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 가족도 마찬가지
결혼을 하고 해가 갈수록 선명하게 드는 생각은, "인생은 복불복, 결혼도 복불복"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선택한 일들이 쌓여온 인생이고 내가 선택한 사람과 한 결혼인 건데 복불복이라고?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백 퍼센트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나 자신의 마음과 생각은 물론이요,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해 온 내 가족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것처럼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해도 정작 결혼을 하고 생활해보면 내가 생각한 모습과 다른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결혼은 어쩌면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모습’의 사람과 하는 거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거기서의 오류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 모습 외의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내가 예상한 모습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당연히 생길 수 있는 것인데,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이 사람이 지금까지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지부터 시작해서 나를 속인 건가 싶을 정도로 예상외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예상은 얼마든지 빗나갈 수 있지만, 충격까지 받을 정도인 이유는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갈등 상황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둘의 문제를 넘어 가족의 문제로까지 번지면 예상을 벗어나는 범위 또한 확대된다.
가족의 경우도 일한 갈등과 다툼은 정말 ‘버라이어티 하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다. 일일이 나열하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내 가족 안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살면서 일어나는 갈등의 많은 부분을 그래도 잘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결혼을 하는 순서를 정하는 일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남동생이 있는 나와 형이 있는 남자 친구. 내가 누나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첫째니까 먼저 결혼해야 한다, 그래도 아들이 먼저 결혼해야 한다 식의 언급은 한 번도 없었고 당연히 먼저 결혼해야 하는 상황의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 친구의 경우는 달랐다. 동성이라서 그런 걸까? (나중에 보니 그렇지 않은 집도 수두룩 빽빽이더라) 오랜 기간 연애한 우리의 결혼 얘기가 나오자, 여자 친구도 없는 형을 두고 결혼은 순서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연애에 순서를 따지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하나 싶을 만큼 어이가 없었다. 덧붙이는 한 마디. “뼈대 있는 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말 뼈 맞은 느낌.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일례일 뿐, 이런 식의 수백 년의 시간 차가 느껴질 만큼의 간극이 수시로 느껴졌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정말 이해 안 되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있는 것처럼, 그건 내 영역 밖의 일이다. 가족들로부터 예상치 않게 큰 도움을 받거나 위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처럼 반대의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아니고, 내 마음 같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 죽어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그때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 결혼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뜨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은, 지금도 그렇다. 종종 뜨악한다. 다른 가족들도 나를 그렇게 느낄 때가 있겠지. 내가 그들까지를 선택해서 결혼하지 않았듯이 그들도 그랬을 것이고 이젠 내가 많이 바뀌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것도 같은 유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예전의 나처럼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누군가에게 이 글이 닿는다면, 그래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한 번이라도 대비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글은 그 목적을 다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