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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자 Jan 28. 2022

저는 그런 거 안 믿어요.

부적 따위


벼락 거지.

부린이.

주알못.

눈만 뜨면 새롭게 만들어진 말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돈과 경제에 관한 말들이 유독 많은데,

아무래도 작년까지 뜨겁게 오르기만 했던

부동산과 주식, 코인 시장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방금 언급한 세 가지 모두,

그저 단어로서의 뜻만 알 정도뿐인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우스울 만큼 나는 그런 쪽에 문외한을 넘어 무지 수준인데 이런 나조차도 뭔가 가만히 있는 게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분위기가 헛웃음이 난다.

집 없는 사람을 벼락 거지로 만들고, 재빠르고 교묘하게 갭 투자를 하지 않은 사람이 바보 된 것 같던 상승장에서 이제는 조금 꺾이는가 싶더니 지금껏 오른 정도의 일부밖에 되지 않는 하락세에도 대세 하락 전환이라느니 호들갑에 난리다.


알지도 못하면서 왠 이런 얘기-

내가 살면서 이렇게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찾아 읽고 할 줄이야.

벌써 몇 년 전에, 젖먹이 데리고 이사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구입한 작고 낡은 집.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집을 팔고 다시 무주택자 대열에 합류하게 될 예정인데-

작년 추석 즈음만 해도 부리나케 집을 보여달라고 전화가 오던 부동산에서 연락이 뚝 끊겼다.


매일 지나다니는 상가 부동산에도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았었는데 이사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한 마음에, 겉으로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요즘 어떠냐고 슬쩍 물어봤더니 우는소리 투성이다. 11월부터 손님이 끊기더니 부동산 개업한 이래 이렇게 손님이 뜸하기는 처음이라며, 요즘은 유래 없던 격일 근무를 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없단다. 계약서 안 쓴 지가 오래되어 계약서 쓰는 법을 까먹었을 정도라고 하니 더 이상은 묻지 않기로 했다.


"집 보러 왔었니?"

숙제 검사하듯 간간이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온다.

그럼 정말 숙제 검사받는 기분으로, 찾아 읽어본 부동산 뉴스의 동향이 어떻게 되고 지금 우리 아파트 매물이 몇 개에서 몇 개로 바뀌었고 등록된 실거래가는 어땠는지 줄줄 읊어댄다.

하지만 그 질문은 그저 본론을 위한 서론에 불과했다.




"그거 써 붙였니?"

"......"

"아니 그거 어렵지도 않은데 왜 안 해? 집 파는 사람들 다 그렇게 해. 너네 집 살 때도 보니까 방에 그런 거 붙어 있더라."


집을 내놓은 작년 초가을부터 꾸준히 지속된 압박.

우리 집에 오셔서는 슬그머니 밀수품 거래하듯 나에게 하얀 종이를 여러 장 건네시더니 구석으로 나를 데려가서는 이러이러하게 글을 써서 방이며 부엌이며 거꾸로 붙여두라고 하신다.

싫은 것도 생글생글 웃으며 당장 상황을 모면하든지, 우선은 네-대답하고 안 하는 깡이라도 있든지, 그런 쪽으로는 이도 저도 재주가 전혀 없는 나는 그저 썩은 얼굴로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결혼 후, 이사를 딱 한 번 했었는데 사다리차 아저씨의 실수로 장롱이 추락해서 박살이 났다. 그래서 이사 당일 어째 어째 짐은 다 옮겼지만 장롱에 있던 이불과 많은 짐들은 당장 둘 곳이 없어 안방 구석에 산처럼 쌓여있었다. 혼수로 해 온, 새것과 다르지 않은 장롱이 깨지고 집은 엉망이고 속상한데 방마다 다니며 성수를 뿌려대는 시어머니한테 뭐라 말은 못 하고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르고 애꿎은 눈물샘만 터졌었지. 방을 닦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나는 엄마한테 등짝을 맞고.

생각해보니 나 이사에 안 좋은 기억이 있네.

