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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히 Dec 30. 2020

2020년을 버티게 한 31 문장

한 해를 돌아보는 방법


어쩐지 낯선 연말

어김없이 연말이 돌아왔다. 연말을 맞이하는 나만의 법칙 아닌 법칙이 있는데 바로 '크리스마스는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연말은 가족과 함께'이다. 매년 31일이 되면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한상 차려놓고 한데 모여 저녁을 먹는다. 건강한 식단을 책임지는 엄마도 그날만큼은 눈감아 준다.


TV에 나오는 각종 시상식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편한 옷을 입고 소파에 있는 나도 그곳에서 어울리고 있는 것마냥 즐겁다. 11시 59분이 되면 가장 좋은 구도로 보신각을 잡는 채널에 정착해 MC, 출연진들과 함께 카운트 다운을 한다. 괜히 숨죽여 '10, 9, 8, 7'을 마음속으로 외다가 "5, 4, 3, 2, 1"하고 큰 소리로 따라 외친다. 새해 덕담으로 울려대는 핸드폰을 뒤로하고 엄마, 아빠, 언니와 포옹을 하며 올 한 해도 고생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자는 소망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짧으면 10분, 길면 1시간 정도 새해의 여운을 느끼다 잠에 든다. 다음날 아침, 해돋이는 고사하고 떠있는 해라도 빨리 보고 싶어 일찍 눈을 뜬다. 새해 첫 날 보는 해는 유난히 크고 동그랗고 달아올라있다.


올해는 시간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느낌이다. 하루도 한 달도 아닌 1년 전체가. 나중에 세월을 돌아보면 2020년엔 까맣고 큰 구멍이 나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20대 후반에 들어서기만 해도 호들갑이던 우리는 내일모레가 지나면 서른인데도 감흥이 없다. 무엇이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세 글자 외엔 남는 게 없을 것 같아 노트북을 켠다.



일력으로 돌아보는 2020년

2020년의 열두 달 중 아홉 달은 덴마크에서 보냈다. 떠나기 전, 가장 소중히 챙긴 건 다름 아닌 달력이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온갖 달력을 챙겨갔다. 나와 동행한 세 가지 달력 모두 제 역할을 톡톡히 했고 그 덕에 타국에서의 아홉 달을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었다.


달력 3종 세트


유일하게 구매해 간 달력은 '민음사X프릳츠의 2020 인생 일력'이었다. 동양고전에 나오는 구절을 하루에 한 문장씩 새긴 달력인데,  매일 한 장씩 뜯어내면서 무언의 위로를 참 많이 받았다. 어쩜 때마침 필요한, 듣고 싶던 말을 어떻게 알고 해 주는지. 위로를 받을 때마다 한 장씩 모아 보관했다. 매일 보고 싶은 말은 벽에 붙여두기도 했다. 모아 놓은 문장을 세어보니 총 31 문장이다.



나를 버티게 한 31 문장

엑셀 창에 서른 한 문장을 쭉 적어 보았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당시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고 복잡한 고민을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때마다 했던 고민을 모아 놓으니 다 거기서 거기였다. 역시 사람 사는 일은 다 거기서 거기인 건가. 나를 버티게 한 31 문장으로 2021년을 살아가 보려 한다. 그중 몇 가지 문장을 새해 다짐과 함께 적어본다. 문장의 출처는 '민음사X프릳츠의 2020 인생 일력'에 있다.


1) 편견 없이 세상을 보고, 최선을 다했다면 만족하자

- 사물은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을 거쳐서야 이상해지는 것이기에 이상함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산해경』|2/22

-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 사마천『사기』|3/22

-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대학』|3/23

- 하루 닥칠 일을 근심하기보다는 종신토록 근심할 일을 근심하라. 김시습「북명」| 4/12

-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는 없다.『도덕경』|7/25  

- 그런저런 근원을 단절시키지 않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장작더미를 안고 불을 끄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고『한서』|7/26  


2) 오직 한 번뿐인 나를 위한 인생

-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망정 세상을 가볍게 보고 내 뜻대로 하겠노라! 사마천 『사기』|4/1  

- 하늘 위에 하늘 아래 오직 내가 가장 존귀하다.『전등록』|4/30  

- 건강보다 더 큰 은혜는 없으며, 만족할 줄 아는 마음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법구경』| 6/1  

- 젊을 때부터 흰머리가 되도록 사귀었으면서도 새로 사귄 듯한 이가 있는가 하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하고도 옛날부터 사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사마천 『사기』|6/23  

- 염구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도중에 그만두게 된다. 지금 너는 해 보지도 않고 미리 선을 긋고 있다." 『논어』|8/13  

- 옛사람은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본받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남이 자기보다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유효인 「스승을 찾아서」|9/11  


3) 독서와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

- 언어란 날개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아주 쉽게 멀리까지 전해질 수 있고, 감정은 뿌리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어렵지 않게 맺힌다. 그렇다면 문자를 사용하여 그것들을 전달하고자 할 때 어찌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심조룡』|4/6  

- 글을 대충 읽는 사람은 의문이 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문이 없는 게 아니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문이 없는 데서 의문이 생기고, 맛이 없는 데서 맛을 느껴야 독서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홍대용 「독서부결」|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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