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슬리 ep14 : 내가 사랑한 배우 장국영 (2)
장국영처럼 성 정체성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징글징글할 정도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
지금도 종종 나에게 그 문제에 대해 넌지시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는 참 얄궂게도 “그래도 너는 장국영이 좋니?”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티를 내지 않을 뿐이지 내가 눈치를 못 챈 게 아니라고!).
사실 나는 그 질문의 답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당사자 이외의 누군가가 대신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성애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 한때 나와 교제를 했다고 해서 단언할 수 있을까. 내가 결혼을 했다 해도 남편 역시 100% 단언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고로 그저 일개 팬에 불과한 나는 그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묻지 마시라)
하지만 그보다 더 솔직한 마음은, 사실 나는 그가 누구를 사랑했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국영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SF 판타지 같은 장래희망은 접어둔 지 오래고, 내가 사랑한 것은 엔터테이너이자 배우로서의 예술가 장국영이지 자연인 장국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인 장국영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나는 사실, 연예인이 아닌 장국영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설령 내가 그를 연예인이 아닌 남자로서의 장국영을 좋아했다 해도 어쨌든 나는 그저 일개 팬일 뿐이다. 그에게도 그의 인생이 있지 않은가.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참 피곤하구나 싶은 것이 우리는 아무리 지랄 같은 직장이어도 퇴근을 하고 나면 내가 남자를 만나든 여자를 만나든 도덕적인 문제만 없다면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다. 당연히 먹고사는데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하지만 연예인들은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까발려진다. 본인들은 퇴근 후에 상사가 문자라도 보낼라치면 진저리를 치고 애인이 있느냐고 집요하게 물어오면 그 상사를 사이코패스 취급을 하면서 연예인들에게는 늘 그 이상을 요구한다. 그것이 인기라는 왕관을 위해 견뎌야 할 무게이기도 하겠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연예인이라는 것은 그저 그들의 직업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좀 안된 마음이 들기도 한다. 24시간 언제 어디서도 결코 퇴근할 수 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셈이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레슬리를 정말로 아끼는 대목이 무엇인가 하면, 이러한 세간의 시선에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논란과 억측을 지어내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남자를 사랑하거나, 남자를 사랑한다는 착각에 괴로워하는 역할을 연기하고 무대에서 천연덕스럽게 하이힐을 신어낸 그가 나는 좋다. 아마 내가 그였다면 아무리 욕심나는 연기와 무대였다고 해도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선뜻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지간한 자기애와 자신감이 아니면 불가능할 일이 아닐까.
<패왕별희>의 데이는 예쁘장한 어릴 때부터 경극 속 여성 역할을 강요받아 스스로 여자라고 여기며 자라면서 상대역을 사랑하게 된다. “1 분 1 초라도 떨어지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며 시종일관 다른 이를 사랑하는 상대배우를 애타게 바라본다.
<금지옥엽>의 고가명은 홍콩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가수 로즈와 연인 사이다. 그녀를 현재의 자리에 올려놓은 최고의 작곡가이지만 늘 새로운 영감에 목말라한다. 그러던 중 신인가수 오디션에서 발탁한 ‘(실제로는 남장을 한 여자인) 남자가수’ 자영의 엉뚱함에 매료되어 다시 영감을 찾게 되지만, 어느새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움에 빠진다.
<해피투게더>의 하보영은 동성 연인과 함께 홍콩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떠나왔다. 함께 이구아수 폭포를 보자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이 무색하게 늘 그는 연인의 곁을 떠났다 돌아왔다를 반복한다. 언제나 연인이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려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 하지만 또 한 번 떠났다 돌아온 어느 밤, 그를 기다리는 것은 텅 빈 방 뿐이다. 그리고 연인이 더 이상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완전히 떠났음을 깨달은 그는 연인이 사용했을 담요를 부여잡고 서럽게 운다.
세 작품 속의 장국영은 모두 남자를 사랑한다. 물론 그중 하나는 남장여자를 사랑하는 경우지만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어서든, 남자로서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든, 장국영이 연기한 인물들은 모두 그저 자기 앞의 한 사람을 사랑할 뿐이다. 한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 성별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남자라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그 사람이 남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사랑 또한 이성 간의 사랑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연기로서 증명해낸다.
언젠가 배우 전도연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토록 처절했던 영화 <밀양> 조차도 아들의 유괴와 살해를 겪은 여주인공과 그녀의 곁을 맴도는 남자의 러브스토리라고 생각했다고. 나는 이 인터뷰를 읽으며 장국영을 생각했다. 그가 이 작품들을 선택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다른 것은 다 배제하고 그저 사랑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그의 작품 선택을 놓고도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종국에는 의심으로 인해 연기력까지 폄하 당했다.
출처는 정확하지 않지만 언젠가 “당신이 동성애 연기를 잘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도 동성애자인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럼 배트맨을 연기한 배우는 실제로도 배트맨이냐”라고 받아쳤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역시 우리 국팔씨다!”라며 장국영의 순발력에 감탄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사실 이런 논리의 오류가 어디 있나 싶다. 장국영이 여성과의 사랑은 연기를 못해내는 배우도 아니었을뿐더러, 저 질문을 뒤집어본다면 남녀 간의 사랑을 제대로 연기 못하는 배우는 모두 동성애자로 의심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닐는지.
"장국영이 떠나고 난 뒤, 네모난 모양이던 홍콩영화는 삼각형으로 그 모양이 변했다."
레슬리가 세상을 떠난 후, 한 인터뷰에서 오우삼 감독이 했다는 말이다. 작품 하나가 히트하면 복제품 같은 작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정형화된 장르영화와 배우들이 활동하는 홍콩 영화계에서 이런 과감한 행보를 선보였던 장국영은 얼마나 특이하고도 소중한 존재였는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또 얼마나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을지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