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은 뒷 베란다 옆에 난 구석진 방으로 아무것도 놓지 않은 빈 방이었다.
여름의 한낮에도 그 방만은 늘 썰렁해서, 나는 혼자 그 방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장난기 많은 아빠가 종종 불이 꺼진 그 방 앞에서 나의 두려움을 깨 주기 위해 재미있는 지령을 주기도 했지만, 그 방 앞을 지날 때면 언니 오빠가 해 준 무서운 이야기가 떠올라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런데 그 방의 쓰임새가 있었다. 바로 한 여름의 피서지였다.
인테리어에 진심이었던 우리 엄마 아빠는 그 방의 커튼으로 짙은 두껍고 짙은 와인 빛 천을 생각해 냈다. 동대문에서 천을 직접 골라 온 엄마는 직접 재단을 한 다음 재봉틀을 돌려 멋진 커튼을 만들었다. 그 방에 커튼을 달던 날, 아빠는 그 방과 딱 어울리는 이름을 생각해 냈다.
"꼭 드라큘라 방 같네!"
그전까지 나는 한동안 그곳을 ‘피서방’이라 불렀는데, 아빠가 지은 ‘드라큘라 방'이라는 이름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드라큘라 방은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놀라울 만큼 시원했다.
까실한 장판이 깔린 깨끗한 바닥을 뒹굴며 놀고 있으면, 엄마는 수박이나 포도등을 가져다주시곤 했다. 한참 놀고 나면 오히려 따뜻한 코코아가 마시고 싶어 질 정도로 몸이 식었다.
한 여름, 놀이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실컷 놀다 보면 드라큘라 방을 떠올랐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와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방 문을 열어 보곤 했다. 그러면 마치 가을을 맞이한 듯 선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각자의 방에 있거나, 거실에서 뒹굴거리다가도 누군가 '드라큘라 방'의 문을 열면 우리 가족은 기다렸다는 듯 각자 담요나 이불을 가지고 하나 둘 방으로 모였다.
아빠는 베트맨처럼 작은 이불을 목에 둘러메고, 나는 가장 좋아하는 보드라운 복숭아색 애착 담요를 등에이고, 엄마는 따뜻한 커피와 코코아를 담은 쟁반을 들고, 동생은 팬티와 러닝차림으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그 텅 빈 방이 이제는 전혀 무섭지 않다.
계절과 상관없이, 문득 찬바람이 스치면 와인빛 커튼을 단 드라큘라 방이 생각난다.
이상도 하지, 차가운 냉기가 마음을 덥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