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쿤스트할레 (B)

소설 : 북쪽의 도시들 Northern cities | 8

by 성게 Mar 27. 2025
아래로

방 안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누워 있었다. 


한쪽 구석에 길게 누운 그림자가 낯이 익었다. 나는 주변에 양해를 구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모자를 눈까지 푹 눌러쓰고 세상 편하게 잠들어 있는 녀석은 바로 로키였다. 목마름을 참아가며 3시간 동안 미술관을 헤매는 동안, 로키는 줄곧 여기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로키를 흔들어 깨웠다. 녀석은 독일어로 무어라 말했다.


“로키 일어나요. 쉿…. 조용히.” 


로키는 모자를 올리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지금 몇 시예요?” 


“몇 시? 한 2시간 반 지났을까?”


“3시간 아직 안 됐네요? 재미있는 것 좀 찾았어요?”


“카페에서 기다렸으면 언제 왔을지 모르겠는데.” 


로키 녀석은 웃고 있다. 


“아니요. 알람 맞춰 놨어요.”


나는 수첩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로키가 진지한 얼굴로 그것을 줍더니 한 장 한 장 넘겼다. 상영 중인 영상작품 말고는 빛이 없었기 때문에 잔뜩 눈을 찡그리고 글자를 더듬더듬 읽어 나갔다. 


“흥미롭네요.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그림자가 없는 그림도 있네? 오, 여기 이런 작품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저도 다시 확인해 봐야겠어요.” 


“더 이상 찾으러 다니는 것은 무리입니다. 목도 마르고 일단 카페로 가죠.” 


밖으로 나오자 눈이 부신 지 로키가 하품을 하며 따라왔다. 처음 만난 로키는 얼굴과 체격이 모두 다부지고 빈틈없이 반듯한 인상이었으나 오늘의 로키는 영 헐렁했다. 잔뜩 각 잡힌 슈트 차림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아예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거참 내가 못 찾았으면 아주 몇 시간이나 더 거기 있었겠네.”


“그러게요. 그래도 알람이 있었다니까요.”


“그 조용한 전시장에서 알람이 울렸으면 그것도 볼 만했겠고.” 


‘삐빅- 삐빅-.’


로키의 손목시계 알람이 울렸다. 카페로 들어서는데 로키가 놀리듯 말했다. 


“그런데, 거기 수첩에는 없어요. 처음부터 다시 봐야 될 것 같은데…. 함부르크에 며칠 더 있을 거예요?”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진짜 열심히 봤는데.” 


로키가 대칭인 입꼬리를 반듯하게 말아 올렸다. 


“제대로 여행하려면 가이드가 반드시 필요한 법이죠. 포르토에서도 가이드가 있었겠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서 내려 꽂히는 햇살이 카페 유리창에 휘황하게 반사되어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들어왔다. 해는 나라마다 다른 색 햇볕을 내려 주는 가. 포르토의 오렌지색 햇볕, 모스크바의 희미하고 투명한 해, 그리고 달처럼 휘영청한 오늘의 해. 


“포르토에서는….” 


로키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햇살 너머를 바라보더니 대답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페리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저번에도 얘기했죠?”


“네 페리라는 사람 말입니다…. 그림자가 있었습니까?”


로키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물어 나도 짐짓 진지하게 여행을 복기했다. 처음 만난 골목, 따뜻한 겨울 해 아래 서 있었던 페리의 발 밑에 그림자가 있었던 가. 


“잘 모르겠는데…. 사람을 만날 때 그림자를 보지는 않으니.” 


“그렇죠. 그 페리라는 사람 ‘오리너구리 앱’으로 만나게 된 겁니까?”


“그렇죠….” 


나는 자꾸만 울렁거리는 불안을 누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훨씬 어린 동생으로 느껴지던 로키가 근육을 일으켜 반듯하게 앉았다.


“그 앱에서 페리를 추천했고요?”


“그렇지. 잠깐. 아니, 그게 아니라.”