잊고 살았는데 이 기억이 다시 떠오를 만큼 짜증과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그래, 성수를 뿌렸다.

그건 성당을 다닌단 말씀.

근데 웬 점집에다 부적?

내 맘이지.(전지적 시어머니 관점)

성당 다니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고해성사하고 왔다고 한다.

그럼 다인가?

본인 삶은 상관없지만 왜 다른 사람의 삶에까지-

그때도 그것 때문에 매우 스트레스받았었다. 성수 뿌리는 게 좋은 건, 그걸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

무교인 나에게는 그저 이상한 행동.

게다가 장롱이 다 부서져서 짐 정리도 못하고 눈물바람으로 걸레를 훔치는 사람 따윈 안중에도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자체가 폭력으로 다가왔다.


작년 가을부터 다섯 번 정도? 은밀하게 전화로, 그것도 나에게만 (본인 자식에겐 언급조차 하지 않음)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부적 써붙이기.

싫은 소리 하기 싫고 괜한 분란이 될까 봐 대놓고 싫다고도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어째 어째 넘겼는데 이번엔 안 될 것 같아서 얘기했다.(혼자 큰 결심)


"어머니, 저 그런 거 하기 싫어요."

"집 잘 팔린다는데 왜 그런 걸 안 해. 써붙였으면 벌써 팔렸을걸.(언성 높아짐)"

"집주인이 하는 거라면서요. 그럼 얘네 아빠한테 하라고 할게요. 전 주인도 아니잖아요."

"그래라. (잠시 침묵) 그냥 니가 해. 그게 뭐 어렵다고 그러냐. 내가 해도 되는 거면 진작 내가 써붙였을 텐데 집주인이 해야 한다고 하니까 너한테 하라는 거지."

(((아니, 저는 집주인이 아니라니까요??)))

"......"

"그거 붙였으면 진작 팔렸을 텐데 그거 안 써서 집이 안 팔리잖아."


지금껏 나는 내가 싫다고 제대로, 정확히 표현하지 않아서 계속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싫다고 해도 좋은 의도면, 내가 하라고 했으면 해야 하는 게 그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집이 안 팔리는 건 대출을 숨통 조이듯 꽉 막아놔서이지 내가 부적을 써붙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실, 써붙이지 않고도 팔린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정말 써붙이기 싫었다, 싫다!

그리고 대놓고도 하지 못하는 은밀한 지시를 왜 나에게만?


참고 참다 남편에게 물어봤다.

"어머님이 이러시는데, 자기한테도 그러셔?"

"아니. 전혀 말 없었는데."

"그럼 왜 나한테만 그러셔? 나 싫다고도 했다고."

"나한테 말하면 싸우니까"


결국 만만한 사람에게만 그러는 건가.

그 얘기에 더 기분이 나빠졌다. '저 그거 싫어요'밖에 말 못 했던 나는, 어쩌면 나도 만만한 남편에게 그러는 것인지 속사포처럼 지금까지의 얘기를 쏟아놓았다.

조용히 듣기만 하던 남편의 한 마디.

"내가 얘기할까?"


그건 아닌데-

이 일을 어쩌나-

내가 교회라도 다녀야 하나.

난 다닌다면 절에 다니고 싶은데.

이걸 피하려고 절에 간다고?

그 시작점 또한 타의에 의한 것 같아 기분이 나쁘고 싫다. 종교를 갖는다면 좋은 마음으로 좋게 시작하고 싶으니까.


이런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할까?

남편 붙잡고 이런 얘기 해봐야 답도 없고, 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안 나오니 분위기도 나빠질 테지.

선택적 기억 장애 급의 나는 이 에피소드를 글로 남겨두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궁금했다. 이런 무논리의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나는 과연 이사를 가긴 할까?

부적을 써붙이지 않고도 집은 잘 팔릴까?ㅎㅎ

나는 결국 강압에 못 이겨 부적을 붙이게 될까?

다음 이야기를 곧 쓰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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