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중요한가요?
그 뒤로 일주일간 매일 무지개를 만났다. 우연히 두세 번의 무지개를 만나게 된 이후로 길을 걷다가 흩뿌리는 비를 만나면 반대편 하늘에서 햇볕이 느껴지는 때가 오기를 민감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햇볕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재빨리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무지개를 찾았다. 그렇게 만나는 무지개는 내게 기쁨을 주며 언제나 행복이 되었다.
오클랜드에서 7월 말부터 8월까지의 시간을 보내보기로 결심했을 때 애초에 좋은 날씨를 기대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 많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나는 더욱 관광에 관한 계획 없이 오클랜드에 도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날씨와 상관없이 나는 뉴질랜드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자연이 살아있는 나라라던데, 청정지역이라는데, 소와 양의 숫자가 인구수보다 많은 나라라는데.. 그냥 살아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다. 출국 전까지 유명 관광지라던지 맛집, 카페에 관한 어떤 정보도 찾지 않고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매일 정확한 행선지를 두지 않고 다녔다. 오늘은 이 동네를 걸어보자라는 방향만을 정해 길을 나섰는데, 가끔 날도 흐린데 사람이 너무 없어 스산함이 느껴지는 골목에 들어섰다고 느껴질 때는 구글맵을 열어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있는 곳으로 얼른 빠져나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걷다 보면 궁금해지는 카페가 있었다. 그러면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고, 어느 날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샌드위치도 사 먹었다. 머핀에는 눈길이 갔지만 잘 사 먹게 되진 않았는데 어느 날 눈에 들어온 바나나머핀은 호주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대학 시절을 문득 그리워지게 하여 가방에 넣어와 이튿날 먹기도 했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
걷다가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온 풍경이 아름다우면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 부분은 마음에 담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으면 다음날에 혹은 며칠 뒤에 다시 와서 걸었다. 꼭 그곳에 긴 시간 머물지 않았어도 무지개를 만났다던가 서로 다정하게 다니는 오리 커플을 만났다던가 하는 순간의 기쁨이 그 장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만들었다. 그렇게 그날그날의 행복이 꽉꽉 채워졌다. 내게 감동으로 남는 순간이나 잊히지 않고 오래 남는 느낌은 대부분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그렇게 우연하게 만난 것들이었다.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나만의 오클랜드 지도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나 휴가를 갈 때는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나는 거의 많은 날을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사소한 일들일 지라도 아무 계획이 없는 하루나 예상 가능한 문제에 대한 대비가 없으면 좀 불안하다. 학창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과제발표일이 정해지면 나는 한 달 전, 2주 전, 1주 전, 3일 전 등의 계획을 세웠고 계획대로 진행될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으니 나는 태생이 계획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오클랜드에 와서는 살아온 모양대로 살지 않고 있다. 우연함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을 반기고 있고 그 느낌을 즐기고 있다. 무계획 속에서 사는 것. 이것이 내게 짜릿한 일탈이 되어주고 있다. 어쩌면 나는 무계획적으로 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지내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 나는 선택적으로 계획을 하고 선택적으로 계획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MBTI 유형 검사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카테고리화하여 분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 현상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유행이 더욱 번지고 MBTI를 모르면 사람들과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지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도 검사를 해보게 됐다. 사실 나는 행동이 매우 정형화되어 있고 단순하여 누구나 내 MBTI를 예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받은 결과는 대부분의 지인들이 예측하는 결과와 맞아떨어졌다. 그러면서 나는 MBTI를 받아들이고 한때 기이하다고 여겼던 대화에 자연스럽게 스미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사람들이 특정 유형의 기질이 우세하고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갑자기 검사를 다시 하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 자신이 받은 검사결과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MBTI로 인해 생겨나는 현상들이 다시금 기이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한동안 MBTI로 사람을 몇 개의 범주로 간단하게 분류하고 판단하며 얘기하는 데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은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게 분류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감정들이 사고와 행동의 결과를 만든다. 그것이 개성이다.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개인이 내리는 판단이나 행동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의 성격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분류하고 그루핑 하는 것은 몰개성을 일삼던 일제강점기 혹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 나와 누구와 얘기해 봐도 서로의 MBTI를 묻는 대화는 없었기에 더더욱 우리 사회에서만 유행하는 검사라 생각되었다. 개인이 가진 고유성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너는 역시 P가 맞네 혹은 J이네.‘ 판단하는 관점보다는 ‘너의 이런 성향 덕분에.’라는 존중하는 자세로 상대를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누구도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개성을 드러내고 꽃 피울 수 있다.
얼마 전 아들이 자신의 MBTI가 무엇인지 친구가 물어봤다며 한번 검사해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고민이 들긴 했지만 재미 삼아 검사를 해보기로 하고 결과를 받아봤다. 아들은 나와 한 개 영역만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매우 흡사한 유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엄마인 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설명해 줬다. 이 결과가 모두 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현재의 네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이것일 수 있지만 성장 과정에서 계속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어쩌면 당장 내일 다시 검사해 봤을 때 지금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그러니 검사 결과 안에 갇히지 말고 그때그때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살아가자고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FLEXFIT이라는 상표를 지키는 일을 맡았었는데, 회사를 떠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 이 상표가 나의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한국 나이 마흔둘에 회사를 떠나 왔으니 만 나이 마흔까지 직장에 다닌 셈이다. 마흔 이전의 나는 몰개성 사회에서 딱 좋아할 만한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모습으로 열심히 살았다. 마흔이 넘은 이제는 내가 아꼈던 상표명과 같이 유연한 삶을 살려고 한다. 가지고 태어난 틀을 완전히 깨진 못하더라도 틀에 딱 맞게 끼워지는 모양 말고 슬라임 가지고 놀듯 상황에 따라 모양을 만들며 적당히 잘 사는 그런 인생. 나는 MBTI OOOO인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