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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Aug 15. 2024

어바웃 타임을 눈앞에서- 미국인 결혼식에 다녀오다

6시간 동안의 결혼식이라니


 박사 동기가 결혼했다.


  동기는 작년 입학 때부터 약혼한 상태로 결혼 준비 중이었다. 첫해 함께 동고동락하며 프로그램에서 생존하면서 결혼 준비까지 착착 마친 대단한 친구다. 학기 중에 정말 바쁜 프로그램인데, 그 와중에 주말에 짬을 내어 결혼식 준비를 했다니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었다.


  박사 동기들 5명 모두 정식으로 결혼식에 초대받아서,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콜로라도 덴버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결혼한 친구들은 남편들도 함께 초대받았다. 남편과 나 둘 다 미국인 결혼식은 처음 가보는지라 궁금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덴버행을 준비했다.


   모쪼록 두어 달 전 집 우편으로 청첩장이 왔고, 동기 부부가 생성한 결혼식 사이트에서 참석 여부 설문(RSVP)도 제출했다. 미국은 축의금 대신에 Registry라고 해서, 결혼할 부부가 필요한 리스트를 작성해 두면 초대받은 사람들이 이를 온라인으로 구매해 주도록 되어있다. 위의 사진처럼 다양한 가격대의 물건들이 리스트업 되어있어서 원하는 것을 사주면 된다. 현금 축의나 기프트 카드도 가능하다.


   드레스 코드도 지정해 주는데 여러 코드 중 이번 동기의 결혼식은 가장 격식을 차리는 드레스 코드인 Black Tie Optional/Formal이라고 한다. 이런 유의 드레스를 입어본 적이 없어서, Temu에서 20불 대로 저렴하게 하나 구입했다. 미국 결혼식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은 드레스로 신부와 같은 화이트 색상은 피해야 한다. 또, 신부의  Bridesmaids들이 입는 드레스 컬러가 있는데 그것도 피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한다. 이것은 절대 겹치면 안 되는 정도까지는 아니나, 되도록 피하는 것을 추천하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결혼식 전날에 덴버에 도착해서 하루 정도 호텔에 묵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우리 부부도 전날 정장과 드레스, 구두 등을 바리바리 싸 들고 덴버에 도착해서 하루 묵고, 당일 결혼식 전에 폭풍 치장을 하고 참석했다. 사실 미국 시골 대학타운에서 생활하면서 이렇게 꾸밀 일이 아예 없었기에, 오랜만에 화장하랴 머리하랴 손에 익지도 않은 치장을 하려니 시간이 유난히 오래 걸렸다. 식은땀을 흘리며 셀프 메이크업과 머리를 간신히 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어 식장에 도착했다.

   결혼식장은 야외와 실내를 하이브리드한 형식이었다. 야외 식장에서 본식과 사진촬영을 하고, 실내에 들어가 저녁 식사와 파티를 하는 구조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스몰 웨딩 정도의 규모였으나, 미국 친구들은 이 정도도 나름 큰 규모라고 해서 의아했다. 모쪼록  내 기준에 이렇게 소규모 결혼식에 초대받았다고 생각을 하니, 영광이고 고마웠다.


   한국 예식장처럼 강한 조명과 음악, 스포트라이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수수-하게 입장과 모든 절차가 펼쳐졌다. 그런 와중에도 푸른 야외와 대비되어 결혼하는 친구의 드레스와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동기들과 남편들 모두 함께 한 줄에 앉아 우례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결혼 본식의 식순은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신랑과 신부 입장을 지켜보고, 신부님의 주례사와 성혼 서약, 기도, 행진 순으로 30분 이내로 진행되었다. 기도할 때 하객들 모두 다 같이 기도문 같은 것을 동시에 외웠는데 종교가 없어서 그런지 따라 할 수 없었다.



    본식과 저녁 식사 사이에 음료를 마시며 하객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신랑 신부는 직계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그동안 나머지 하객들은 술과 음료를 마시며 자유롭게 놀면 된다. 같은 과 박사과정 친구들끼리 한껏 차려입은 사진을 남겼다. 휘황찬란 그 자체다. 평소 다크서클 짙게 내려앉은 민낯만 보다가 이렇게 꾸민 스스로와 친구들을 보니 낯설 지경이었다.


