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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Dec 14. 2019

먹을 것을 주지 마세요

동물원에 가면 이런 팻말이 있다.


<<먹을 것을 주지 마세요.>>


동물원에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동물의 기본 권리라든가 안내문을 지키지 않고 손에 든 과자를 던지고야 마는 관람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팻말과 관련해 내가 진지하게 바라는 한 가지 소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건 바로... 가끔은 이 팻말을 내 목에 걸고 싶다는 거다.


거의 이틀에 한 번씩은 <먹을 것을 주지 마세요>라는 이 문제의 문구에 대해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내가 이 문구를 특별히 좋아해서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주변 상황이 기어코 이 문구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지난 번에는 칼국수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주인 아주머니 손이 큰지 다들 배부르게 먹고도 두어명은 더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칼국수가 남았다.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후식 커피나 마실까 하던 찰나, 우리 상사님께선 한 손엔 국자를 다른 한 손엔 그릇을 들고는 남은 칼국수를 퍼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더 먹으라는 인심 좋은 말과 함께 칼국수가 고봉으로 담긴 그릇을 건네는데 부하 직원으로서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만족스러운 정도를 넘어 불쾌하고 더부룩한 느낌으로 식사를 마치게 되었다. 다들 속으로 생각했을 거다. 요즘 세상에 음식 좀 남길 수 있지 도대체 왜 저러시나... 아까우면 본인이 드시지 왜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서까지 텅텅 빈 그릇을 보고야 말겠다는 것인가...


문제는 이런 상황이 왕왕 있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정작 본인들은 밥알 한톨이 아까운 시대를 겪으며 살아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더 큰 문제는 밥을 남기지 말라고 강요해도 이걸 성희롱이나 직장 내 갑질로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이로 보나 위계로 보나 눈칫밥만 먹어도 배가 부른 일개 직원으로서는 아침을 굶든 위를 늘리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없애버려 상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를 어찌저찌 해결하고 나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후회와 더부룩함은 오로지 혼자, 침묵으로써 견뎌내야 한다. ‘그지도 아니고 도대체 왜 저래’라든가 ‘그렇게 아까우면 너나 먹어.’ 하는 내 안에 요동치는 이 강렬한 외침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비슷하게 “ㅇㅇ씨는 왜 그렇게 조금 먹어”라는 문제의 멘트도 있다. 이 경우에는 다행히도 음식을 더 퍼주면서 물질적으로 강제하진 않는다. 대신 언어적으로 가해지는 이 압박을 견뎌내려면 내 앞에 놓인 잔반으로 떨어지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낼 뻔뻔함과 재빠르게 적당한 변명을 할 수 있는 재치가 필요하다. 변명을 할 때는 '저도 더 먹고 싶은데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이해 좀 해주시겠어요?'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야 건방져보이지 않다. 절대 '그냥 배부르니까 그만 먹고 싶다.'는 속내가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다이어트 중이라서요."나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입맛이 없네요." 정도가 무난한 변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해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은 비슷한 래퍼토리로 변주되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때마다 왜 우리 사회에는 밥을 먹고 싶은 만큼만 먹을 자유도 없는가 하는 의문과 답답함이 든다. 워낙 급격한 성장을 이뤄내 세대 간 공유하는 가치관의 격차가 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먹는 행위에 대한 세대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 세대차이가 강요와 압박의 형태로 이어지는 부분은 정말 참기 힘들다. 그럴 때면 나는 동물원 우리에 붙어 있는 <<먹을 것을 주지 마세요>>라는 팻말을 생각한다.



제발 먹을 것 좀 주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에세이 #직장생활 #세대차이 #존중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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