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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Jul 13. 2021

마법을 부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무젓가락은 버리기가 참 애매하다. 종이나 나무젓가락이나 나무에서 시작된 것은 매한가지인데 종이 버리는 곳에 버릴 수도 없고 잘만 하면 재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분리수거통에는 '나무' 카테고리가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나무젓가락은 종량제봉투에 버리는 게 맞단다. 그런데 이게 또 길고 단단해서 툭하면 봉투를 찢어버린다. 반으로 쪼개 버려도 뾰족하긴 마찬가지. 자칫하면 쓰레기봉투를 묶으려고 힘을 주다가 봉투가 터지는 수가 있다. 이런 것도 낭중지추라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나는 종량제봉투가 어느 정도 차면 쓰레기들 사이 가운데 쯤에 나무젓가락을 찔러넣어 버린다. 가끔씩 '종량제봉투에 나무 기둥을 세우는 걸까'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도 한다. 우리에게는 쓰레기인 것들이 몇 만 년전 원시인에게는 낯설고 귀한 물건이지 않을까. 뾰족하게 깨부순 돌과 이제 막 사용하기 시작한 불, 반짝이는 것이라고는 밤하늘의 별뿐이고 투명한 것이라고는 개울가의 물뿐인 이들이 사냥터에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돌아오다 포카칩 봉지와 삼다수 통을 발견했다고 상상해보자. 그들은 배고픔도 잊고 호기심과 신비에 둘러싸여 그것들을 툭툭 찔러보기도 하고 호호 불어보기도 하다가 주섬주섬 품 안에 챙겨와 구성원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굶주림에 예민해져 있던 이들은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고 발로 걷어차버리겠지만 결국엔 돌아와 바라볼 것이다.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포카칩 봉지와 삼다수 통을. 모양은 물론이거니와 질감부터 소리까지 생경하기만 한 그것들은 결국엔 어떻게 될까. 방풍이 잘 되는 포카칩 봉지는 옷이 될 수도 있고 삼다수 통은 힘을 줘 구부릴 때 나는 소리를 이용해 종교음악에 쓰일 수도 있다. 불에 한 번 넣어봤다가 홀랑 태워먹었을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우리의 기술은 그들에게 마법과 같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마법처럼 다가오는 것이 어쩌면 낯선 이의 쓰레기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낯설어서 매력적이었던 이들과 그들의 언어, 옷태, 눈빛, 향기, 목소리. 사지 않으면 꿈에 나올 것 같았던 튤립과 꿈에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어떤 이들. 감기처럼 나를 덮치고 갔던 마법들이, 심지 굳게 보였던 그래서 결코 맞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어쩌면 가지런히 꽂아넣은 나무젓가락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나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으로 인해 우리는 마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가면서도 가슴 한 켠으로는 여전히 마법 같은 무언가를 꿈꾸며 언젠가 한 번쯤은 기꺼이 홀릴 것만 같은 운명을 직감한다.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나를 홀려주기를 바라며 미지의 것을 추구하고 탐닉한다. 이데아를 찾는 철학자처럼. 돌이 황금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연금술사처럼. 그 또한 누군가에겐 신비로운 일인 줄도 모르고. 실은 그 자신이 마법을 부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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