    제일 친한 친구 둘이 똑같이 핫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와서, 혼자 가운데서 파란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Pink Sandwich"라고 했는데, 공감이 돼서 엄청 웃었다. 모쪼록 아리따운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이 남편과 로맨틱한 사진도 찍으라며 디렉팅 해주어 부끄럽지만 예쁜 사진도 남겼다. 웨딩 촬영 이후로 이렇게 빼입고 사진을 찍은 게 처음인 것 같다. 친구 등쌀에 못 이기는 척했지만 사실 은근 즐기고 있었다. 남편 넥타이와 드레스 색을 펄 블루로 디테일하게 맞추고 갔다. 가족끼리 이러는 것 아니지만(?), 미국 스타일로 한 컷 남겨보았다. 오랜만에 빼입은 남편을 보니 흐뭇했다, 짜식.






   꽤 오랜 담소 시간 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비로소 저녁 식사와 2부 예식이 시작되었다. 식사는 지정된 이름표가 있는 곳을 찾아서 앉아서 먹도록 되어있다. 동기들, 남편들과 한 테이블에서 느리게 진행되는 코스요리를 먹었다. 실내 피로연장이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처럼 감성적이게 아름다워서 마음이 절로 몽글해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결혼하는 친구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동기들과 너무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고 사진을 남겼다. 다 같이 즐기니 편안하고 즐거웠다. 아마 동기들 없이 왔다면 온통 백인 미국인들 틈바구니에서 어색하고 민망했을 것 같다. 결혼식에 동양인은 거의 없었던지라, 신부의 이모가 와서 신기하게 물어보고는 신부와 어떻게 아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가시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축사 시간이었다. 부모님, 친척, 형제, 오랜 친구들 도합 6명 정도가 각자 신랑신부와의 인연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하며 결혼을 축하했다. 축사를 들으니, 신랑 신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지, 또 얼마나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왔는지 잘 느껴졌다. 비록 시간은 길었지만,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듣기에 전혀 지겹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어렸을 때부터 결혼을 하면 이런 식순을 꼭 넣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한국 결혼식 특성상 제약 때문에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이 제일 좋고 마음에 울림이 그윽하게 남았다.






   축사를 마친 뒤에는 댄스타임이 이어졌다. 신랑 신부가 로맨틱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이 눈앞에서 재연되는 느낌이었다. 미드 한 편이 그냥 뚝딱이었다. 동기가 댄스스포츠 선수 출신이어서 춤에는 안 그래도 정통한 편이라 정말 아름답게 잘 추었다. 연이어 신부가 아버지와, 신랑이 어머니와 춤을 추었고 그다음에는 하객들도 모두 나가서 춤을 추었다.



무아지경이었다.

   흥이 오르자, 조명까지 바꾸어가며 광란의 댄스타임이 시작되었다. 한국 정서에는 조금 부끄러웠으나, 동기들이 하도 끌고 나가서 같이 나가서 막춤도 추고 왔다. 다들 너무 자연스럽게 춤추고 놀아서, 분위기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덩실덩실 막춤을 출 수 있었다. 생각보다 꽤 재밌었다.


   결혼하는 동기는 초콜릿 한 조각 먹을 틈도 없이 정신없이 하객들과 대화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 식장을 나오기 전 간신히 짬을 얻어 얼굴을 보고 축하와 축복의 말을 건네고 나올 수 있었다. 신랑 신부 정신 하나도 없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매한가지인 듯싶다. 모쪼록 동기들과 함께 생애 첫 미국인 결혼식에 가서 즐거운 시간과 추억을 남기고 올 수 있었다.


   오후 5시부터 늦은 밤까지 진행된 결혼식은 매우 다채롭고 낭만적이었다. 한국 결혼식과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많아서 더 흥미로웠다. 모쪼록 친구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다시 학교에서 볼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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