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역사소설]
천추태후의 음모
왕욱이 사냥하러 가거나 낚시를 갈 때면 그의 곁에 늘 헌정왕후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야 말았다. 헌정왕후가 그만 숙부의 씨앗을 잉태하고 만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이 왕후의 오라버니인 성종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성종은 선황제의 부인을 건드린 죄로 숙부인 왕욱을 경상도 *사수로 귀양 보냈다. 왕욱이 귀양 가는 날 헌정왕후는 사람들의 눈이 있어 차마 동구 밖까지 나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정인(情人)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헌정왕후는 뒷산에 올라 떠나가는 왕욱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뿌리며 통곡했다. 왕후는 그렇게 한나절 울다가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통을 느꼈다. 왕후는 집 근처 느티나무 아래에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난산(難産)이라, 출산 과정에서 너무 많은 하혈로 인하여 헌정왕후는 사경을 헤매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사통으로 인하여 태어난 아기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성종은 아기를 불쌍히 여겨 순(詢)이란 이름을 하사하고 보모(保姆)를 붙여 궁궐에서 보살피게 했다.
* 사수 - 泗水. 현, 경상남도 사천시
“백가야, 저기가 불당이고, 그 옆이 요사채가 맞지?”
“맞을 거야. 천가야, 오늘도 실패하면 안 돼. 실패하면 우리는 우복야님에게 죽는다고. 오늘은 반드시 *신혈소군을 죽여야 해.”
“그런데 소군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죽일 거 아닌가?”
백가와 천가는 김치양이 고용한 그악스러운 자객이었다. 그들은 나흘 전 새벽에도 신혈암에 접근하여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진관의 기침 소리를 듣고 사라진 적이 있었다. 두 자객은 발걸음 소리를 죽여 가며 법당으로 접근했다. 캄캄한 밤이기는 했지만 어스름한 별빛과 법당 앞에 있는 장명등의 희미한 불빛으로 그들의 윤곽을 대충은 파악할 수 있었다.
* 신혈소군 – 神穴小君. 소군은 왕자의 신분으로 출가하면 부르는 호칭이다. 따라서 신혈소군은 신혈암에 거주하고 있는 대량원군 왕순을 가리킨다.
‘저놈들은 자객이 틀림없다. 며칠 전에도 법당과 요사채 주변을 살펴보다가 돌아갔는데 오늘 또 왔구나. 그러나 네놈들은 절대로 대량원군을 해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을 당겨서 예불을 올려야겠다.’
“경보야, 일어나거라.”
진관은 요사채에 촛불을 밝히고 경보를 흔들어 깨웠다. 경보는 좀 덩둘해 보이기는 하지만 심성이 착한 사미승이었다.
“스님, 너무 이르잖아요?”
“쉿-!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예불을 올려야겠다. 밖에 밤손님들이 왔다. 너는 모르는 척하고 늘 하던 대로 행동해야 한다. 절대로 대량원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경보는 잠이 덜 깬 상태로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진관의 뒤를 따라 법당으로 들었다. 경보는 밤손님이 왔다는 말에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연신 하품을 해댔다. 진관과 경보가 요사를 나오자 백가와 천가는 법당 뒤로 몸을 숨기고 두 사람의 움직임을 살폈다.
“천가야, 저 늙은 중이 우리가 온 것을 눈치챈 거 아닐까?”
“흐리마리한 늙은이가 어떻게 우리가 왔는지 알겠는가? 일단 숨어서 지켜보자고. 지켜보면 신혈소군이 나타날 수도 있을 거야.”
헌애왕후는 외가 쪽 사람으로 엉터리 속승(俗僧) 노릇을 하던 김치양(金致陽)과 간통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사통은 선대 황제인 성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누이의 사통을 눈치챈 성종은 김치양을 죽이려 했으나 헌애왕후의 사정으로 태장(笞杖)에 처한 뒤에 원지에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김치양은 *동주 사람으로 헌애왕후 황보 씨의 외척(外戚)이었다. 그는 성격이 간교하고 양물이 거대하다고 소문난 인물이었다. 거짓으로 중 행세하며 헌애왕후의 처소인 천추궁에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온갖 추문(醜聞)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런데 잔병치레가 심했던 성종이 서른여덟 살로 공주만 둘을 남기고 승하하니 헌애왕후의 친생자인 왕송이 성장하여 다음 보위를 이었다. 헌애왕후는 자신을 천추태후라 부르게 하고 아들을 대신하여 섭정하며 권력을 휘둘렀다. 오빠 성종에게 밉보여 귀양 갔던 김치양을 불러들여 *통사사인(通事舍人)이란 벼슬을 주었고 공공연히 궁궐에서 부부처럼 살았다. 얼마 후에 헌애왕후는 김치양의 아들을 낳았다.
* 동주 - 洞州. 지금의 황해도 서흥(瑞興)
* 통사사인 - 고려 시대, 합문의 정7품 벼슬
어머니의 심한 간섭으로 정치에 흥미를 잃어버린 황제는 밤마다 미남자 유행간과 동성애에 빠져 비몽사몽 간을 헤매고 있었다. 천추태후는 황제에게 후사가 없자 자신과 김치양과 사이에 낳은 불륜의 씨앗인 김은(金銀)을 황제에 앉히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그녀는 김치양에게 통사사인에 이어 *우복야(右僕射) 겸 삼사사(三司事)라는 막강한 자리를 주었다. 김치양은 유행간, 이주정, 문인위 등 자신의 심복들을 요직에 앉히고 뇌물을 받아 챙기는 등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듣고 있었다.
* 우복야 겸 삼사사 - 우복야는 정2품으로 국방, 외교, 입법, 호구 등 모든 부서(상서성)의 장관 중 하나고,
삼사사는 정3품으로 국가 재정 담당 부서(삼사)의 차관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