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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실시옷 Apr 26. 2024

최고의 생일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그제는 가난에 대한 글을 쓰다가 잠들었다.


결혼 후에 나는 남편에게 생일 선물을 받은 적이 많지 않다. (그래도 고맙게 매 년 꽃다발을 준다.) 나 또한 남편에게 생일 선물을 준 적이 거의 없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선물을 줄 만큼의 여유가 없다. 설에 받고 아껴 두었던 돈으로 봄 옷이라도 하나 살까 싶어 지갑에 잘 넣고 다녔다. 오전에 설거지를 하며 기온상승으로 산호초들이 죽고 있다는 영상을 보았다. 온난화는 끊임없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하는 삶을 사랑하지 말자.


아침만 해도 늘 주저하던 돈쓰기를 해볼 생각이었다. 꼬맹이를 데리고 카페에 가볼까 싶었는데, 집에 있던 초코빵과 커피로 달달하게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아이 낮잠 시간에 맞춰 청소를 했다. 그것도 화장실 청소. 전과 같았다면 생일이라는 핑계로 온전히 내 만족을 위한 일을 찾다가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에 실망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 청소와 함께 기분이 깔끔해졌다. (여전히 다른 곳은 더럽다.) 그리고 저녁에는 회전초밥을 먹으러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마음에 백 프로 드는 음식점을 고른 것은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핫플에 가서 멋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아이가 전부터 먹고 싶다고 했던 회전초밥집으로 골랐다. 모든 접시가 1900원이라고 하니 그래도 덜 부담스러운 곳이다. 배가 찰 정도로 적당히 먹고 막내와 먼저 가게를 나왔다. 가게 앞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남편과 아이들이 나왔는데 첫째의 표정이 제법 만족스럽다. 그리곤 지인이 보내주신 쿠폰으로 파리바게트에서 초콜릿케이크를 사 왔다. 매 해 케이크만큼은 맛있는 것을 찾아 헤매었는데 그 마음 또한 내려놓았다. 푸짐해진 내 뱃살 덕에 어차피 안 먹는 게 좋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케이크를 먹고 정리를 하려는데 큰 아이들이 편지와 선물을 주었다. 매 해 편지를 써주던 아이들이었는데 준비를 안 하는 듯 보였다. 올 해는 없구나 싶어서 아쉬웠는데 깜짝 선물에 눈물이 핑 돌았다. 기대도 안 했는데 아직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둘째가 막내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곧 알 수 없는 낙서가 가득한 편지와 천 원을 가져와 선물이라고 귀여운 목소리로 말하게 했다. 막내는 선물이라는 단어를 오늘 처음 말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마무리하지 못한 설거지를 하고 남편이 건네준 꽃다발을 정리했다. 어쩜 이렇게 예쁜 꽃을 사 왔는지. 행복하다.


 내가 선택한 오늘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은 없었다. 특별할 것 없는 생일을 맞이했지만 너무 특별한 생일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정말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또 특별할 필요도 없다. 슬플 것 같은 그 현실을 맞이하며 느끼는 행복이 참 크다. 특별하지 않은 나를 점점 더 진짜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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