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비치-클린업
막상 가보면 주울 것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바다를 향하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해변가에는 차박이나 캠핑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많았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모래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부터 구겨진 종이컵과 담배꽁초가 보였다.
이제껏 셀 수 없이 바다를 찾았지만 파도나 하늘이 아닌 땅을 보면서 걸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해안을 따라 쓰레기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서도 쓰레기가 보였고 가까이 다가가 보면 더 많았다.
어떤 구역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나무와 함께 엉켜있는 밧줄 조각과 잘게 찢어진 비닐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색색가지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알록달록 빛을 반사하며 모래에 박혀있었다.
동그랗게 분리된 스티로폼 알갱이들이 모래틈에 모여있다가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이 만든 소용돌이에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을 잠시동안 넋 놓고 보았다.
그 알갱이들이 바람을 타고 다시 밀려나가는 파도 위에 떨어져 해변에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이 작은 조각들은 원래 어떤 것에서 떨어져 나온 건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얼마의 시간 동안 떠다니다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보니 한 시간도 못되어서 종량제 봉투 20리터짜리 한봉을 가득 채웠다.
쓰레기의 대부분은 플라스틱이나 비닐, 스티로폼 조각이었고 이따금씩 병이나 캔, 신발 같은 것들이 보였다.
(옛날 롯데제과 마크를 단 100원짜리 초코파이 봉지도 발굴했는데, 검색해보니 95년까지 사용하던 봉지라고 한다. 최소 25년된 유물이었는데 일주일 전쯤에 버린것처럼 깨끗했다.)
처음 몇 번은 북한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들이 신기했지만
열개, 스무 개씩 쌓여가면서, 그리고 더 먼 곳에서 온 것들을 발견하면서 그 감정도 무뎌져 갔다.
러시아, 일본,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바다에는 경계가 없으니 바다에 모인 쓰레기에도 국경이 없는 셈이다.
양손 가득 빵빵한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 길에 비로소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동해는 언제나 그랬듯이 푸르렀다.
약간의 뿌듯함과, 그보다 훨씬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그 바다를 등지고 나왔다.
함께 작업한 동료들은 그다지 지쳐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감정을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몇몇은 감정이 복잡해 보였다.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지 인식한 후에라야 우리는 이곳이 과연 우리가 있고 싶어 했던 곳인지 스스로에게
적절하게 질문할 수 있다.
오늘 나와 동료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곳의 모습을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해변에 모여 사진 찍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소리와 함께 귓가에서 멀어져 갔다.
그들이 떠나가도 풍경과 함께 쓰레기는 남아있을 것이다.
문득 이제는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은 마음으로 해변에 설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과 끝, 그 외 알 수 없는 것들이 들어있는 상자가 있었다.
오랫동안 한구석에 두고 꺼내기를 미뤄두었던 그 상자를 오늘 드디어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