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새벽.
가랑비로 시작한 비는 제법 무게를 더하더니, 이내 아파트 벽과 도로를 흠뻑 적셔 놓았다.
분명 겨울의 한복판이다.
그런데도 이따금 우산 속을 비집고 들어와 내 볼에 닿는 빗방울은 포근했다.
'봄이 오는 건가?...'
본능처럼 불쑥 튀어나온 생각이었다.
같은 계절의 비를 맞고도, 이 시점에서 마음이 다른 쪽을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해가 버거웠던 걸까?
봄마다 시작했던 일들이 어긋나, 다시 시작하고 싶은 조급함이 앞선 걸까?
아니면 문득, 보랏빛 수국이 보고 싶은 걸까?
어쩌면, 예순 고비를 넘기며 눈에 띄게 느려진 이 허약한 몸이 계절을 앞질러 느낀 탓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