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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Dec 06. 2022

밑창을 잃고 난 걸어가네

오늘도 강인하게 보내는 하루

 

   신발이 아무리 많아도 거의 한 계절 내 신는 신만 계속 신는 편이다. 겨울에는 이 워커가 바로 그 친구다. 발에 맞게 길이 든 신발은 참 편하다. 오늘도 워커를 신고 30분 거리 학교에 걸어갔다. 볼 일을 다 보고 집으로 오려던 참인데 오른발 아래서 뭔가 잘못되는 느낌의 촉감이 들었다. 이 슬픈 촉감은 흔하게 겪어본 것이기에, 직감을 하고 신발을 들춰올려보니 역시나였다. 오늘도 또 밑창이 나가셨읍니다.

놀랍지도 않읍니다. 올해만 n번째


   이상하게 신는 신발마다 희한하게 이렇게 밑창이 통으로 잘 떨어진다. 플랫슈즈, 옥스퍼드화, 워커 할 것 없이 맨날 신발이 이렇게 부서지곤 하는데 왜 그러는지를 모르겠다. 발 구조가 이상한가? 유난히 신발 밑창이 잘 망가진다. 싼 것만 신어서 그런가? 비싼 신발은 안 그러려나? 모르겠다. 문제는 집에 도착하려면 25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줘! 하는 심정으로 살금살금 조심히 반쯤 떨어진 밑창을 신중하게 잘 끌며 가고 있었다. 모든 신경이 발바닥을 향하는 것만 같았다. 조마조마했다.


   한 100M는 갔을까? 갑자기 오른쪽 발에 싸한 시원한 감촉이 도는 것이었다. 아, 쫑 났다-. 완전히 분리되어버린 밑창을 들고 허탈하게 쳐다보다가, 들고 가기엔 모양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가방 옆 주머니에 꽂았다. 본의 아니게 이상한 걸음걸이로 걸어 돌아왔다. 양쪽 높이 차이가 나서, 신호등을 기다릴 때는 저절로 짝다리가 짚어졌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밑창이 방한에도 중요하구나를 느꼈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스팔트 냉기가 아주 잘 스며올라 오더라. 1mm의 가죽으로 그래도 맨발 신세, 그것 하나만큼은 면한 채 집까지 시원하게 걸어왔다. 나는 프로다.

그렇지. 길 한복판에서 늘 부숴져야지.

 

  아마존에 워커를 검색해 보다가 한국 보세처럼 저렴한 가격이 잘 없어서 한숨을 쉬며 앱을 닫았다. 역시 K-보세가 짱이다. 주머니 사정 어려운 유학생 부부라,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수 없는 처지다 보니 아낄 수 있는데 까지는 아껴봐야 한다. 집에 강력접착제가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신중하게 밑창에 본드를 붓고, 체중으로 있는 힘껏 즈려밟아본다. 본드로 잘 붙을지 자신이 없다. 또 떨어지면 그때는 새로 사야 할 텐데 걱정이다. 돈을 최-대한 아껴서 여행에 투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고 싶은 것을 다 사 가면서 여행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밑창만 빼면 아직 한참 쓸만한 워커라 영 아쉽다. 내일 아침 본드가 붙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단 아쉬운 대로 이번 겨울만이라도 조금만 버텨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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