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떨어지면 허전한 사이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택시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기장의 방송대로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미리 캐리어에 준비해 온 패딩을 걸쳐 입은 덕분이었는지 그다지 겨울 추위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짐을 끌고 걷다 보니 슬슬 패딩 안쪽이 후끈후끈해진다. 주변을 보니 다들 옷차림이 레깅스에 가을 점퍼 정도로 가볍다.
‘혼자서 너무 껴입었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무릎 위 허벅지까지 올려 신은 레그 워머가 어쩐지 좀 민망해졌다. 나름 패셔너블하게 준비한 건데. 너무 나갔다. 빨리 호텔로 가서 벗어던지자.
“Hi, are you checking in?”
“Yes.”
차 안에서 아이가 덥다고 벗은 패딩을 한 팔에 끼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호텔로 들어서자 누가 봐도 체크인하러 온 관광객인 우리를 리셉션에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May I have your passports, please?”
“Sure.”
“엇, 한국분이셨어요? 그렇게 안 보이셨어요. “
“네? 아.. ^^;;; ㅎㅎㅎ”
대한민국 여권 두 장을 내밀자 그제야 우리를 맞이한 한국인 직원이 한국인이셨냐며 우리말로 물었다. 패딩에 조거 팬츠 위로 허벅지까지 올려 신은 레그워머, 옆에 함께 있는 여덟 살 난 남자아이는 매우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 예상할 수 있는 우리의 국적은 거의 하나. 하지만 나는 그 직원에게 그럼 우리가 어느 나라 사람 같아 보였느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내가 짐작하는 그 대답은 듣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나와 아들의 모습이 비쳤다.
‘행색이 좀 그렇네..’
방으로 들어와 아이를 씻기고 나도 씻었다.
“엄마, 옷 새로 갈아입어야 해?”
“그럼~ 우리 산뜻하게 하고 나가자. “
우리는 아까보다 한 겹씩 벗어던진 채로 호텔 밖으로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부두 근처에 자리한 호텔이라 그런지 문을 나서자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오클랜드의 갈매기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우리 앞을 부딪힐 듯 휙휙 지나 날아가기도 하고 땅 위에서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서기도 했다. 내 눈을 딱 마주 보며 누가 돌아서 갈래 묻는 것 같았다. 내가 돌아서 갈게.
반대편으로 오클랜드의 랜드마크인 스카이타워가 보인다. 정박되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에 우리가 정말 오클랜드에 도착했구나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한국의 집에서 자고 있을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여보, 굿모닝. 우리 잘 도착했어.”
“굿모닝.”
평소 같았으면 아직 한밤중이었을 시간인데, 남편은 우리가 오클랜드에 도착할 무렵부터 잠을 설친 것 같았다. 공항에서 우리를 보내고 뒤돌아서는 순간부터 한 달간 혈혈단신 아니고 홀가분한 단신이 되는 남편. 마냥 좋은 시간을 갖게 될 줄 알았는데 또 막상 그 시간이 되고 보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가족의 존재라는 게 그런 것인가 보다. 이 넓은 침대에서 제발 나 혼자 실컷 자보자 꿈꿔오다가도 막상 침대를 독차지하게 되면 공허함이 옆에 따라 눕는다. 나와 아이는 남편의 빈자리를, 남편은 나와 아들의 빈자리를 매일 같이 느끼다가 한 달 뒤에 아주 애틋해진 사이가 되어 재회하게 될까?
무슨 소리.
지금은 이 상황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지만 곧 각자의 자유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흥분하게 될 것이다. 나도 이곳에서는 아이가 8시 30분이면 학교에 가고 오후 3시까지는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오클랜드 곳곳을 누비고 다닐 생각에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다만,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는 그 시간 속에서도 순간순간 서로를 떠올릴 것이다. 어떤 너무 좋은 순간에는 함께 있지 않은 것이 몹시 애석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게 애정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황금같이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즐기다 리프레쉬된 에너지로 다시 만나 복닥복닥 애정 가득한 화목한 가족으로 뭉칠 것이다.
7월의 오클랜드는 영상 8도,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그렇게 춥지 않았다. 반팔에 후드 티, 그 위에 경량 패딩 하나를 입고 다니다 더워질 때 하나씩 벗으니 딱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