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명 정도 들어있는 회사 단톡방이 있다. 전체 직원 중 일부 직군만 들어있는 단톡방이다. 직급별로 모인건 아니라서 국장부터 말단까지 다 있다. 출근길에 띠링~ 하고 울리는데 단톡방 안에서 난리가 났다. 작년 2월 6일 입사한 두 신입의 1주년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톡은 두 신입의 부장이 올렸다. "후배 한 명 한 명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기, 00 00은 더욱 보배 같은 존재입니다." 쏟아지는 축하 사이로 나는 그냥 꾸욱 하트만 눌렀다. 나는 이 회사의 경력직이다.
내가 경력직이라 함은, 여기선 육두품인 나도 어딘가에선 성골이었다는 뜻이다. 나는 부산이 아닌 울산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다. 4년 반 일하고 이직했다. 고향이 부산이기도 했고, 지금 회사가 더 크기도 했다. 월급은 비슷했다. 서울사람이 보기에 부산과 울산도 비슷해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부산은 부산이다. 울산보다 도시다. 나는 울산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만약 울산에 계속 있었다면? 2011년 입사한 그 회사에서 지금까지 일했다면? 정확히 말하면 기수 서열 분명한 이 바닥에서 성골로 그 회사에 있었다면 오늘 같은 패배감은 느끼지 않았을까? 혹은 오늘 같은 자괴감 따위는 아예 모르고 살았을까?
후배를 하대하는 진상 선배도 드물고, 어쩌면 모두가 엣헴 하며 선비처럼 일하는 이곳에서 아무도 내가 경력직이라고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일 잘한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나 같이 경력직으로 입사한 유능한 선배가 일 못하는 공채 기수에게 승진에서 밀릴 때, 나보다 늦은 입사 연도임에도 공채 기수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은근슬쩍 말을 놓을 때, 단체 행사에서 그들만 웃고 즐기는 보이지 않는 리그가 묘하게 느껴질 때 나는 내가 이 회사의 경력직임을, 영원한 아웃사이더임을 깨닫는다.
나의 입사 1주년 기념회식을 떠올려본다. 동기는 네 명이었고, 나는 제일 어렸다. 신입사원의 입사 1주년 회식은 회사서 큰 행사였다. 정말 많은 축하와 술을 받았고 그 환대에 감복해 조직에 감사하기까지 했다. "젊은 피를 수혈하겠습니다"라며 호기롭게,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게 외치던 신입 1년 차는 점점 시들해져서 결국 이직까지 했지만, 적을 옮기고서도 성골 때의 영광을 한 번씩 떠올리는 쪼랩이다. 경력직으로도 만 8년을 채운 지금, 아직도 회사는 어렵고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