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70퍼센트
볕이 예쁘게 들어오는 통창의 아담한 공방은 햇살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따뜻하고 밝고 시원했다. 하지만 캔들공방인 공간은 언제나 다양한 향기로 가득했다. 냄새에 민감한 나는 온 사방을 진동하는 향기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자에 넣고, 서랍에 넣어도 향기들은 뚜껑 사이로 슬근슬근 빠져나와 자신을 알렸다. 내가 쓰기로 했던 책상이 있었지만 나의 공간은 아니었다. 온 방 안을 가득 채운 향기 사이로 진열대 위에서만 나의 자수가 소박하게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세 돌도 안된 둘째를 조금 더 데리고 있으려고 했지만, 첫째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님의 제안도 있었고 나 또한 긴 육아에 지쳐 있었다. 둘째는 엄마 껌딱지였다. 어딜 가도 내 바짓가락을 잡고 졸졸 쫓아다녔다. 2년 반 밖에 되지 않는 인생에 서 2년을 같이 지낸 교회에서도 내 옆을 떠나는 법이 없어서 잠깐 화장실 갈 때도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오곤 했다. 그래도 조금씩 친구랑 놀기도 하고 내가 보이는 곳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기 때문에 첫째와 같이 기관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오빠랑 같이 다니니까 괜찮겠지… 오빠를 따라다니면서 원에서 자주 놀곤 했으니 익숙하겠지…’
첫 달은 쫄래쫄래 잘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아이가 원에 가 있는 동안 자수 커리큘럼을 짜고,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재봉틀을 배우러 다녔다. 하루하루 나를 위한 시간을 차곡차곡 쌓을수록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힘들어했다. 신나게 집을 나서다가도 원 앞에 가면 눈물바다가 되었다. 바지를 꽉 잡고 놓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돌아설 때면 만감이 교차했다.
‘이게 맞는 걸까? 육 개월만 더 데리고 있을까? 지금의 선택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지만 고심해서 내린 선택 앞에서 흔들리면 안 되었고, 하원을 하러 원에 가면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쫑알거리며 인사를 하는 모습에 안도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린이집 사진첩 속 아이는 항상 밝게 웃고 있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언제나 그랬다. 온전한 내 것은 없었고, 완벽한 타이밍도 없었다. 아이를 곁에 두고 꿈을 잡을 수 없는 마음도, 아이를 보내고 함께 나누지
못하는 시간도 늘 아쉬움뿐이었다. 벌써 엄마가 된 지 십 년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배운 것이라면 마음들을 다 조금씩 내려놓는 것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멋진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 괜찮은 사모가 되고 싶은 마음, 사랑스러운 아내,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