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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Feb 12. 2024

미국살이의 단면들


  다사다난한 한 주였다. 보통의 주간 일기 말고, 오늘은 몇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일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서 나름의 균형을 가지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나쁜 뉴스부터다. 


때는 바야흐로 평일 저녁, 바쁜 일과에 데친 시금치처럼 절어진 채로 몰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주문을 마치고 밥 먹기 전 혼자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데, 근거리에서 고성이 오가는 것이 들렸다. 그것도 아주 굵고 큰 소리였다. "Shut the F*** up!!!!" "YOU!! Shut the F*** up, son of the B****!!!" 이런 소리가 몇 번을 오갔는지 모른다. 


  직감적으로 화장실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별생각이 다 들었다. '나가도 될까?' '나갔다가 괜히 봉변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화장실에 언제까지고 있을 수도 없는 법. 숨을 가다듬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앞에서 두 남성이 쩌렁쩌렁하게 싸우고 있었다. 보아하니 부랑자같이 생긴 백인이 음식을 사러 줄을 서 있던 흑인에게 시비를 건 모양새였다. 최대한 눈을 안 마주치고 피해 나오는데 성공했다. 남편이 있던 식당가 자리로 돌아왔다. 거리가 멀어지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 부랑자 같은 사람이 유독 계속 소리를 지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러더니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 근처로 오고 있었다. 온몸의 털이 괜스레 곤두서는 느낌이 들면서 '총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이르자 상당한 공포심을 느꼈다. 게다가 몰을 둘러 보건대 왠지 남편과 나, 두 자그마한 동양인이 시비 털기 딱 좋겠다는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좌불안석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프로레슬링에서나 볼 법한 보안 요원 세 명이 왔다. 9척 장신에다 상당한 부피감, 그리고 팔 전체를 아우르는 문신들. 무엇보다 그들의 허리춤에는 두어 개의 총과 곤봉, 각종 제압 용품(?)들이 덜렁덜렁 달려있었다. 그걸 보고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그들이 오자, 그 시비를 털고 다니던 남성은 갑자기 착해졌다. 남편과 나는 원래 몰에서 음식을 먹고 오려고 했으나, 그 길로 포장을 해서 집에 와서 먹었다. 


   둘 다 어딘가 모르게 쳐지고 기분이 저조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인가 싶었다. 그나마 싸우던 흑인은 그 부랑자보다 덩치라도 엄청 커서 붙더라도 이길 것 같았다. 우리는 몸집도 작고 총기 소유도 못하는 유학생들이니 시비가 붙어도 도망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무력한 생각이 들었다. 또, 이상한 사람으로부터 타깃이 되기 딱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말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총기 사건사고 뉴스를 보면서 미개하다고 생각했다. 왜 괜히 총기 소유를 합법화해서 디스토피아를 초래할까 싶었는데 막상 와서 살아보니 오히려 하나 있으면 좀 안심이 될까 싶기도 했다.  앞으로 향후 몇 년 간 이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이번에는 좋은 단면이다. 


  설 연휴가 도래했다. 원래는 떡만둣국과 간단한 전을 준비해서 동기들을 초대해서 함께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최근 학기가 다소 고되고 일정이 매우 힘들어서 설이고 나발이고 다 포기해버린 상태였다. 동기들이 Lunar New Year을 함께 축하해야 한다며, 힘들면 따로 준비하지 말고 같이 인디폴에 있는 한식당에 가는 걸로 기념하자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동기들과 파트너들이 총출동하여 한식당으로 향했다. 



   친구가 구글에 한국 설날과 기리는 방법을 검색해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인사와 더불어 세뱃돈을 봉투에 넣어 주었다. 너무 웃겼다. 세배라도 해야 하나 난감하기도 했지만 그냥 마음이려니 하고 받았다. 다른 친구는 냅다 이것저것  식재료들을 다 넣어 선물로 주었다. 그러면서 한국은 설날에 어떻게 기념하는지, 무슨 음식을 먹고 무슨 놀이를 하는지 꼬치꼬치 열심히도 물어보았다.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은 각자의 문화권의 색깔을 유지하고,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도 친구들은 인도의 전통 의상 '사리'도 하나 이상 꼭 갖추고 있고, 국경일이면 학교에 전통 의상을 입고 오기도 한다. 돌이켜 보니 필자는 갖춰 입을 한복 한 벌도 없거니와, 설날도 쉬기 바빴던 터라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가꾸어 나아가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였다. 


   동기들과 각자의 배우자/약혼자들이 총출동하여 함께 기념한 첫 설날이었다. 타지에서 보내는 설날이 외로울 법도 한데, 덕분에 복작복작 명절처럼 잘 보냈다. 다른 문화권에 대한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마음 따뜻한 시간이었다. 더불어, 내년에는 미리 떡국이나 만두, 전, 윷놀이 같은 것도 좀 준비해서 소개해 주고 같이 즐길 수 있게 준비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외살이 좋은 면도 있고, 호락 호락치 않은 면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이 한 주에 다 일어났다. 공포심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또 좋은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 시간이었다. 잘 살아지는 것, 안 살아지는 것을 모두 쓰겠다는 다짐에 충실한 포스팅이었다. 


   심리 상담을 해오면서 개인적으로 정립한 철학은, '대부분의 사람은 선하다 Most people are good'는 것이었다. 삶에 여러 단면의 모습들이 제각기 공존하지만 이 믿음을 주축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자 한다. 해외살이 어렵고 고된 순간도 많겠지만 차분하게 잘 대처하고 소화해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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