“페리에게 먼저 메시지가 왔습니다.” 


“먼저 메시지가 왔다고요?”


로키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야 오리너구리에선 주변에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고, 마침 같은 숙소였고…. 나도 동행을 찾는다고 해 두었던 상태라. 이상할 건 없는데….” 


로키는 잠자코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페리가 회색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상한 일이요?”


로키의 눈에 강한 확신과 호기심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독촉하지 않고 내 대답을 조용히 기다린다. 


“사진, 이상한 메모.” 


나는 무엇부터 말을 해야 할지 순서를 정리하려 입을 다물었다. 


“지금 가지고 있어요?” 


로키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 사진은 노트북에…. 호텔에 있죠.” 


“사진에 뭔가 찍힌 겁니까?” 


“그게. 확실하진 않은데. 그런 느낌이 드는 사진이었어요. 처음 봤을 때 강하게 밀려오는 불안? 같은.”


“소름 끼치는?”


나는 마침내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처럼 울상이 되었다. 


“여행을 후회합니까?”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냥 그런 수순이었다는 거죠. 갑자기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꼭 알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막연한 일입니다만.”


“언제나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물론 과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만.”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나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을 참회하게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 지 알 수 없어 반발심이 들었다. 


“로키는 사라지지 않는 과거에 자신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니요. 그저 과거를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할 뿐입니다. 우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난 일이니까요.” 


나는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알고 있는 페리에 대해서도. 로키는 조용히 페리와 포르토, 내가 봤을 수 있거나 페리와 관련한 그림자에 대해 들으며 체리 리퀴르가 들어간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다. 오후로 기운 해는 아침의 고고한 파란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림자의 시간이 온다. 


“그림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여기에 있어요?” 


“네.”


“로키는 그런 걸 어떻게 알게 됐죠?” 


“책이요.” 


로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무슨 책? 페리의 노트 같은 그런 책이 따로 있나?” 


로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 메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으니 비슷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꽤 유명합니다. 어느 책방에서나 살 수 있을 정도로요.” 


비밀의 책 같은 것이 아니라 누구나 구할 수 있다는 얘기에 특별한 사건을 캐내는 탐정이 된 느낌이 조금 시들해졌다. 물론 나는 탐정이 아니라 사건 속에 휘말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처음 느꼈던 그림자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미지의 것이 주는 두려운 감정으로 찾아왔지만 가까운 기척을 느낄수록 더욱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문득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로키가 나의 행동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로키는 나를 의심합니까? 나는 아니에요. 봤잖아요. 그림자 있다고요”


“압니다. 요즘 세상에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건 본 적도 없어요.”


나는 길게 늘어지는 햇살을 향해 손을 뻗어 여유롭게 기지개를 켰다.


“그래서, 이제 그 그림이 뭔 지 알려줘요. 이만큼 돌아다녔으면 됐잖아요. 넉넉한 일정이긴 하지만 영원히 이 도시에 머무를 수도 없고.” 


“역시 그 사람도 함부르크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을 거란 말입니다.”


로키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사람이 함부르크를 떠났군요. 어디로 갔습니까?” 


로키는 접시에 남은 케이크 부스러기를 포크로 솜씨 좋게 모아 한입에 넣었다. 나는 이런 것을 페리를 보며 똑같이 느꼈다. 


‘독일 사람들은 모두 접시에 남은 음식을 그렇게 보기 좋게 훑을 줄 아는 걸까.’ 


“갑작스럽지만, 페리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로키는 무표정으로 듣는 둥 마는 둥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어떤 사람인 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할 얘기가 아닙니다.” 


로키에게 괜히 페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한 것 아닐까. 페리는 더없이 친절했다. 페리를 만나면 시치미를 떼고 아무 일 없는 듯 굴면 될 일이지만 영 마음이 찝찝했다. 물론 로키와 페리는 만날 일이 없다. 험담의 대상은 대개 아무것도 모른다. 입이 아무리 무거운 사람이라도 일생에 몇 번 그런 일을 저지른다. 게다가 나는 험담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의 여행에 관해 말했을 뿐이다.


