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경은 방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방진이 숨을 죽여 가며 벗의 입이 열리기를 고대하였다. 이준경이 얼마나 뜸을 들이는지 방진은 답답한 심정을 연신 술로 달래고 있었다. 방진이 기생에게 눈짓을 하자 기생이 가야금을 뜯으며 목청을 높였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날 버리고 가시리 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 / 날러는 어찌 살라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 /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 올 세라 위 증즐가 태평성대 / 서운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닷 도셔오쇼서 위 증즐가 태평성대
기생의 노래가 얼마나 간드러지면서 감칠맛이 있는지 옆에서 듣는 사람 애간장이 모두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이준경은 기생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방진이 킁킁 거리며 큰기침을 했지만 이준경은 마치 참선에 든 수도자의 모습으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방진이 술잔을 세 번이나 더 비우고 나니 이준경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 눈을 번쩍 뜨고 방진을 노려보았다.
“자네, 차비인소위此非人所爲‘를 해석해 보시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던 이준경이 불쑥 이상한 말을 했다. 그러자 방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 나를 무학으로 보시는가? 그건 ‘ 이는 사람이 할 바가 아니다.’라는 뜻 아닌가?”
방진은 한참 동안 이준경이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하기에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좋은 가문의 자제를 천거할 줄 알았다가 뚱딴지같은 소리에 무척 섭섭해했다. 방진은 갑자기 이준경이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자네, 말일세. 내가 지금 추천하는 가문의 자제에 대하여 추호도 토를 달지 마시게. ‘그렇게 하겠다’고 나에게 약조해 줄 수 있겠나?”
이준경은 몇 번이고 방진에게 확약을 받아내기 위하여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그만큼 그가 추천하려는 가문의 자제는 당대의 최고 가문의 자제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방진은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준경에게 감사해하는 눈치였다.
“아니, 이 조선 천지에 영의정이 추천하는 사윗감을 두고 두 말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내 약속함세. 자네가 어떤 가문의 자제를 소개하든 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네.”
방진은 눈에 힘을 주며 이준경에게 믿음을 주고 있었다. 방진은 드디어 무남독녀 딸이 한양의 내로라하는 당당한 사대부가의 며느리가 된다는 기쁨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이준경은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우찬성, 병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면서 임금뿐만 아니라 인순왕후 심沈 씨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의 말은 곧 상감의 말이나 같을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조정 대신들도 이준경의 말에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준경은 또 방진의 애를 태우느라 뜸을 들였다.
“이보시게 어느 가문의 자제인데 이리 뜸을 들이시는가? 답답 하이. 어서 말씀해 보시게. 속이 타 죽겠으이.”
방진은 술잔을 들었다 놨다 하며 안절부절못하였다. 옆에 앉아 있던 기생들이 방진의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기도 하였다.
“자네가 조금 전에 해석한 차비인소위此非人所爲의 뜻은 틀렸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자네같이 그 글귀를 그렇게 해석하였었지. 그러나 난 그 청년의 해석을 듣고 무릎을 쳤네. 지금도 상감 앞에 나가 경연하는 엉터리 학사들도 그 글귀를 우리처럼 해석하고 있을 걸세.”
이준경은 점점 알 수 없는 말로 방진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 친구가 영의정이 되더니 사람이 달라졌나? 사윗감을 소개해 달랬더니 점점 알 수 없는 말만 하니 원.’
방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앉은 기생 엉덩이를 주물러 댔다.
“이보시게 원길. 그럼, 그 글귀의 뜻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방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글귀는 통감 제 삼권에 나오는 말로 한나라 혜제惠帝 어머니인 여후呂后의 악행에 대하여 소개한 글에 나오는 말일세.”
이준경이 거드름을 피우며 술잔을 홀짝거렸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 한고조漢高祖의 정비正妃인 여후呂后는 유방에게 설움을 많이 받은 여인이었다. 유방은 자신이 한나라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아내 여후를 거들떠보지 않고 후궁인 척부인戚夫人을 총애하였다.
유방이 죽고 나자 여후의 아들이 유방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니 그가 한나라 제2대 황제인 혜제가 된다. 남편 생전에 천대를 받았던 여후는 척부인에게 복수를 한다. 척부인의 사지四肢를 잘라 소변통에 던지고 척부인의 두 눈을 파내 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여후는 척부인을 분뇨 통에 집어넣고 궁녀들로 하여금 인치人痴 즉, 인돼지라 부르게 하고 밥도 입으로 먹게 했다. 모후母后의 비인간적인 소행을 두고 성품이 착한 아들 혜제는 ‘차비인소위’라고 중얼거렸다.
통감에 기록된 이 내용을 두고 문사文士들은 ‘이는 사람이 할 바가 아니다’라고 틀에 박힌 해석을 해왔다. 이준경이 서너 해 전에 한 서당을 지나다가 어떤 청년이 이 대목을 두고 해석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차비인소위라는 글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는 사람이 할 바가 아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되었다. 이 문장은 ‘이는 사람이 할 바가 아니라’라가 아니라 ‘이는 사람에게 할 바가 아니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한나라 혜제가 어머니인 여후의 만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이 한 말인 바, 만약 예전처럼 해석을 한다면 이는 큰 불효를 짓는 일이 된다.
사람이 할 바가 아니라면 개돼지 같은 짐승을 이르는 말 아닌가? 따라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잘못 해석한 이유는 ‘이’와 ‘에게’의 쓰임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을 낳은 여후를 말하는 것이고, ‘사람에게’라고 하면 척부인을 말함이니 어찌 자식이 어머니에게 개돼지 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대의 최고 문사이며 우이정인 이준경은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듣고 마을의 어린 학동을 가르치는 청년의 외모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과연, 과연 저 청년의 말이 백번 지당하도다. 나 역시 지금까지 그리 해석을 하지 않았던고? 아아, 부끄럽도다. 저 청년의 관상을 보니 장차 이 나라 조선을 떠받칠 동량지재로 왕후장상의 상이로다. 내 과년한 여식이 있다면 저런 청년을 사윗감으로 하련만......’
이준경은 그 청년의 정체가 궁금하여 서당 안으로 들었다.
청년은 우의정 이준경을 몰랐다. 마침 한 학부형이 서당에 들렀다가 이준경을 보자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제야 청년은 미처 알아보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말하고 인사를 올렸다.
곧 만인지상인 영의정에 오를 이준경이 서당에 들어올 줄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청년은 이준경을 보며 언젠가는 자신도 이준경처럼 당당하게 조정을 대표하는 높은 관리가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덕수이가 자손으로 자는 여해고, 이름이 순신舜臣이라? 오호, 과연, 과연 갑족의 후예로다. 그대 아비가 정貞이고 조부가 백록百祿이라 했던가?”
이준경은 청년의 조부의 이름을 듣더니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어쩐지 이 청년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청년의 5대조 할아버지 이변李邊은 세종 임금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제학을 거쳐 정1품 영중추부사를 지내고, 3대 조인 이거李琚는 성종 임금 시절 문과급제 하여 연산군이 세자시절에 스승을 지냈으며, 사헌부 장령을 거쳐 정 3품 병조참의를 지낸 분이 아니던가? 그러나 할아버지 백록부터 가세가 형편없이 되었어. 참으로 안 된 일이야. 그런데 이 청년의 기상을 보니 가문을 크게 일으킬 영재가 틀림없어.’
이준경은 청년의 조부 이백록과 한때 공부를 같이했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이준경은 서당을 나서면서 청년 이순신에게 더욱 정진하라고 당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