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방심은 금물
가끔 주변에 보면 연애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 걱정스레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이 결혼도 잘한다는데 자신은 너무 경험이 없는 것 아닌가 하고. 나 역시 연애기간 기준으로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횟수에 있어서는 초라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에 자신 있게 답을 주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양보다는 질’이라는 말에 마음이 더 기운다. 어렸을 때는 연애의 횟수나 환승을 통해 쉬지 않고 이어지는 연애가 능력으로 여겨지는 때가 있다. 양보다 질이라고 쓰긴 했지만 이때의 다양한 경험이 훗날의 질의 향상을 위한 기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적이라 나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의 시간을 화려한 연애경력을 위해 할애하고 싶진 않지만 연애를 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점은 약간 아쉬움으로 남기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연애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나이 먹을수록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이유는 각자의 취향과 호불호가 점점 굳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마음, 어떤 현상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점점 옅어지기 때문인 것이 더 크다. 가진 게 많으면 잃을 게 두려운 것처럼, 겨우겨우 나만의 성을 구축했는데 다른 누군가로 인해 일상이 흔들리거나 연애로 인한 소모적인 감정싸움, 이별 후의 공허함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새로운 상대에 대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마음을 가뿐히 눌러버린다. 그 마음 잘 안다.
정확히는 관계가 확실해지기 전, 요즘 말로 썸을 타는 그때의 설렘과 혼자서도 웃음이 피식피식 나고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이는 그 감정. 그 맛에 연애하는 거지. 연애 초반, 연인이 마냥 좋고 만날 생각에 들뜨고 행복한 마음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날 만큼 강렬했다. 모르면 몰라도 좋은 걸 알기에 다시금 그런 감정에 풍덩 빠져보고 싶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고 지금 나에겐 그 감정에 우선순위를 내어주지 못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 뒤에는 이런 두려움이 있다. ‘연애세포’라는 것이 나에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다시 그런 사랑은 못 할 것 같은 느낌. 그런 시기가 이미 다 지나버린 느낌.
하지만 그래도 그중 다행인 것은, 사람의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 일말의 희망이 되어주기도 한다. 외모에 있어 한결같은 취향을 갖고 있어, 분명히 연애 상대가 바뀌었는데 그 취향이 이어지는 느낌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도 우선 본인이 선호하는 외모에 처음 호감을 가졌더라도 사랑에 빠진 이유는 상대마다 다르리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성격과 취향이 변하고 예전엔 이해할 수 없던 상대방의 단점이 이젠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음을 느끼는 시점이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 복잡다단한 관계 속에서, 그간의 연애 경력과 횟수가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에 조금의 용기는 줄 수 있겠으나 그 성패를 좌우할 요소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것의 끝을 결혼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