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이라도 한 번씩
'예쁘다, 잘한다, 수고했다'라고
칭찬해 주면 몸이 알아듣습니다."
의료 상담하는 과정에서
주치의가 보내준 문자!
- 이해인, <소중한 보물들> 149쪽
가장 확실한 내 편은 '나'이다. 지독한 습기에 한 올 한 올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미워도, '이런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다니' 하며 제 주먹으로 제 머리에 꿀밤을 먹인 날도, 나는 나를 보듬어야 한다.
'오늘도 살아낸다고 수고했어.' '기분이 엉망인데 표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잘했어.' '기분을 잘 다스리는 네가 좋아. 결정적인 실수가 아니면 되는 거야. 알고 보면 모두 실수투성이인걸. 너처럼 티 내지 않는 거뿐이라고. 티 내지 않고 잘 버텼으니 그만큼 단단해진 거야.' 하고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이왕이면 양손을 가슴팍에 포개어 자신을 꼭 안아주거나 토닥여주면 더 좋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네 편이야.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거다.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내 몸은 철떡 같이 알아듣는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진다.
내 몸은 약골이라 계절이 바뀌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계절은 감기를 앓은 뒤에야 바뀌곤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 같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어쩌면 ' 하고 있는 이 일'보다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한 이후였던 것 같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양손을 포개어 토닥토닥, 손을 번갈아 가며 팔다리를 쓰담쓰담 스스로를 스킨십하며 위로했다. '오늘도 애썼어. 내 몸!' 이렇게 말하면서. 지금도 나는 자기 전에 내 몸에 말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고마워. 사랑해!'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고요하고 다정한 평화가 몸에 깃듦을 느낀다.
교사 시절, 한글날을 앞두고 '밥 실험'을 했다. 두 개의 샬레에 흰쌀밥을 넣은 뒤 한쪽에는 좋은 말과 고운 말을, 다른 한 쪽에는 미운 말, 나쁜 말을 해주고 시간이 지나면서 밥의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틈날 때마다 부지런히 실험에 참여했다. (A) 밥에게는 '예쁘다', '사랑해', '고마워'라고 말했고, (B) 밥에게는 '못생겼다', '저리 가', '썩어라' 등 고약한 말을 쏟아부었다. (그때 아이들은 나쁜 말을 마구 뱉어내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기도 하다. ㅎㅎ) 시간이 지나면서 (A) 밥은 하얀 쌀밥 그대로인데 (B) 밥에는 검은 곰팡이가 생겼다. 무생물인 밥도 예쁜 말 고운 말을 좋아하는데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의 '강력한' 편이길 바란다. 기분이 꾸깃꾸깃하고, 왠지 모르게 구질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작아져서 작아져서 쥐구멍에 들어갈 것만 같은 날일수록 따뜻한 물로 그 지독한 우울감과 꿀꿀함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향기로운 보디로션을 부드럽게 바르며 '수고했어', '고마워'하고 나를 안아주면 좋겠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53쪽.
'실존적이고' 날마다 '승리하고 또 고통받으며,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하는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고유하다. 그러니 부디 자기 몸을 자주 칭찬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