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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Jun 21. 2021

악의 없는 가해와 각자의 입장

[악의 없는 가해와 각자의 입장]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 역시 10대 사춘기 시기부터 20대 초반까지는 아직 나만의 철학과 인생관이 없어 자주 아파하고 흔들렸다. 친구의 말투, 선배의 눈빛, 지나가는 사람들의 귓속말까지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경험이 적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주변 사람들과 같은 줄 알아서 이 좁은 관계에서 탈락되면 모든 세계에서 탈락되는 줄 알았다. 또 겉으로 보여지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완결된 표현인 줄 알아서 발화자의 의도치 않은 실수에 나 홀로 상처 입곤 했다. 들판 위에서 온전히 거센 바람을 맞아내는 나무처럼 오랜 시간을 흔들렸더니 덕분에 지금은 나를 힘들게 했던 삐죽삐죽 튀어나온 잔가지를 다 쳐내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굵은 가지들만 품고 살아가고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지나가는 성장통이었고 다 흘려야 했던 눈물이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그 때처럼 매사에 고민하는 습관은 없어졌다. 대신 몇 년째 어떤 한 가지가 계속 떠오른다. 악의 없는 가해와 각자의 입장. 나는 많은 상황에서 피해를 입었지만 누구에게도 청구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오늘 일어났던 일도 그렇다. 주말에 출근해 행사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쉬려는 찰나, 상사가 나를 붙잡았다. 수고했으니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위계서열이 뚜렷한 조직 분위기 상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좋게 생각하자면 공짜로 저녁도 먹고 수고도 인정받는 자리였지만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던 나는 남몰래 속으로 울었다. 그러나 누구를 탓해야 할까. 이럴 때마다 마음 속에 이 문구가 떠오르는 것이다. '악의 없는 가해와 각자의 입장'



반면 때로는 타인의 행복으로 인해 고통받기도 한다. 평소처럼 시간에 맞춰 출근길에 나섰는데 심하게 차가 막힌 적이 있다. 깜빡이를 켜고 요리 조리 빠져나가 마침내 정체의 원인이 된 차를 찾았다. 괜히 한 번 째려보려고 쳐다보았더니 글쎄 나들이라도 가는지 너무나 화목한 가족이 타고 있지 않은가. 그 가족 입장에서는 직장에 연차를 내고 학교에 현장체험학습 계획서를 제출해 마련한 소중한 시간이었을 수 있다. 아이를 태웠으니 천천히 운전하는 것은 당연. 자동차 전용도로라 최저속도 규정이 있었는데 그 규정도 지켰으니 따지고 보면 그들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평소처럼 부지런히 준비했지만 15분이나 늦게 도착해버린 나의 시간은 누구에게 보상 받을 수 있는 걸까. 배려 없는 낭만은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들을 책망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너무나 행복하고 명랑한 이들의 악의 없는 행동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났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그렇게 상처입는 주변 동료들을 볼 때면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속상하기만 하다. 꼭꼭 숨기고 싶었던 남의 사연을 굳이 드러내 대화 분위기를 돋우는 사람, 자신의 가정을 돌보느라 일에 소홀한 사람, 긍정적인 자세로 최선을 다하지만 일머리가 없어 제몫을 하지 못하는 사람,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람. 그들의 어느 부분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 꼬집어 말하기란 쉽지 않고 그만큼 내 아픔을 이해받기도 쉽지 않다.



이 외에도 누군가는 칭찬이라고 한 말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때도 있고 미디어가 강요한 특정 모습이 어떤 이에게는 혼란을 가져올 때도 있다. 머리를 자르니까 훨씬 예쁘다는 말이나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 진작에 자르지 그랬냐는 말, 혹은 이 비슷한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묘하게 기분 나쁘고 앞으로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갈 때마다 그 말이 신경쓰이겠지만 이미 들어버린 말과 영향 받은 삶을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각자의 입장을 사이에 두고 번갈아가며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다. 나는 아직 어려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화를 내지 않고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없을 뿐더러 누구 하나가 사과하면 끝날 일인지 그렇다면 누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도 도저히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몇 년째 이 문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악의 없는 가해와 각자의 입장' 


잔가지를 쳐낸 나무가 이제 자기만의 기둥으로 들판 위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한 것이다. 그저 바람일 뿐인 것을 나를 흔들었다 하여 나무랄 수 있을지 아직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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