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종지 같이 작던 나의 그릇
그릇을 키우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어떤 사람은 워킹맘으로 승승장구하며 자신의 그릇을 키우고, 어떤 사람은 아이의 소리를 잘 듣고 아이의 지평을 넓혀준다. 또 어떤 이는 반듯하고 정돈된 살림으로 가족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모두 다 자신의 그릇들을 잘 키우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나는 왜 모든 것이 버거울까? 남편에게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 때문일까? 함께 육아를 도울 친정 부모님이 곁에 안 계셔서일까? 힘들 때 외식이나 키즈카페를 갈 수 없는 가벼운 주머니 때문일까? 포기하지 못하고 먼 곳까지 어린이집을 보내는 내 고집 때문일까? 도전이 두렵고 게으른 나 때문일까? 원망과 질타를 하면 끝이 없다. 그냥 나의 그릇이 작다. 커다란 양동이에 할 수 있는 일을 한가득 담고 저벅저벅 갈 길을 걸어 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얕고 작은 종지는 적은 일에도 넘치고 흘렀다.
15만 원의 공유 공방의 월세도 부담스러워질 즘…감사한 어린이집 원장님의 제안으로 공간을 옮기게 되었다. 어린이집으로 쓰던 건물을 공간대여로 용도 변경을 했는데 그곳의 관리를 해 주는 대신 무료로 장소를 사용하게 해 주셨다. 감사한 제안이었다. 청소도 예약 관리도 할 일이 많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진심으로 나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으로 맡긴 일이었다. 내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면 나도 공간도 성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정을 관리하는 것도 힘에 부쳐 헉헉댈 정도로 그릇이 작았고, 언제나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목회자와 사는 삶이 무엇이 어렵냐고 묻는다면 스무 개는 거뜬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착할 수 없는 삶이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 살 수도 없었고,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핑계를 대자면 나를 주춤거리게 만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당장 내년에 떠날지도 모르기에 온전한 내 공간으로 시간과 공을 들일 수 없었다. 아니 내가 단단하다면 내 필요를 요구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좋은 아내, 순종적인 사모의 모습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지금도 내 역할을 고민하지만 그때는 정말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지 혼란했다.
머리를 울리는 향기가 거슬렸지만, 나는 첫 공방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가 가까워 장을 보고 가기도 좋았고 집과 가까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오갈 수 있었다. 다음엔 내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아쉬운 바람을 뒤로하고 종암동으로 공방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