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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weller Jul 18. 2024

‘나쁜 사람’이란 없다는 말이 주는 위로와 혼란

콜린 후버, <It ends with us | 우리가 끝이야> 책리뷰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Collen Hoover(콜린 후버)의 책 <It ends with us>를 틈틈이 읽다가 어제 완독 했다. 국내에는 <우리가 끝이야>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동생이 원서를 선물로 줘서 영어로 읽게 됐다. 꽤나 두꺼운 책인데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정말 술술 읽어나갔다.


로맨스 소설로 분류돼 있는 이 책은, 내가 보기에는 물론 로맨스적 측면도 많이 있지만, 사회과학 서적으로 읽히기도 했다. 마냥 킬링 타임용 로맨스 소설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가정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가정폭력과 관련된 글은 아니지만 상당한 분량이 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버거운 순간들이 있었다. 또,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나 성적인 묘사, 거친 욕설이 꽤 나온다. 고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확실히 아니다.


북커버가 예쁘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정(혹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는 걸 보며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서 나는 피해자들의 복잡한 심정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됐다. 한때는 나를 그 누구보다 사랑해 주던 사람,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던 사람이 악마로 변하는 건 15초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15초 전으로 돌리면 모든 게 완벽해질텐데. 모든 게 괜찮았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재빠르게 이어지는 가해자의 눈물겨운 사과는 너무나도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잘못한 게 있을 수 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상대의 폭력성이 나올 일도 없을 것 같다. 이건 그냥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첫 번째 ‘사고’를 넘긴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 번째 사고. 그리고 그다음. 또 그다음. ‘이번은 지난번보다 센 폭력은 아니었으니 괜찮아.’ 피해자가 더 맞을수록 그들의 인지능력도 점점 흐릿해진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bad people. We are all just people who do bad things.
‘나쁜 사람’이란 건 없어. 우리 모두는 이따금씩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일 뿐.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맞는 말이어서 주인공을 너무나도 혼란스럽게 만드는 문장이기도 하다. 소설은 가정(데이트) 폭력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 끔찍한 실상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피해자는 가해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가해자도 피해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주인공 둘의 관계를 단지 피해자와 가해자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둘의 관계가 정말 애틋하다.) 그러나 가해자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게 된다. 이성을 잃고 짐승이 되어 피해자를 구타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더 참담한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 절절히 공감이 되어서. 그에게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갖는지 알게 되어 버려서 말이다.




-스포일의 우려가 있습니다.-

아빠의 장례식 헌사에서 아빠의 좋은 점을 하나도 말하지 못하고 내려온 외동딸 Lily. 생전 엄마를 폭행하던 아빠는 사회적으로는 유능한 시장이었지만, 가정에서는 폭군이었다. 아빠와의 좋은 기억은 간간이 있지만 너무나도 아픈 기억은 그 좋은 기억마저 슬픈 기억으로 만들었다. 그런 Lily에게는 Atlas라는 첫사랑이 있다. 그 역시 가정폭력범의 피해자로, Lily의 옆집, 버려진 그 집에 피신해 와서 살다가 Lily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Lily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틈을 타 Atlas가 샤워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먹을 걸 주고, ‘Ellen’ 쇼도 같이 본다. Atlas가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는 자기 방에 몰래 들어오게 해서 Atlas가 밤새도록 토하는 걸 받아주기도 한다. Lily만 주는 건 아니다. Atlas처럼 따뜻한 사람이 어떻게 가정폭력을 당할 수 있는지 Lily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Lily에게 Atlas는 굳센 나무 같다. 추운 날씨에 버려진 집에서 덜덜 떨며 자는 신세임에도 그녀의 관심사를 진심으로 관심 있게 여겨주고, 가정에서 당한 슬픈 일들을 그 누구보다 잘 위로해 준다. 서로의 가정에서 외로웠던 그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보살피며 다정함과 따뜻함, 안정감을 공유한다.


그러나 Atlas가 Boston으로 거처를 찾게 되면서 그 둘은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Boston에서 만나기로 한다. 시간이 흘러 Lily는 아버지의 장례식날 Boston에 돌아와 아파트 옥상에 앉아 있다. 그런 Lily의 옆으로 Ryle이 온다. 성공적인 신경외과 전문의인 Ryle은 너무나도 완벽한 존재다. 그렇게 그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 그들의 관계에 Atlas가 기적처럼 나타난다. 이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나머지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를 다 끝마치면 비로소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슬프면서도 용감하고, 대견스럽고, 안타까운 많은 감정이 내포된 한 문장. ‘우리가 끝이야.’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혹여나 책을 보고 싶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결말을 줄인다.)


책을 사준 동생한테 너무 재밌다고 이만큼 읽었다고 계속 인증하는 중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내가 전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대신 살아본다는 데에서 온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갈구한다. 그게 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심지어 카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해주는 누군가의 이야기든 말이다. (오늘도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옆자리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그만 책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와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를 굉장히 몰입하게 만드는 강렬한 매력이 있다. 허황된 전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개연성 측면에서) 그런 점만 조금 눈감아주면 충분히 주인공의 삶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만큼 대중성이 있는 이야기라 그런지 곧 미국에서 영화로 개봉이 된다고 한다. 영화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얼마나 묘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특히 주인공 Lily의 마음을 따라 독자의 마음이 같이 넘실거리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어디까지 그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긴 한다.


https://youtu.be/DLET_u31M4M?si=Uz8rGQYYRO44za8s


아무튼,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를 정말 가까이서, 또 다양한 입장에서 경험해 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아예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어 나갔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지만, 알고 읽는다고 했어도 감상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작가가 그녀의 어머니가 겪은 일을 각색하여 자전적으로 엮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지만 한 인간의 인생과 내밀한 아픔을 들여다보면 어느샌가 그녀를 옆에서 다독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Lily의 인생을 알고 나면 우리가 앞으로 살면서 만나게 될 또 다른 Lily를 섬세하게 다독여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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