>도 넓게 보면 그런 케이스였는데, 여기서 가장 큰 한 방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75년의 <마징가 Z> 방영이었습니다. 역시 한국 하청 업체가 상당수를 작업한 <마징가 Z>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니까 '왜놈들한테 질 수 없다, 제대로 된 국산 거대로봇물이 필요하다!' 이런 얘기가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나왔고, 그때 마침 주목받던 '베테랑 신인' 김청기가 연출만 아니라 애니메이팅 작업도 대부분 직접 한 <로보트 태권브이> 첫 작품을 76년에 완성시켰죠. 게다가 약 13만 명의 관객(서울 기준)을 동원하며 상당한 흥행을 거뒀고요. (하지만 정작 김청기 본인은 자신의 창작욕과 당시 업계 관행 때문에 큰 빚을 졌다고 합니다) 연이어 다음 해인 77년엔 (<황금박쥐> 제작에도 참여했던) 임정규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역시 약 16만 명의 관객(서울 기준)을 동원하는 큰 흥행을 거둡니다. 물론 여기엔 당시 박정희 정부가 밀어붙인 태권도 신화 만들기나, 반공 영화에의 초등학교 단체 관람 몫이 분명 있었죠. 하지만 몇몇 창작자들은 곧장 고조되었습니다. '이야, 우리 애니메이션의 독립과 선진화도 가능하겠구나!' 하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독립적인' 국산 애니 제작이 급증하게 됩니다.


<은하전설 테라> 中

자, 이제 <황금철인>과 <은하전설 테라>로 돌아가봅시다. 그런데 왜 이 애니메이션들은 질이 확연히 떨어지는 걸까요? 솔직히 말해 <황금철인>은 프레임을 뭐 이렇게 잡았나 싶을 만큼 캐릭터의 형상이 괴이하고 부담스럽게 잘려 나간 장면이 많고, <은하전설 테라>는 극장판 애니인데도 몇 해 전에 만들어진 <은하철도 999> TVA와 비교하기 민망할 만큼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우며 액션의 앞 뒤가 안 맞습니다. 가령 우주선이 공격당하자마자 (당시엔 지구인이었던) 환마성주의 수염이 갑자기 자라는 황당한 첫 시퀀스만 떠올려 주셔도 좋겠습니다. 당시 창작자들에겐 의욕도 있고, 오랜 하청 작업에서 얻은 노하우도 있었을 텐데, 왜 결과물은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변에 갑자기 사업한다고 나서는 분들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듯이, 오래 일했고 많은 명함을 갖고 있으며 나름의 노하우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좋은 기업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한국 애니메이션에는 독자적인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재능도, 기획도, 장비도, 인력도, 투자도 전무했습니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곧 일본식 셀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시나리오가 있고 그에 따라 연출가가 콘티를 짭니다. 장면의 대략적인 구도, 프레이밍, 사건 내용, 카메라 워크를 문서에 기재하는 거죠. 이에 더해 필수는 아니지만 레이아웃이란 공정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콘티보다 구체적이고 통일적인 화면 설계를 이릅니다. 이걸 일본에 도입한 게 바로 <빨강머리 앤>과 <반딧불의 묘>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타카하타 이사오죠. 그리고 장면의 키포즈를 그리는 원화, 각각의 원화를 정갈하고 통일성 있게 정돈하는 작화감독, 이 사이를 채우는 동화를 작업합니다. 다음엔 원화와 동화 전체를 검토한 뒤 셀에 그림을 프린트하고, 채색을 한 뒤, 셀 한 장당 한 컷씩 카메라로 찍어 필름 화합니다. 편집과 소리 녹음 등의 후반 작업을 빼면 '애니메이션 만들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창작자나 수용자들을 몹시 혐오합니다)



그런데 아까 뭐라고 했죠? 한국 창작자들은 주로 동화와 채색 하청을 맡았습니다. 물론 하청업이 궤도에 오른 후 제작사들은 원청으로부터 프로덕션(제작) 전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받았고, 그래서 원화나 선화나 촬영도 직접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연출과 편집의 감각을 제대로 배울 수는 당연히 없었겠죠. 거꾸로 말하자면, 이들은 동화와 채색 같은 노동집약적 과정 말고는 전문적으로 배운 게 없었어요. 독립과 선진화에 대한 의지 그리고 작화 기술은 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고, 극영화와는 별개로 취급받아 콘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짤 줄 아는 사람도 드물고 ―이 드문 예외가 바로 김청기였습니다―, 작화감독도 없고, 동화를 많이 그려 세밀한 움직임을 구현한다 해도 (보증된 상품인 일본 애니가 아닌데) 그걸 다 프린트하고 촬영할 만큼 돈과 장비에 여유가 있는 업체도 없던 겁니다. 고도로 발전된 기술의 프로덕션에 그걸 뒷받침할 사전 기획도 충분한 후반 작업도 나아가 시장도 없으니, 작품으로선 저질일 수밖에요. 이쯤에서 보여드리고 싶은 영상이 있습니다만, 아까 말씀드린 타카하타 이사오의 연출 데뷔작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모험>(1968)의 예고편입니다. 타카하타의 이름값에 비하면 아주 대단한 애니는 아니긴 한데, 이걸 보시면 금방 얘기한 제작 과정의 중요성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하지만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한국 창작자들은 무언가를 꾸준히 시도했어요. 그게 뭘까요? 바로 일본 애니의 요소를 직접 자기네 애니에 끌어들이는 거였어요. 일본 애니는 당대에도 이미 가장 선진적인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의 하청을 대부분 맡은 덕분으로 거기에 1차적으로 접근하기 쉬웠던 한국 창작자들은 일본 애니의 디자인, 클리셰, 연출 방식을 적극적으로 모방했습니다. 가령 (하나의 그림과 촬영본을 돌려 막기 하는) 뱅크씬과 (애니메이팅에 있어 필요한 프레임 수를 낮추는) 리미티드 기법의 활용, ―장면에서 캐릭터의 입만 움직인다든지, 캐릭터가 어디론가 달려갈 때 몸짓이 원을 그리거나 배경의 움직임이 튀는 순간을 떠올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서사 바깥에 있는 사물의 움직임 묘사, 개성이 본질을 앞서는 듯이 단순한 캐릭터 묘사, 그리고 문명 비판 같은 것들이요. (일본 서브컬처에 있어 문명 비판의 주제는 다른 어떤 문화권보다도 먼저 대중화되었습니다) 금방 얘기한 것들이 <은하전설 테라>의 여러 부분을 지적한다는 건 여러분도 눈치채셨을 겁니다. 가령 이 영화 포스터에 적혀 있는 홍보 문구, “지구는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방학을 깜짝 놀라게 할 문제작!” 같은 것 말이죠. <은하전설 테라>가 순전히 어떤 작품의 모방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아니라, 여러 일본 애니들을 복습하듯이 제작된 것 같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일본 애니의 요소가 그 자체로 선진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것 역시 숙고할 만한 지점입니다)


