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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Oct 22. 2019

중화서국, 예스아시아.. 그리고 애플뮤직

나의 레슬리 ep10 : 장국영과 함께 걸어온 시간들 (1)

해외 음반을 구하기 힘든 80 년대에 입덕을 하게 된 나에게 가수로서의 장국영은 참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그런 내가 장국영의 노래를 처음으로 들은 것은 서울음반에서 나온 2장짜리 베스트 앨범을 통해서였다. 재미있게도 이 앨범들은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다 보면 선물을 받고 또 받고 해서 같은 앨범을 서너 장씩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질량 보존의 개념을 이 테이프로 이해했다. 


서울음반에서 발매된 The Greatest Hits Of Leslie Cheung. 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베스트 앨범이라는 것의 개념조차 모르는 채로 그저 가지고 있던 앨범만 반복해서 듣던 국민학생 시절. 그때는 장국영의 음반은 이 2장의 앨범이 전부 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예상을 깨고’ 투유 광고 주제가가 담긴 앨범이 한 장 더 출시되었다. 어? 그런데 모르는 곡들이 꽤 많이 실려있었다. 처음 듣는 생경한 노래들이 귀에 익숙해질 무렵, 내가 모르는 레슬리의 노래들이 더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그가 은퇴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얼마 뒤에는 국내에 은퇴콘서트의 실황 비디오와 앨범이 차례로 출시되었다. 처음 이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꽤 자신만만했다. 
내가 가수 장국영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앨범을 세 장이나 가지고 있으니 대부분 내가 아는 곡들로 채워져 있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건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내가 알고 있는 노래는 콘서트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고별 콘서트를 가득 채운 모르는 노래들을 들으며 나는 마치 열어도 열어도 안에서 새로운 인형이 튀어나오는 마트로슈카를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시절의 나는 새로운 퀘스트를 깰 때마다 새로운 아이템을 획득해내는 게이머와 비슷한 희열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또 얼마 뒤부터는 하굣길에만 판이 벌어지는 학교 앞 카세트테이프 좌판에 장국영의 해적판 앨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음반을 사다가 무작위로 복제한 것이었는데, 싸구려 테이프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들었다가는 테이프가 금방 늘어져 버리곤 했다. 그래서 늘 구입 직후에는 질 좋은 공테이프를 사다가 두 세 벌 정도 미리 복사를 해놓고 오래도록 안전하게 듣곤 했다.


그리고 이런 해적판들은 한 번 놓치면 두 번 다시 구경하지 못할 것이 뻔해서 보일 때마다 닥치는 대로 구입을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렇게 구입한 앨범 중에 정규앨범은 한 장도 없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나름 인기곡들만 엄선해서 판매하겠다는 나름의 장인정신인지, 그도 아니면 검증된 곡만 팔겠다는 장삿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런 해적판을 사면 그중 절반 정도는 대개 아는 곡이었다.



나는 팬심 하나로 중국어 초급을 독학으로 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착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시작은 영화 <천녀유혼>의 주제가였다. 문득 이 노래가 따라 부르고 싶어 졌던 어느 방학, 나는 국내 정식 발매된 앨범의 가사집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중국어 사전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라, 어린 마음에 한자 가사를 읽으면 그것이 중국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몇 날 며칠을 옥편을 뒤져가며 가사에 정성스레(라고 적고 미련하게 라고 읽는다) 토를 달았다. 그리고 대망의 순간, 깔끔하게 정리된 나만의 가사집을 들고 야심 차게 첫 소절을 따라 불러보려는 순간 내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人生路 美夢似路長
인생이라는 길에서 아름다운 꿈은 아득히 멀고


이 첫 소절을 나는 당연히 한자 독음인 “인생로 미몽사로장”으로 불렀으나, 카세트테이프 속의 장국영은 “얀쌍로우 메이몽치로우청”이라고 발음한 것이다. 


응!? 뭐라고?!


하지만 멘붕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자를 읽으면 중국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어느 날, 
노상에서 산 새로운 앨범을 듣다가 새로운 충격을 만난 것이다. 뭐랄까, 천녀유혼인 듯 천녀유혼 아닌 천녀유혼 같은 노래를 듣게 된 것이다. 노래는 분명 같은 곡인데 왜 때문인지 가사도 완전히 다르고 전체적인 발음도 달랐다.

