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 <주온 비디오판> 2부)
격월간 미스터리 잡지 《미스테리아》 55호(2025년 1월호)의 연재 기획 VILLAIN 코너에 세번째 글을 실었다. 제목은 「무차별적인 '악' - 헤이안 괴담에서 <큐어>에 이르기까지」로, "일본 귀신들은 뚜렷한 분별없이 근접한 모든 대상에게 저주를 퍼붓나?"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나는 여기서 순수한 형태의 악-곧 비인격적 의지로서의 ‘악’을 더듬는 재현 방식이 (헤이안 시대부터 오늘날 레이와에 이르는) 오랜 일본 문화에서 어떻게 소화되었는지 빠르게 스케치해보았다. 모노노케와 키요히메, 토미에와 사다코와 카야코, 그리고 쿠로사와 키요시의 '악당'들. 개인적으로 집필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 간만의 글이라 맘에 들긴 하지만, 한편으론 글을 완성한 시점이 하필이면 12.3 비상계엄/쿠데타 직후였(고 그 이후 지리멸렬한 악의와 악행을 수도 없이 마주쳤)어서 그런가, 이 글만 떼어놓고 보면 인문학적 개념으로서의 '부정성'에 다소 쉽게 기댄다고 읽힐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아마 이에 대해선 연재의 마지막에 제대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다. 또한 후일 단행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룰 논의들을 일부분 흩뿌려 놓기도 했으니,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아니 사실은 부탁드린다... 그리고 나의 개인 사정 때문에, 《미스테리아》 56호에 있어 한 차례 연재를 쉬어갈 예정이다. 이에 대한 양해 역시 부탁드린다.
"지난 해 영화 〈파묘〉를 보던 도중이었다. 심드렁한 영화에 지쳐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대사가 나를 확 붙잡았다. “화림아, 이거 하지 마라. 일본 귀신이다. 아무 관련 없어도 그냥 죽인다고, 근처만 가도 다 죽인다고!” 영화 후반부 무당 캐릭터 광심(김선영 분)은 자신들이 대적해야 할 상대를 깨닫고서 위기감에 이리 일갈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일본 귀신들은 뚜렷한 분별없이 근접한 모든 대상에게 저주를 퍼붓나? 반발심 보다는 위화감이 즉각적으로 들었는데, 사실 당시의 나는 일본 고전 괴담-즉 옛 일본 귀신 및 요괴와 그들의 맥락에 대해 겉핥기 식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대사를 제대로 곱씹어본 것은, 나중에 일본 괴담의 역사를 약간 공부한 이후였다."
"『라모의 조카』가 예언으로 던져진 이후 19세기 서구 소설에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악당’이라고 부르기 석연치 않은 형상들이 종종 출몰했다. 직접 폭력을 저지르진 않으면서 주변에 파국(의 기운)을 퍼트리는 기묘한 ‘객체적(objective)’ 캐릭터.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1842)의 붉은 가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악령』(1872)의 니콜라이 스타브로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1898)의 유령들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사례로,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자아를 지닌 (혹은 ‘인간적’ 의미에서의 자아라는 게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이들은 의뭉스럽고도 굳은 침묵과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 자체로써 자신이 속한 세계에 파국을 퍼트렸다."
"그리고 약 한 세기 이후, 1990년대 일본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형상들이 무더기로 출몰했다. ‘호러 붐(ホラーブーム)’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일 만큼 온갖 분야에서 공포를 표방하는 작품이 나온 이 시기에, 인간을 고통에 빠트리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것마냥 우직한 ‘악당’이 새로 힘을 얻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소설과 영화를 아우르는) 〈링〉 시리즈와 (비디오와 영화를 아우르는) 〈주온〉 시리즈를 포함해 이토 준지의 만화 「토미에」 시리즈(1987~),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만화 『좌부녀』(1993), 무라카미 류의 소설 『미소 수프』(1997),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큐어〉(1997) 등에 등장한 ‘악당’들은, 각기 다른 종(種)에 속하긴 하지만(귀신, 연쇄살인마, 정체불명의 생명체 등) ‘평범한’ 인간으로선 이해도 해결도 모방도 불가능한 악행을 참으로 열심히 지속한다는 점에서 ‘악’에 대해 서로 같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큐어〉에서 마미야는 그 자체론 평범한 신체를 지닌 인간으로 묘사된다. 허나 한편으론 아무도 없던 해변에서 갑자기 솟아나기도 하고, 그의 필요에 부합하는 자연 현상이 딱 맞게 일어나기도 하는 등 마미야를 초자연적 존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신기하고도 비합리적인 순간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런데 구로사와 기요시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마미야는 이례적인 캐릭터가 전혀 아니다. 〈카리스마〉(1999)의 나무, 〈강령〉(2000)과 〈회로〉(2001)의 유령들, 〈크리피〉(2016)의 연쇄살인마 니시노, 〈산책하는 침략자〉 연작(2017)의 외계인들 모두 극 안에서 설명되는 능력과 설명되지 않는 사건 사이에서 의뭉스럽게 진동하는 ‘악당’으로서 구현된다. 이렇듯 기요시는 영화에 있어 물의 흐름, 지진,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날씨와 명암의 변화, 공간의 구조 같은 ‘객관적’ 사건이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 넘어) 서사 속 사악한 상황과 깊이 연동하게끔 만들지만, 이것이 ‘악당’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환원되지는 않도록 한다. 이 모호하고 불가사의한 관계성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어떤 불안? 단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을 넘어, 영화 속 세계가 이미 자연의 수준에서 ‘악’에 침윤돼 근본적으로 기형화되었다는 공포로서의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