(출처: 유튜브 <[괴작] ㅋㅋㅋㅋㅋ 진짜 골때리는 한국판 건담 _ 우주 흑기사>)

물론 복습 수준을 넘어선 작품들이 절대다수였습니다. 캐릭터나 메카닉 디자인을 가져다 쓰는 건 예사였고, 심지어 어떤 애니들은 하청 작업을 한 애니들의 몇몇 장면을 훔치거나 버려진 걸 재활용하기도 했어요. 악명 높은 사례가 <우주 흑기사>와 <비디오 레인져 007>(1984)입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여기에 창작자들 잘못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도 그렇지만 거대로봇물 같은 경우엔 그 로봇 인형을 상품으로 출시할 완구사가 주요 스폰서거든요? 당시 국내 완구사들은 애니 업계에 일본 애니를 그대로 따라 하라고 요구했어요. '이미 애들한테 잘 먹히는 게 있는데 뭐 하러 새로운 걸 만들어 모험을 하냐'라는 식으로 말이죠. 달리 말해 스폰서들은 한국 애니의 독립을 전혀 바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1980년 8~9월엔 여러 일본 애니들이 이른바 ‘방송자율정화방안’에 따라 조기 종영되었고, 그래서 <기동전사 건담>의 예정된 정식 TV 방영은 무산되었으나 대놓고 이걸 베낀 <우주 흑기사>는 버젓이 극장에 걸릴 수 있었어요. 즉 당시 창작자들은 <마징가 Z> 이후 일본 애니에 대한 높은 대중적 관심에 애니 제작의 차원에서 어느 정도는 강제적으로, 어느 정도는 자의적으로 편승했던 겁니다. (물론 이들을 순전히 하나로 묶을 수는 없겠지만요) 표절에 표절로 얼룩진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는 이렇게 형성되었습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듯하여 부연하건대, 창작 애니가 실패해서 일본 애니 모방으로 우회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창작 애니의 불가능성이 곧장 모방으로 육화되었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창작의 실패와 모방이 각각 차례대로 일어난 게 아니라 동시에 이뤄진 거예요. 요컨대 70년대의 창작자들은 정말로, 어느 정도 선진화와 독립을 추구하긴 했습니다. 다만 그게 환경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너무 이르고 어설픈 독립의 시도였기에, 그 의지는 당대의 선진이었던 일본 애니를 어설프게라도 따라하는 쪽으로 갔던 거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일본 애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보편적인 것’으로 승인하게 되었고요. 후대의 입장에서 이걸 비판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얘기를 돌아보면 비판의 타겟을 정확히 잡는 게 어려워지죠. 일본 애니와 한국 애니의 기형적인 관계는 사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90년대와 00년대에 다른 방식으로, 더 기괴하고 요란하게 나타납니다만, 오늘은 어디까지나 <황금철인>과 <은하전설 테라>의 역사적 맥락을 짚는 자리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여튼 이런 맥락에서 제가 여러분께 제안하고 싶은 건, 이 시간을 이룬 한국 애니의 '자연화된' 표절을 비열함/게으름의 소산 혹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너무 손쉽게 판결 내리진 말자는 것입니다. 대신에 이를 어떤 적극적인 역사적 행위로 보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70년대 후반~80년대 중반의 한국 애니들은 일본 애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열등감으로서의 욕망-곧 르상티망으로 전환되게끔 한 과도기적 작품들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한국 오타쿠의 주체화에 있어 이 작품들의 영향이 분명 있지는 않았을까요? 이런 식으로 역사 서술의 방향을 바꿀 때 더 잘 보이고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여담 아닌 여담으로 덧붙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일본에서 만들어진 형식이 그 자체로 일본적인 것 내지는 일본의 것이지는 않다는 거예요. 축구가 잉글랜드에서 먼저 정식 스포츠가 되었다고 해서 잉글랜드가 세계 최강의 축구팀을 항상 갖지는 않은 것처럼, 또 누가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꼭 지금 제20대 대통령을 지지하는 건 아닌 것처럼요. 일본의 문화는 유포가 된 이상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소유물만이 아니게 됩니다. 이에 대해선 따로 부연하지 않을 터이니, 여러분께서 이 말을 한 번 직접 곱씹어 주시기를 부탁드려 봅니다.


말이 좀 길어졌지만,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한 얘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런 거예요; '당시 한국 애니 창작자들에게 있어 독립이란 게 대체 무엇이었을지 좀 더 고민해 보자.' 이런 질문이 여러분 안으로 스며들었기를 바라면서, 오늘 강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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