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부드러운 촉감을 유난히 좋아했다.
내가 가장 사랑한 것은 복숭아빛의 작은 이불이었다. 윤기가 촤르르 흐르던 색은 세월이 흐르며 한껏 바랬고, 초등학교에 들어설 즈음에는 끝자락이 풀려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사계절 내내 그 이불만 고집했다. 그 집착은 인테리어에 진심이던 엄마를 늘 괴롭게 했다. 보다 못한 엄마는 몰래 그것을 없애기로 결심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내가 울며불며 찾아 헤매면 결국 이불을 다시 내 품에 안겨주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겨울 초입.
이번엔 정말로 그 이불이 사라졌다.
나는 빨래 중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서서히 불안해졌다. 온 집안을 뒤지며 “이불 어딨어!” 하고 외쳤다.
그때 엄마가 내게 새 이불을 내밀었다. 촉감이 꽤 비슷했지만, 차가운 하늘색이었다. 새것이라 어딘가 뻣뻣했고, 종아리에 닿을 때의 그 찹찹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없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이 무너지는 듯 느꼈다.
“걱정 마. 안 버렸어.”
엄마가 말했다.
“그럼 어딨어!”
엄마는 피아노 밑의 크리스마스 무늬 카펫을 가리켰다.
나는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엉금엉금 기어가 카펫 끝을 뒤집었다.
아뿔싸.
내 이불은 그곳에 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이불은 새 옷을 입고 피아노 밑의 깔개가 되어 조용히 누워 있었다.
“걱정 마,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나는 손등으로 그 자리를 문질렀다. 보드라운 감촉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 녀석은 정다운 얼굴을 거두고 박제된 채, 피아노 의자 밑에 납작하게 누워 집안의 소품으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그 후 한동안은 피아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자리에 누워 보기도 하고, 발을 비비며 옛 감촉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새 이불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울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조금은 더 자랐기 때문이리라.
논리적이지 않은 고집 대신 이별의 섭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그 이불이 떠오르면 나는 포근한 기분으로 잠이 든다.
그리고 꿈속을 유영한다.
언젠가 천국에 가서, 그 복숭아빛 이불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