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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Jul 30. 2021

소녀에게

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해석

저절로 몸이 웅크려 들었다. 엄마의 눈을 절대 바라봐서는 안 되었다. 혹여라도 눈에 띄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화장실로 끌려가야 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욕조에서 나올 수 없었다. 극도의 긴장에 소녀는 소변이 흐르는 것도 잊었다. 배가 고팠다. 소리 없이 울었다. 울면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조금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와선 안됐다. 7살 소녀에게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 엄마를 쳐다보면 안 됐지만 보지 않으려 할수록 더욱 바라보게 됐다.


밥은 짰다. 소금과 밥이 뒤섞였고 먹지 않고 뱉는 순간 손찌검이 시작됐다. 목구멍까지 들어갔던 밥알이 튀어나오고 바닥에 떨어진 밥을 다시 주워 먹으라 했다. 소녀의 머리 위로 뜨거운 국물이 쏟아졌고 소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엄마를 외치며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마침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는 소녀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내동댕이 쳤다. 매질이 시작됐다. 눈물을 들켜서다. 이곳저곳 딱딱한 화장실 바닥에 7살 어린 소녀는 고꾸라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대야에 물을 받아 퍼붓기도 했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지 락스 한 통을 소녀에게 들이부었다. 살을 타는 뜨거움과 숨이 멎을 것 같은 독한 냄새에 소리를 지를 힘도 정신도 없었다. 눈물을 참아봤지만 울지 말라 때렸고 괘씸하다 때렸다. 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흘렀고 그걸 본 소녀는 참았던 울음을 다시 터트렸다. 이성을 잃은 엄마가 손을 번쩍 드는 순간  아빠가 들어왔다.


"적당히 해"


소녀는 정신을 잃었다.


유치원에는 가끔 갈 수 있었다. 한 여름에도 온몸을 다 감싸는 긴 팔과 긴 바지를 입어야 했다. 가끔 선생님이  소녀의 작은 상처와 눈빛을 읽고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매질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한동안  유치원도 친구들도 밥도 먹을 수 없었다. 그걸 알아차리는 데에 7살이라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야겠다는 본능, 아프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엄마와 화장실에 단둘이 남게 되는 공포만으로도 소녀는 더욱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주세요."


배가 고팠다. 또래보다 작다 못해 마른 소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며칠 만의 끼니인지 소녀는 알 수 없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매 맞지 않아도, 숨지 않아도, 울음을 삼키지 않아도 되었다. 친구들과의 소꿉놀이에서는 제빵사가 되어 먹고 싶던 빵을 원 없이 먹었다. 의사가 되어 생채기가 난 곳을 치료해주고, 멍들고 부러진 뼈를 정성스레 치료해주었다. 소방관이 되어 성냥을 하나씩 나눠갖으며  잠시라도 아이처럼 웃어보았다. 그렇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성냥을 손에 꼭 쥐었다.


소녀가 눈을 떴다. 몸을 짓누르는 답답함에 작은 숨을 토해내는 순간 입으로 흙덩이가 들어왔다. 엄마를 외칠 수록 소녀의 몸 위로 흙이 채워졌다.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엄마를 부르고 또 불렀다.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다. 몸을 움직이려 할수록 땅에선 소녀를 더욱 묶어두었다. 몸이 굳어갈즈음 손에 쥔 성냥도 바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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