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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실시옷 May 31. 2024

생각보다 어려웠던 공방창업

내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없었나?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면 지하철을 타고 공방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5분.  지하철 출구를 돌아 골목을 들어서면 모퉁이에 공방이 있었다. 남편이 등원하는 날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쪽문을 통해 공방으로 걸어 내려왔다. 덕분에 잘 걷지 않던 동네 구석구석을 살폈다. 빌라촌 맨  윗 골목에는 떡케이크 공방이 있었고, 또 아래로  작은 카페도 있었다. 공방 길 건너편에는 꽃집이 하나 있었고, 공방 옆에는 화장실을 같이 쓰는 옷가게가 있었다. 마당발인 캔들가게 사장님께서 수업을 준비하러 오실 때면 근처 가게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주인이 바뀐 지 얼마 안 된 꽃집, 친구와 동업했지만 사정으로 한 분만 자리를 지키는 옆 옷 가게, 맛있다는 근처 청국장집 등… 사장님의 이야기에 나도 여유가 생기면 이웃과 친분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게들을 지나칠 때마다 그들과 함께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공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문을 활짝 열고 신나는 음악을 틀고 청소를 했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향기가 모두 흩어지고 나면 나의 숨과 색으로 공간을 꾸몄다.  진열장에 정리해 모아 두었던 자수를  잘 보이게 펼쳐두고 가방에 넣어두었던 자수 도구들을 꺼냈다. 예쁜 실타래를 잘 보이게 책상 위에 펼쳐두고 오늘의 계획을 다이어리에 적었다. 한 줄 한 줄  일을 적으면 한 발짝 한 발짝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 명이면 꽉 차는 공방의 작은 책상에 가득 모여 향긋한 차를 마시며 함께 수를 놓는 사람들을 꿈꿨다. 지금은 셰어로 월세에 다시 세를 들어 쓰고 있지만 수익이 커지면 이 장소를 온전한 내 공방으로 꾸미는 상상을 했다. 아담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방은 역세권이었지만 대학가 반대쪽이라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가끔 오가는 사람도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사람을 모으는 방법도 몰랐고, 자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더 쉽지 않았다. 마케팅에 ‘마’도 모르는 나는 문을 열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였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업을 더 열심히 하는 일뿐이었다.


작업이 예쁘면 사람들이 찾아오겠지…



그리고 수놓고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구구절절 나를 드러내고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블로그와 인스타에 글도 불친절했다. 내가 하는 일 중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늘은 조회수가 10명 그리고 어제는 12명.

‘별로 예쁘지 않은 것 같은데 팔로워가 많네.’ 만만하게 봤던 공방은 조용한 내 공간과 달라 보였다. 사람들이 가득했고, 공방의 수강생들은 작품들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내 작업이 별로인가?’


자꾸만 온라인 속 다른 공방들의 성과와 나의 성과를 견주었다. 성과 뒤에 사람을 모으는 노력은 보이지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의 작품과 커리큘럼 속 결과물만 보며 비교했다. 초보 사장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타나지 않는 성과 앞에서 조바심만 늘어갔다. 잠을 줄이고, 수업 내용을 바꾸고 스타일을 고민했다. 문제는 그것들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충분했다. 고민해서 구성한 커리큘럼도, 정성을 다해 만든 작업도 모두 충분했다. 오직 부족했던  것은 나를 믿지 못했던 믿음이었다. 끝없는 자신감 부족과 내 실력에 대한 불신은 내 자수를 자신 있게 뽐내지 못했다. 내 손을 거쳐 한 땀 한 땀 사랑을 쏟아내고는 그 사랑을 너무 하찮게 대했다. 그것들이 설령 다른 사람들의 눈에 부족하더라도 나는 충분히 사랑하고 자랑했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다. 나의 작업을 나조차 사랑할 줄  모르는데 어떻세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한 걸음 뒤에 숨어서 ‘저는 자수를 하고 있어요. 귀여운 자수를 만들고 싶은데 당신의 취향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도 자수가 배우고 싶다면 저랑 같이 자수를 배워요.‘라고 작은 소리로 속삭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내 작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낙담한 것이다. 공방을 가득 채운 캔들의 향도, 더 채우지 못하는 진열장도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나 내가 있던 곳은 내 자리였고, 나를 외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쭈뼛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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