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진 시인의소년희망편지]원미동 할머니의 눈물
자식을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어미가 과연 있을까?
이 세상에서
자식을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어미가 과연 있을까요?
그런 어미는 세상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굴뚝같은 믿음을 가졌던 것은
나의 어머니가 어린 내 곁을 떠났던 것은
힘겨운 가난과 아버지와의 오랜 불화 때문이었으며
새벽에 떠나면서 “엄마가 돈 벌어서 데리러 올게”라고
약속한 대로 자식들을 거두어주신 것을 눈물로 겪었기에
굴뚝같은 믿음을 가졌던 것인데 이제, 나는 그런 믿음을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으로 버리려 합니다. 저버리겠습니다.
미혼모 아기가
어미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런데 버림받은 날이
하필이면 아기의 첫 생일
즉, 돌이 되기 하루 전입니다.
아기가 운 이유는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서 운 것입니다.
그 아기는 엄마의 손길보다는
일흔 넘은 할머니의 손길에서 자랐기에
엄마를 찾지 않고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버림받은 아기의
울음소리는 너무 아픕니다.
그 울음이 아파서 같이 울었습니다.
미혼모가
아기를 버린 것은
남자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미혼모가
아기를 버린 것은
다른 남자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기의 생부인 미혼부와의
갈등으로 가출하게 된 미혼모는
가출 얼마 후 다른 남자와 간음했고
그 남자와 관계가 깊어지면서 아기가
걸림돌이 되자 할머니에게 버린 것입니다.
그래도 아, 그래도 미혼모가 고맙습니다.
전 남자와 헤어진 뒤 새로 만난 남자 사이에서
아기가 생기면서 전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를 버려서 굶어 죽게 했던, 인간이기를 포기한
잔인한 미혼모에 비하면 그래도 생부의 할머니에게
버렸으니 고맙다고 해야 합니까. 미칠 것만 같습니다.
단장지애(斷腸之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이라는 뜻을 가진 고사성어입니다. 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참혹한 슬픔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이 고사성어는 후한(後漢) 말부터 동진(東晉)까지 약 200년간 실존했던 명사들의 일화를 담은 이야기 모음집 <세설신어>(世說新語) 중 ‘출면’(黜免) 편에 수록돼 있는데 이 고사성어가 생긴 사연은 아래와 같습니다.
진나라 장수 환온이 촉나라와의 전쟁을 위해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 한 병사가 강변에 있던 새끼 원숭이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납치한 그 함선을 100리가량 쫓다가 함선이 가까워지자 새끼가 실려 있는 그 함선에 뛰어들기 위해 몸을 날렸는데 배에 닿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한 병사가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랐더니 창자의 마디마디가 끊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환온은 새끼 원숭이를 잡는 바람에 어미 원숭이의 참혹한 죽음을 야기한 병사를 매질하고 쫓아냈습니다.
세계적인 식물 유전 육종학자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식인 카사바를 병충해에 강한
품종으로 개량하는 데 성공하면서 기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구하면서 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한상기(88세) 박사님은
자식을 아무렇지 않게 버린 미혼모 사건에 대해 이렇게 비통해하셨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동물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을라치면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아기와 함께 죽을까도
생각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분유가
도착했습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기에게 먹일 분유입니다.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운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잠시 알렸더니 한 아기 아빠가
가슴이 아프다면서 보내준 눈물겨운 분유입니다.
모성애도 도덕성도
헌신처럼 집어던진 미혼모는
미쳐서 날뛰겠지만 아기는 살 것입니다.
내 새끼를 버릴 수 없다며 끌어안은 할머니가
늙고 병든 몸으로 아기를 거두었으니 살 것입니다.
“아기를 버리고 간 밤,
하도 기가 막혀서 아기와 함께
죽을까도 생각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아기를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죄 없는 생명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애끊는 원미동 할머니가
눈물 훔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주가 네 살 되던 해에 며느리였던 여자가
손주를 버리고 떠나면서 애끓는 눈물로 키웠던
원미동 할머니는 대를 이어 버림받은 증손주를
키우는 데까지는 키우겠다며 눈물 훔치며 말했습니다.
"저 어린것을 어떻게 고아원에 보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은 혼자가 아니므로
할머니 혼자 알아서 하라고 할 순 없습니다.
원미동 할머니와 함께 아기를 키우겠습니다.
할머니와 아기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 불쌍한 아기를
보육원에 보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