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밍턴. 이름만 들으면 봄에 꽃이 만개해야 할 것 같은 타운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봄꽃에 상당히 인색한 동네다. 여름과 가을이 하도 찬란하고 예뻐서 어느 계절보다도 봄을 고대했건만, 막상 봄이 의외로 별 볼일이 없다. 한국 같았으면 봄에 개나리를 시작으로 목련, 벚꽃을 비롯해 각종 꽃들이 만개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국의 야생 봄꽃들을 당연시하고 살았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없어져보니 그게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것이었는지 실감한다.
지난 주말, 내내 춥던 블루밍턴도 기온이 반짝 올라서 꽃이라도 보러 갈 겸 동네 공원과 호수를 찾았다. 세상에, 20도에 육박하는 기온에 4월 정도 되었으면 호수를 둘러싼 산에 무슨 꽃이라도 펴있을 줄 알았건만 겨울과 다름없는 풍경에 적잖이 실망을 했더란다. 문익점 선생님처럼 양말에 벚꽃 씨앗이라도 가져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황량한 미국 중부의 풍경을 어쩌면 좋을꼬.
한겨울 아니고 4월의 풍경입니다만,
그나마 학교와 주택가 주변으로 드물게 핀 벚꽃나무들이 포착이 되기는 한다만, 벚꽃 자체가 한국 벚꽃처럼 가지마다 팝콘이 미어터지는 듯한 풍성한 그림이 아니다. 다소 듬성듬성, 가지가 훤히 보여서 사진도 잘 안 나오고 어딘가 좀 허전하다. 색깔도 분홍빛이 거의 없다. 벚꽃 아니더라도 다른 종류의 꽃이 필 수도 있겠지만, 어디서 가져다 심어놓은 화단의 꽃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어렵다. 지난 주말에 보니까 한국 지인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벚꽃으로 야단법석인 것을 보면서 그 아기자기함과 감성이 그리웠다. 아쉬운 대로 듬성듬성한 벚꽃이라도 담아보았다.
스읍-. 뭔가..... 아쉽다.....
뭔가..... 많이 빈다
한국에서는 꽃 보러 피크닉을 갈 때, 화사하게 입고 가서 사진을 찍는 재미가 또한 쏠쏠했다. 개인적으로 나풀거리는 K-보세 스타일 봄옷들을 정말 사랑하던 사람이었는데, 미국에 가져오니 좀처럼 입을 일이 없다. 왜냐하면 운동복이나 학교 맨투맨 티만 입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과하고고 상당히 어색하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한국 보세 쇼핑몰에 들어가 살랑거리는 옷과 신발들을 보아하니 마음이 일렁인다. 화사한 옷 입고 꽃구경 가고 싶다!
스포티룩이 국룰
봄에 한 가지 더 놀랐던 것은, 날씨가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이다. 겨울에도 내내 흐리멍덩했는데 봄까지 그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런던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가 런던 날씨랑 거의 비슷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블루밍턴이 아니라 레이닝턴으로 개명해도 될 것 같다. 3월에 우중충하게 흐리고 비 오다 보니 야외활동은 거의 못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가장 익숙한 톤
흐린 날 꿀꿀한 집순이 라이프를 비춰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신도시 아재들의 서준 맘이었다. 개그맨들이 우리네 삶 속에 있는 주변인들의 캐릭터를 잡아내서 연기하는 것을 보면 너-무 웃겨서 그들은 천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도시에 살아보지 못했지만 왠지 너무나 그럴듯하고 어디선가 만나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엄청 중독되었다.
특히, 마음에 있는 말은 죄다 입 밖으로 내고 보는 경솔함과 투명함에 배꼽을 잡게 된다. 말은 또 어떻게 저렇게 한치의 막힘도 없이 폭포수처럼 하는지, 정말 기절이다(눈물 콧물이다).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적적할 때 서준맘 영상을 보면 외로움이 싹 가신다. 조금 골 때리고 푼수지만, 밉지 않은 캐릭터다. 봄나들이를 즐기지 못하는 설움을 서준맘 보면서 다 풀고 있다.
한국의 봄날이 매년 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타지에 와보니 그게 참 예쁘고 소중한 것이었구나를 깨닫는다. 이래서 미국 시골 학교에 유학간 학생들은 할 게 없어서 연구를 한다는 말이 생긴 것일까 조금은 실감도 났다. 공부랑 일이나 열심히 하자. 아쉬운 마음으로 블루밍턴의 4월 봄날을 지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