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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Mar 14. 2024

학교의 존재 이유,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아침에 긍정과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 싶습니다.

학교의 존재 이유. 그것은 아이들이다.


우리 학교는 어곡지방공단을 굽어보며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한창 학교 공기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고 미세먼지가 아이들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교육계 안팎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때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와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학교 이전 사업을 추진하여 이곳으로 학교터를 닦아 옮겼다. 신도시의 외곽에 위치해서 다소 소외된 지역이다. 소규모 학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아이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인접한 산자락을 깎고 터를 골라서 초등학생들에게 어울리는 아담하고 밝고 따뜻한 디자인의 공간을 만들어주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곳으로 발령을 받고 출퇴근 시간이 1시간 걸리면 아이들 아침맞이를 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등교하는 시간이 8시 20분에서 45분 사이라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교문으로 나가면 일찍 등교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침맞이를 할 수 있었다. 출퇴근하는 나를 걱정하며 "무리하지 말고 요일을 정해서 하루 이틀만 해요", "집 가까운 학교로 오면 해요. 괜히 아침맞이 한다고 서두르다가 사고 나고 그러면 안 되니까요" 하며 조언도 해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고 그날의 교통 흐름에 따라 학교에 도착하는 대로 편안하게 아이들을 만나자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나는 매일 아침 우리 학교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전교생이 180명인 작은 학교이니 아이들 생김새, 특징, 형제자매, 등교짝과 친구들이 벌써 파악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수줍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도 있고 몇몇은 달려와 "사랑합니다" 하며 안기기도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싶다. 표정이 밝게 등교하는 아이들도, 혹여나 가정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아이들도,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하는 바람이다.


아침 맞이는 아이들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며칠 전 화단 언덕배기에서 놀고 있던 4학년 남자아이(머리카락을 반머리로 묶어서 여학생인가 오해할 있는 외모를 가진)를 잠깐 오해한 일이 있었다. 화단에는  '착한 아이는 화단에 들어가지 않아요'라고 쓰인 팻말이 꽂혀 있었다. 산자락을 깎아 만든 경사가 급한 비탈진 화단은 위험하기도 하였다. 점심시간에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가가서 말했다.


"얘들아, 그곳은 접근 금지라고 쓰여 있네. 내려오세요."

"여기 봐봐. 팻말에도 화단에 들어가지 마라고 쓰여 있지."

다른 아이들은 내 말을 듣자마자 얼른 내려왔다. 그런데 반머리로 묶은 남자아이 한 명이 팻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착한 아이는 화단에 들어가지 않아요'라고 적혀 있네요. 나는 나쁜 아이라서 괜찮아요!"

순간 할 말을 잃고 멈칫했다.

"교장선생님 보기에 너는 착한 아이로 보이는데......"

마음속으로 '명랑한 아이구나! 담임 선생님이 좀 고생하겠는걸' 생각했다.


아침 맞이할 때 이 남자아이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머리스타일도 남다르지만 덩치도 큰 편이라 눈에 잘 띄기도 하였다. 하루는 동생 손을 꼭 잡고 등교했다. "어머, 귀여운 동생이 있었구나! 동생은 좋겠네. 오빠가 이렇게 친절하니까" 넌지시 말해주었더니 싱긋이 웃었다. 또 하루는 체구가 아주 작은 친구랑 등교했다.

"같은 학년? 아니면 아는 동생?"

"같은 학년이에요." 키 작고 체구도 작은 아이가 대답했다.

"든든한 친구가 있어서 좋겠다."

오늘은 혼자 등교하길래 "동생은?"하고 물었다.

"동생은 먼저 갔어요" 하며 양볼에 보조개를 피우며 웃었다.

"어머, 너 볼에 보조개니? 보조개가 있으니 웃는 모습이 더 예쁘네."

그 남자아이는 "맞아요. 보조개" 하며 살짝 자랑하듯 멋쩍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나와 아이 사이에 조금씩 신뢰가 쌓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의 걱정과 오해는 섣부른 것이었다. 나를 대하는 아이의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아이들 아침 맞이가 끝나면 운동장으로 돌아온다. 감사하게도 3학년 담임 선생님은 3월 둘째주인데도 벌써 반아이들과 아침 걷기와 달리기를 시작했다. 선생님께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이들에게는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너희 반은 좋겠다"라고 말해 주었다. 가벼운 인사지만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장을 뒤로하고 현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늦게 등교하는 1학년을 만났다. 나는 손짓하며 "얼른 오세요" 한다. 아이가 종종종 작은 걸음으로 뛰어온다.

"몇 학년?"

"1학년 1반"

"핸드폰이 왜 이렇게 커? 무겁겠다. 하하하."

"1학년 1반 선생님 이름 알아요?"

"하늘이에요."

"아, 이름이 하늘이구나! 선생님 이름은 아직 모르고?"

하늘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늘아, 오늘 담임 선생님 이름 알아서 내일 교장선생님께 알려 주세요."

하늘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일 아침이 기다려진다.


자기 얼굴 보다 큰 핸드폰을 목에 걸고 등교하는 1학년 하늘이^^


학교는  아이들의 배움터, 자람터이다. 직접 수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교장은 아이들과 만나고 그들의 표정을 살피고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부단히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학교의 제일 큰 엄마인 교장선생님이 관심을 가져주면 아이들도 학교생활 중 또 하나의 즐거움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학교에는 공단 근로자로 일하시는 러시아 부모님을 따라 이곳에 와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수업 마치고 복도에서 만난 에리카에게 물었다.

"'사랑합니다'를 러시아 말로 어떻게 하지?"

"룹룹"

"룹룹" 내가 따라 한다.

"이쁜 말이구나. 룹룹. 재미있다."

에리카는 웃으며 동생 엘라의 신발을 챙겨 준다.


아이들과 만나며 교장인 내가 더 많이 에너지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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