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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ul 08. 2024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돌풍>

이미지만 보면 한국 사람이라면 어떤 정당이 떠오르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당연히도 없다


'그날, 대통령의 심장이 멈췄다'라는 카피로 공개 전부터 이미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 이 드라마의 주연인 설경구와 김희애는 서로의 연기 경력에 반비례하게 같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거의 없는데, <돌풍>이 드라마로는 그 첫 타자를 끊게 되어 두 배우의 충돌이라는 면에서 개인적으로 몹시 기대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스튜디오드래곤과 팬엔터테인먼트가 기획 및 제작했고,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을 연출한 김용완 PD가 연출을, 그리고 이른바 '권력 3부작'을 매끄럽게 집필해 스타덤에 올랐던 박경수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법과 범죄, 그리고 정치와 관련된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박경수 작가의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텐데, 그정도로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하는 박경수 작가가 공중파에 비해 다소 제약이 없는 편에 속하는 넷플릭스에서 첫 삽을 떴다는 사실만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설경구, 김희애 주연 외에 김미숙, 전배수, 김홍파, 김영민, 이해영, 오민애, 김종구, 장광 등 전부 이름을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고 다양한 '막강 조연'들이 대거 출연했다.


앞서 이야기한 '대통령의 심장이 멈췄다'는 카피가 말하는 것처럼 대통령이 죽고 난 후 벌어지는 한국 내의 정국을 다룬다. 부패한 세상을 뒤엎기 위해서 대통령의 시해를 결심하고 실행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와, 이런 박동호의 속내를 간파하고 진심으로 그를 막으려는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의 대결이 <돌풍>의 주요 골자다. 대통령의 사망이 현실화되면서 요동치는 정세를 다루는 정치 드라마이지만 주요 사건이 '암살'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어느 정도 범죄수사물 장르에 걸쳐있기도 하다.


<돌풍>은 쉽게 말하자면 작금의 모든 정치계 인사들을 전부 신랄하게 비판하는 정치드라마다. 게다가 비판의 척도로 나타나는 장면장면들, 각 인물들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세우는 갖가지 방어들이 현존하는 한국의 정치 드라마 중 가장 수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정경유착이나 정치와 분리되지 못한 검사 혹은 수사권에 대한 비판을 자주 해왔던 비슷한 드라마들과 비교해 봐도 아주 유별난 수준이다. 박경수 작가의 전작들에서 이미 다뤄진 주제기도 하지만, 넷플릭스라는 버프를 입고 그 제한을 과감하게 벗어던진 느낌이다. 현 정치판의 비판받을 만한 면들을 전부 가감 없이 물 위로 드러내 보여줬기에, 현재의 정치판에서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웃프게' 벌어지는 사건들이 다수 오버랩되고, 그러다보니 특정 정치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기도 하다. 다만 그런 식으로 <돌풍> 내의 캐릭터와 사건을 1대 1로 분석해 찢기 시작하면 모든 정경검계의 사건들과 굵직한 인물들을 엮을 수 있는 서사들이 많고, 또 이런 방식의 평가는 드라마와 드라마 속 인물들을 평평하고 플랫하게 만들 뿐이다.


<돌풍>은 현실에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넓은 의미의 대체 역사물로 기능하는 드라마다. 실제 한국에서 일어난 많은 정치 및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비판과 오마주를 동시에 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파생된 드라마 속의 주요 캐릭터들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에 맞춰 거침없이 행동하며 때론 자멸할 정도의 위험이 있는 물밑작전도 서슴지 않는다. 다양한 방면의 한국 현대사와 작금의 주요 정치세력들을 총망라해서 이른바 '돌려까기'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창조된 극이라고 할지라도 그 긴장과 전율이 상당하다.

하지만 역시 이 '전율'을 만들어내고 모든 권모술수가 물 흐르듯 유려하게 극에 안착하는 것을 보이게 하는 건 탁월한 메인 캐릭터의 빌딩 때문이다.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두 주인공 중 하나인 박동호(설경구) 즉, 부패 척결을 위해 대통령을 시해하겠다 결정하고 결단하는 인물이다. 실로 <돌풍>은 매 화 진행될 때마다 다양한 반전의 반전들이 녹아 앉은 자리에서 정주행하게 만드는 막강한 흡입력을 자랑하는데, 흑과 백 혹은 보수와 진보 그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고 이 사건의 활시위를 당긴 박동호라는 인물이 만들어지고 무너지며 또 재기하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 사건의 우두머리를 죽인다는 발상 자체도 보통은 아니지만 '암살'이 주제가 되는 장르는 더러 있어왔고 그들의 성공과 전략이 드라마를 이끄는 핵심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박동호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신념이 몰아붙여 생성해낸 사건 자체를 뛰어넘어 그 신념이라는 단어에 스스로 발목이 묶인 자로 기능하기도 하며, 때때로 자신이 시해한 그토록 애증하던 어떤 대상의 면모를 답습해나가기도 한다. 이런 다채로운 빌딩이 반복되기 때문에 <돌풍>의 마무리인 11화에서 12화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못 (긍정적으로)충격적이다.


<돌풍>은 웰메이드 정치드라마로, 넷플릭스 한국드라마사를 통틀어 높은 평가를 받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각본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케미를 정점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나 이 장르에 능통한 박경수 작가가 제대로 이를 갈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자유로운 형식으로 흘러가지만, 치밀하고 세심하게 만들어낸 캐릭터들의 구체성은 정말로 혀를 내두를 정도의 수준이다. 하물며 김희애와 설경구의 대결구도라니 오죽하겠는가. 단언컨대 <돌풍>은 올해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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