복제판이라 가사집이 있을 리가 없는데 흐릿하게 복사된 트랙리스트를 한참 동안 보니 노래 제목 옆에 아주 작게 (國)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땐 몰랐지만 그때 들었던 노래는 원곡인 광동어 버전이 아니라 북경어(만다린) 버전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날 내가 구입한 앨범은 북경어 버전 베스트 앨범이었다.



이렇게 광동어와 북경어가 뭔지도 모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언어 간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가사 내용이 궁금해서 따라 부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옥편을 뒤지다 보니 야매 해석 능력이 조금씩 생겨났고,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책에서만 보던 독학이란 것을 얼결에 해내고 말았다.
아마도 제대로 각을 잡고 ‘자, 지금부터 중국어라는 것을 혼자서 공부를 해보자’ 작정했다면 택도 없었겠지만, 시간은 참 많은 것을 해낸다. 팬심에 10 년이 넘는 긴 시간이 더해지자 중국어 초급을 뗀 수준이 된 것이다. 거기서 더 열심히 공부를 했더라면 유창하기까지 했겠지만, 아쉽게도 늘 ABC 수준의 초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세월이 흘러..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나씩 하나씩 어슴프레 알게 되었던 가수 장국영에 대한 베일을 확 들춰내버린 곳이 나타났다. 바로 명동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화서국이다. 중화권 가수 팬질을 한 사람 치고 모를 리 없는 성지인 그곳!

 

중화서국의 모습. 아마도 최근 모습인 듯하다 [출처 : 서울역사아카이브]


요즘엔 도쿄의 K-POP 팬들은 모두 오다이바로 몰린다는데, 그 시절의 중화권 팬들은 명동으로 향했다. 중국대사관 앞 골목에 있는 중화서국과 바로 옆집인 생원, 그 건물의 2 층에 있던 이름은 기억 안 나는 중화권 영화 드라마 비디오테이프 전문 대여점, 그리고 대로변에 있던 대한예술공사까지. 이곳들이 그 시절 중화권 콘텐츠 벨트였다.
화교가 운영하는 서점이자 잡화상인 중화서국은 매번 홍콩에 직접 갈 수 없는 내가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장국영의 음반을 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대학 1 학년 때 이 곳을 알게 된 후, 거의 모든 약속은 명동으로 잡았고 약속 전에 꼭 들러서 새로 들어온 물건이 없는지, 혹은 지난번에 주문한 물건이 혹시라도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곤 했다.

한때 나는 장국영의 모든 정규앨범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중 절반쯤은 이곳에서 장만을 한 것 같다. 물건을 떼 오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직접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앨범 하나 구하려면 짧게는 1 주일, 길게는 한 달도 걸렸지만 그렇게 한 장 한 장 모으는 희열이 있었다.



다시 몇 년 후, 그 희열은 예스아시아라는 음반 판매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누군가를 거치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음반을 구입할 수 있고(그것도 발매 당일에! 가끔은 정식 발매 전에 예약 구매도 가능했다) 오래지 않아 집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다니. 이것은 가히 신세계였다.

덕분에 예스아시아의 장국영 페이지는 한동안 내 북마크의 최상단에 올라있었고, 나는 수시로 접속해서 건질만한 것이 있는지 매의 눈으로 살펴보곤 했다. 이 시절을 지나며 나는 더 이상 명동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 후에 책을 한 권 읽었는데, 당시 종종 만나던 한의사 언니가 IT 분야에서 일하려면 꼭 읽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한 책이었다. 제레미 레프킨의 <소유의 종말>이었다.

사실 무슨 뜻인지 잘 와 닿지도 않으면서 이 업에서 일하려면 읽어두라고 하니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견디며 꾸역꾸역 겨우 읽어냈었다.

