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혼자서 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의외로 결혼 상대자가 없는데도 얼른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준비가 다 됐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결혼을 하는데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 싶은 배우자가 아직이라면 어떤 준비가 된 것일까.
누구와도 할 수 있지만, 그 ‘누구’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있는 것이 바로 결혼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누구’보다 그와 함께 사는 나의 모습이다. 결혼이 참 신기한 것이 오랜 연애를 하든 불같이 짧고 강렬한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면 연애와의 간극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동거를 하지 않은 이상 그 차이를 많이 느낄 것이고 식만 올리지 않은 준비된 동거가 아닌 이상 동거와도 결혼은 또 다른 것이다.
연애를 할 때는 각자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멋지게 차려입고 나와 만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집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주변을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게 큰 관심사가 아닐 때이기도 하고. 그런데 결혼을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만의 공간이 꼭 필요한 사람,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아침형 인간, 집중은 밤에만 된다는 사람, 결벽증이라 느껴질 만큼 수시로 쓸고 닦는 사람.
취향과 생활패턴은 오랜 기간 연애를 한다고, 단기간에 마음을 먹고 저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마스터하겠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들으면 꽤 놀랄만한 기간의 연애를 하고, 그만큼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상대방에 대해 새로운 게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런데 보기 좋게 틀렸다. 흔하게는 시댁에 가서 가끔 발견되는 빛바랜 옛 사진 속에서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이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하게 되는 각자의 추억 속에서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이 있었다. 사람은 게임 속 캐릭터처럼 정해진 과정을 거치면 레벨업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그 사람의 결이 완성된다. 나와 알게 된 시간 이후에도 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함께 할 수는 없기에 그 안에서도 그 사람만의 시간과 기억은 쌓이고 그 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가끔은 내가 생각하던 그 사람의 모습과 다른 면에 새롭기보다는 놀랄 때도 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의아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또한 그 사람의 일부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모습과 낯선 그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연결해본다. 도저히 잇고 싶지 않을 만큼 낯설기도 하지만 낯선 모습과 익숙한 모습의 그를 연결하다 보면 지금껏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했던 부분이 조금 이해되기도 하고 어렴풋이 그래서 그랬구나 혼자만의 작은 깨달음이 될 때도 있다.
이처럼 상대방을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할 때도, 많이 알아가야겠다는 열린 마음을 먹고 시작을 해도 느닷없는 곳에서 낯선 상대방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정확히는 낯선 모습이 아니라 많이 보아왔던 그 사람의 모습, 그 사람은 이럴 것이라고 내가 정해놓은 상대방에 대한 범위를 벗어난 모습일 것이다. 연애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에. 그렇다고 놀라거나 내가 모르는 모습을 숨겨왔다고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나 또한 그러므로. 접점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낯선 상대방의 모습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느냐, 그 새로운 발견과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이 사람이다 싶어 결혼했지만 살다 보니 내 생각과 너무 다르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 이것만 아니면 된다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큰 기대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는 것도 같은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