“회색 옷을 입었다는 것이 중요할까요?”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람은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요.”


“압니다. 그런데….” 


“나는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거든요.” 


“이야기의 결말이 없는 겁니까?”


“글쎄요.” 


“정말로 끝났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로키가 단단한 이마를 매만졌다. 


“전 결말이 확실한 이야기가 좋습니다. 이 이야기 뒤에 뭐가 있는지 직접 보자고요.” 


로키는 좌표를 향해 지형에 상관없이 직선으로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군인처럼 전시장을 가로질렀다. 중간중간 통로와 방들이 나왔는데, 모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처럼 대하며 지나칠 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관리인들은 여느 때보다 긴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술관에서 그림 관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수상쩍다. 나는 괜히 전시실을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는 척했다. 로키가 어느 방 앞에 멈췄다.

 

“자 여기서부터 입니다. 관람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직접 보시죠.” 


그리고 큰 팔을 펼쳐 들었다. 





긴장된 기분으로 방에 들어섰다. 어느 그림부터 봐야 할지 망설이며 넓은 방 안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혹시 하이라이트를 미리 봐 버리는 것은 아닐까. 결말을 아껴가며 현재의 장면에 집중한다. 고구마 죽을 배 터지게 먹고 싶다는 소원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져서는 안 됐다. 누가 봐도 충분한 고난을 맛보았음에도 더한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고 자학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에 비해도 3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호기심을 반의 반으로 꺾어 수첩과 함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입구와 연결된 벽 쪽으로 바짝 붙어 다가간다. 


놀이 번져 타오르는 은은한 하늘이 무너진 성 당 창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림자처럼 놓인 십자가.


시간을 알 수 없는 방의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은 그림은 이 방의 시간을 정하는 시계처럼 뚜렷한 시간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노을이 지는 순간을 가리키는 바늘. 


땅거미가 몸집을 키우면 드디어 찾아오는 그림자의 시간. 


그 해는 어느 영웅의 무덤 바위를 비추고 있었다. 석양에 물든 바위산에 고요히 잠든 이는 누구일까. 동굴의 입구는 검은 그림자를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기어 나온 그림자는 누구의 무덤 앞을 서성댈까. 아니다. 죽은 사람의 그림자는 등 뒤에 붙어 있을 뿐이다.


폐허처럼 조각난 날카로운 얼음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거울 같은 조각들은 비치는 저녁노을을 비추며 역시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다시 겨울 숲으로 이어진 포슬포슬한 길이 짙은 그림자의 시간으로 관람객을 안내했다. 그 검은빛은 무언가를 가린 두려운 장막이라도 되는 듯했다. 나는 침을 삼켰다. 


깊은 숲 뒤로 피안의 세계에 솟은 아름다운 분홍 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숲을 멀리서 조망해 수 킬로미터를 뛰어넘은 그림 속의 하늘은 해가 지는 반대방향으로 버티고 선 반석 교회를 들어 받쳤다. 도시를 지키는 굳건한 문은 그림자를 향해서 만든 닫혀 있었던 것이다.

 

그 옆으로 멀리 황혼에 잠긴 도시가 나타났다. 넓은 평야에 축복으로 내린 오늘의 마지막 빛이 종탑을 물들이고 있었다. 정든 도시를 떠나는 여행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향을 돌아본다. 사람들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란 대게 섭섭한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지긋지긋한 일상을 버리고 싶어 길을 떠났다. 


‘너희를 남겨두고 가차 없이 떠날 수 있다.’


함부르크 항구에 도착한 여행자 역시 어떤 마을을 영영 떠나온 것일지도 몰랐다. 편지는 핑계였을 것이다. 페리를 만나고 싶다는 말은 핑계다. 나는 모든 남겨진 것들 따위는 전혀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쾌한 심정으로 정든 집을 떠났다. 물론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비행기 표를 사서 그리운 고향으로.


