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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효진 Aug 16. 2024

운동 좋아하세요? 저는 뛰는 것보다 걷기를 좋아합니다만

오클랜드 조깅 코스

오전 8시 30분.

아이가 긴장하기는 했지만 비교적 경쾌한 발걸음을 하며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오클랜드의 공립 초등학교에서 4주간 이곳 아이들과 어울리며 함께 수업을 듣는다.

전학생도 유학생도 아닌 단 한 달간만 지내다가 가는 아들.

짧은 학교생활이지만 그래도 아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첫날 반에서 두 명의 대표 학생이 마중 나와 학교의 이곳저곳을 아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며 반겨준 모양이다.


"엄마, 나 뉴질랜드에서 학교 다니면 안 돼? 진짜 좋아."


학교에 등교한 첫날, 하교하는 아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이 말을 벌써 듣게 되다니.


자자. 침착하자.

나의 심장이 두근대는 것이 느껴졌다. 아들의 말을 해석해 보자면, 학교의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가 아들을 무척이나 환대해 준 덕분에 나는 내일 아침부터 아들을 교문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면 가뿐하게 뒤돌아서서 자유시간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 되겠다. 이렇게나 빠르게 맞이하는 자유시간이라니~ 너무 설레잖아.

YAY!!!



아들이 잠든 밤,

구글맵을 열었다.


해변을 따라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오클랜드에 오면 오전 내내 예쁜 바다를 보며 걷고 싶었다. 집주인이 추천해 준 해변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 아휴. 아이 학교에서 출발해서 가려니 길이 복잡하다. 오클랜드는 미션베이가 유명하다고 했는데 그냥 미션베이로 가볼까. 버스로 한 번에 가는데.. 아니다. 그래도 여기 사는 사람이 가 보라고 강추하는 곳인데..




"Have a good day!"

"See ya!"


아이가 손을 흔들며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캬~

어젯밤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현지인 추천 장소에 가보기로 결정하고 잠이 들었다. 보자 보자 어디서 타야 했더라.


'St. Heliers Bay'

구글맵을 열어 버스 노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출발!


  


와... 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람들과 강아지들로 북적이는 해변과 활기찬 주변 카페의 야외석 풍경. 아직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이른 아침이라 생각했다. 해변을 걷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면 어쩌나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걱정을 한가득 안고 왔는데 기우였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고?



걷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큰 개를 데리고 조깅하는 사람들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해변을 따라 유모차를 밀며 선글라스를 끼고 조깅하는 엄마를 보며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편에서는 이미 운동을 마친 후인지 유모차 두 대를 나란히 끌며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한 잔씩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엄마 두 명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멋진 풍경을 영상통화로 보여주며 산책하는 관광객도 있었다. 가장 예쁜 파란색 물감을 골라 풀어놓은 듯한 하늘과 바다를 구경하면서, 여기서 뛰고 걷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길이 난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해변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지만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 계속 이어졌다. 계속 걸으며 '끝이 없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 멀리 해변이 하나 다시 보였다. 구글맵을 열어 해변의 이름을 확인했다. 'Kohimara Beach'


코히마라 비치 바로 앞의 카페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해변에 혼자 있게 되면 어쩌나 겁먹었던 한 시간 전의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오클랜드는 아침이 일찍 시작되는 도시였다.


'달려볼까?'


나는 산책과 러닝을 선택하라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산책을 고른다. 특히 처음 와 보는 낯선 여행지에서는 산책을 하며 천천히 동네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아까부터 일렁이는 파도 때문일까 '나도 뛸까?' 하는 마음이 계속 일렁였다. 뉴질랜드로 오기 전, 남편은 서울에서 나는 오클랜드에서 아침마다 같은 시간대에 달리자고 했던 남편과의 약속이 생각났다. 그래 좋다. 길이 끝날 때까지 뛰어 보자.


'습습 후우.' '습습 후우.'

옆쪽으로 길게 이어진 오클랜드의 화산섬, 랑이토토 아일랜드를 보며 한참을 뛰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달리다 보니 저 앞으로 또 다른 해변이 보인다. 계속 달려가 보자.


해변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힙하다. 여기는 무슨 해변이지?


'Mission bay Auckland'


미션베이. 그 유명한 미션베이에 왔다. 무작정 길을 따라 달렸는데 궁금했던 미션베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꿈일까.


잠시 달리는 것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찍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천천히 걸었다.


'짠~!'

세상에.     


미션베이 해변가 공원에 있는 분수대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피어있다. 오늘아침 여기까지 뛰어 온 내게 오클랜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나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라고, 앞으로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무지개를 발견한 순간 내게 마법이 씌워지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안녕!!'


커다란 무지개를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나도 무지개에게 인사를 했다. 앞으로 한 달간, 이곳에서 씩씩하게 잘 지내보겠다고. 그리고 자주 뛰러 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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