물론 지금 그 책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언젠가 소유의 개념은 사라지고, 접속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는 주장만은 생생히 남아있는데, 역설적으로 너무나 와 닿지 않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당장 장국영의 앨범을 모아둔 내 컬렉션이 이렇게나 소중한데, 유사시에는 책장 위에 꽂아둔 스크랩북을 가장 먼저 챙길 생각인데, 이런 소유의 개념이 사라진다니. 아무리 미래예측이라지만 전혀 와 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소유의 시대, 그중에서도 소유와 집착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덕질을 하는 나에게는 그저 달나라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하지만 그로부터 십수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책이 예측한 미래가 맞았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 달의 시간을 기다려서 몇 년 묵은 음반을 구하던 나는 이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즐겨찾기 해두고 신보 알람이 오면 스트리밍으로 감상한다. 물론 장국영의 경우에는 더 이상 알람이 오지 않지만. 그리고 앨범과 스트리밍 사이에는 당연히 과도기처럼 mp3 파일 수집에 집착하던 시기도 거쳤지만, 지금은 그 수많은 음악파일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때(라고 하기에는 꽤 오래) 국내 유명 음악 서비스의 기획자로 일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그의 앨범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수년간 음악 서비스를 만들어왔지만, 내 손으로 만들었던 서비스들에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곡은 단 한 번도 감상해보지 못했다. 한때는 그것이 내 인생 최고의 아이러니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리메이크곡이 많아 저작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인지 장국영은 음악 서비스의 측면에서 보면 온갖 희한한 케이스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였다. 그 말인즉슨 신규 기능을 테스트하기에는 최고의 가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비스를 개편한다거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면 나는 놀면서 돈을 버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끼며 즐겁게 장국영의 음악을 듣고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개발자들은 늘 상상하지도 못했던 오류를 발견해내는 나를 신기해했다. “대체 이런 오류는 어떻게 찾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이 오류요? 장국영이 알려준 거예요”라고.



시간이 흘러 음악 서비스에서 다른 분야의 서비스로 적을 옮긴 어느 날, 한국에서도 애플뮤직이 론칭되었다. 무료 1 개월 체험권을 받아서 처음 애플뮤직에 로그인한 다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당연히 “장국영”을 검색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음악 서비스 중에서 가장 풍부한 장국영의 음원 데이터베이스를 목격했다. 그야말로 노다지를 캔 기분이었다! 세상에 내가 스트리밍으로 이 노래들을 듣는 날이 오는구나, 감개무량했다.


스트리밍이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무척 멋진 일이다. 하나의 파일을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하는 팬들이 접속해서 함께 듣는다는 것이니(물론 실제로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하나의 파일에 액세스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파일은 각 지역별 서버에 나누어서 저장된다), 한 사람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좋아한다는 팬질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본다.



2018년에 발매된 앨범 哥哥的歌.


그리고 2018 년 3 월, 홍콩에서는 장국영의 15 주기를 기념하는 앨범이 하나 나왔다. 미 발표곡 두 곡과 스페셜 리믹스가 함께 수록된 베스트 앨범이었는데, 나는 이 앨범이 출시되기 전에 설레는 마음으로 휴대폰에 알람을 설정해두었다. 그리고 알람이 울리는 순간 애플뮤직에 접속해서 실시간으로 미발표 음원을 들었다.


미발표곡들은 아마도 데모송이었던 것 같았다. 한 곡은 장학우의 정규앨범에 실렸고, 다른 한 곡은 매염방의 대표곡 중 하나인 것을 보면. 이 세 사람이 한 솥 밥을 먹던 시절, 이렇게 같은 곡을 돌아가며 불러보고 가장 어울리는 사람에게 곡을 주었나 보다 싶었다. 매염방의 노래 <冰山大火>는 전에도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그다지 새롭지 않았는데, 장학우의 노래로 알고 있었던 <飛機師的風衣(비행사의 외투)>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https://youtu.be/nW8HC4LwPh4

이 노래가 처음부터 레슬리의 곡이었더라면.. 히트했을까?


당시는 마음이 힘든 일이 많았던 때였는데,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갓 서른을 넘겼을 과거의 장국영이 마흔이 넘은 현재의 나를 위로하는 묘한 기분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소유가 종말 했다는 사실을 기쁘게 인정했고, 그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지금도 이 앨범은 내가 가장 자주 듣는 컬렉션 중 하나다. CD는 아예 구입조차 하지 않았지만, 늘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 최상단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또다시 미발표곡이 출시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과거의 어린 장국영에게 또 한 번 위로받을 날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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