고개를 들어 한 그림 앞에 멈추었다. 


아무 할 말을 잃었다. 


거기에는 몸의 어디에도 그림자 줄기가 붙어 있지 않은 남자가 바위 산에 올라지는 해를 비껴 받으며 운무 자욱한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노을은 오렌지 색 채도로 발광하며 보라 빛으로 저물었다. 언제 와 있었는지 로키는 물끄러미 달빛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잔잔한 돌 해변을 비추는 촉촉한 달빛이 관람객의 발 밑에 희미한 빛줄기를 떨궜다. 






“그림의 순서에도 의미가 있을까요?”


두리번거리며 전시와 관련된 사람을 찾았다. 저 사람의 그림자는 어디로 간 걸까. 로키 말 대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을 어떻게 붙잡아 둘 수 있을까.


“Wanderer über dem Nebelmeer. 운무 위에 선 방랑자.”


“로키는 이 그림에 대해 잘 아는 모양입니다.”


“작가는 독일 북쪽 도시 그라이프스발트에서 양초와 비누를 만들던 부모님을 두었습니다.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사고로 자신을 구하려던 동생을 잃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림에서 풍기는 아련한 향수가 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동생의 죽음을 바라본 프리드리히의 감정. 평생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풍경을 그렸습니다. 작가의 일생 순으로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어느 한 시점부터 그 분위기가 강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드리히라가 그림자를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적어도 그 이야기에 대해 직접 알고 있었거나.” 


“시대를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이 작품들이 그려진 시대와 이야기의 시점이 겹칩니다.” 


작품의 이름과 작가의 이름이 함께 적힌 회색 빛 명찰 앞으로 다가갔다. 관리인이 다가와 더 이상 그림 앞으로 다가가지 말라 제지했다. 로키가 관리인에게 무어라 양해를 구했다. 


“어느 시점부터 산속 길을 걷는 사람과 어슴푸레한 숲, 밤의 어둠을 걷는 사람들에 대해 그렸습니다. 이야기에는 증거라는 뿌리가 없기 때문에 물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로키는 내가 이 화가의 그림자를 가져간 녀석과 만났다는 겁니까?” 


“이 화가의 것인 지, 그가 만난 사람의 것인 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당신의 그림자는 안전합니다. 아무래도 그 사진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로키는 왜 그림자에 관심을 갖는 겁니까?” 


그는 잠깐동안 뜸을 들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남자는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까?” 


로키가 작게 혀를 굴려 ‘쯧-.’하는 소리를 냈다. 


“꼭 그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림자를 내놓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이야기 속에는 그가 영영 혼자 살았다고 전해지지만.” 


“혼자?”


“고대의 모래 바위 동굴 속에서.”


“그림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까? 아니면 다른 잘못을 저질렀다든가.”


“그 사람에겐 그림자를 잃어버린 자신을 스스로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양심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세상은 얼마든지 내키는 대로 살 수 있죠.” 


“그림자를 양심이라고 하는 건가?”


“메타포는 위안이죠. 이 세상의 일들이 정말 메타포에서 끝난다면 그것 만큼 다행인 일도 없을 겁니다.” 


더 이상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험심과 호기심, 막연한 두려움과 그것을 넘어서는 여행에의 의지가 샘솟는다.


“로키, 저 사람의 그림자를 찾고 싶은 겁니까?” 


로키는 의외로 이야기가 빨리 진행되어 기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방랑자가 떠난 길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이야기를 곱씹으니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더군요. 목적지는 뮌스터, 제가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우연이 세 번이면 필연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뮌스터요?” 


오래전에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의 동선이 나의 여행과 겹쳤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작가의 말 :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수술방에 있다 보면 소설이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이야기를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야기란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아직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스스로도 많은 치유를 받습니다. 

읽는 분들에게도 같은 위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제 세계를 즐겨주시기를!




이전 07화 쿤스트할레 (A)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