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17-07)

by SALT

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 표시 부분은 대부분 한자로 쓰인 오래된 일기 원문이 훼손되어 판독이 안 되는 부분




1956년 1月 19日 (木) 맑음


약() 일 개월( 一個月) 동안 흐지부지하던 연맹(聯盟) League Member는 오늘 비로소 결정(決定)되었다.

이사장(理事長)을 포함한 9명()정상집무(正常執務)를 하게 되었다.


Mr. Hwang의 줄기로서 자신(自身)까지 5명(),

Mr. Gong의 줄기로서 사동(使童)까지 3명(), 그리고 Mr. 김()김()대로 회색(灰色)이다.

제 남은 것은 부서 문제(部署問題)이다.


나는 어데까지나 Propaganda이고 보니 초지관철(初志貫徹)이다. A.P.A.C.L이 나에게 있어서 일생(一生) 사업의 Start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럴수록 맡은 바 임무(任務)에는 충실(充實)을 다할 것을 자신(自身)에게 맹세(盟誓)하지 않을 수가 없다.


※ APACL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46687&cid=43124&categoryId=43124


퇴근 후(退勤後)에는 Mr. 조(曺), Mr. 김()과 더불어 청도(靑島)에 가서, 소위(所謂) 사업적(事業的)인 이야기를 하였다.


The man who has made up his mind to win, will never say impossible.




1956년 1月 21日 (土) 雨(비)


알쏭달쏭한 부서 문제(部署問題) 때문에 힘없는 자()만이 골탕 먹는다.

Mr. Hwang이 오늘은 또 어쩐지 선전부(宣傳部) 問題의 起案을 나더러만 하라고 맡긴다.

아마 나만이 더 잘할 수 있다고 認定한 것인지....


◎◎들은 1시경(時頃) 퇴근(退勤)했다. 긴장(緊張)하여서 인지는 모르나, 오늘이 토요일(土曜日)인지는 12시경(時頃)에야 비로소 알았다.


궁극(窮極)에 이 취직구(就職口)택()한지라, 최선(最善)을 다해서 일하는 탓인지 바쁘기 짝이 없다.


하오(下午)에는 병학사(兵學社) 건()으로 묵정동(墨井洞)에 갔다. Colonel Ye도 왔고, 병수 씨(秉洙氏)도 와서 오락가락 이야기하다가 셋이 가서 이발(理髮)을 하다.


희극(喜劇)에 있어서는 전()개성적(個性的)운명(運命)전형적(典型的)인물(人物)에 있어서 실현(實現)되고,

비극(悲劇)에 있어서는 보편적(普遍的)인간(人間)운명(運命)개성적(個性的)인간(人間)에 있어서 실현(實現)된다.




1956년 1月 22日 (日) 맑음


비좁은 방()에서 잘 수가 없다. 옆 방()에 밤늦게 불을 때고 잤더니 이른 새벽부터 두통(頭痛) 심()하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설움이 이보다 더할까.


자기본위(自己本位)인간(人間)들 앞에서 거주(居住) 하려는 마음 괴롭기 한량(限量)없다.


그러나 어데까지나 공짜 거주(居住)는 아니다. 노력(勞力)의 대가(對價)로서 받는 값싼 보수(報酬)이다.

병학사(兵學社)시작(始作)하고 돈도 벌어 드리면 떳떳이 먹고 잘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먼저,

내 살림사리를 마련하는 것도 병신(丙申) 새해 나의 최대(最大) 과업(課業)이라 할까?


아침에는 조규동 씨(趙奎東氏)가 왔다. Colonel Ye는 새집 자랑을 한다고 셋이서 집 구경(求景)을 갔다.

아닌 게 아니라 Colonel Ye의 노력(努力)비상(非常)하다.


세계 과정(世界過程)은 거대한 차륜(車輪)회전(回轉)과 같이 생각된다.

확실히 이것은 영겁회귀(永劫回歸)전제(前提)이다.


※ 영겁회귀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27088&cid=40942&categoryId=31519


그러나 항상(恒常) 동일(同一)한 차륜(車輪)이 회전(回轉)하였다 할지라도 같은 차륜(車輪)의 흔적이 남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차륜(車輪)은 무한대(無限大)반경(半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年前) 그는 맨주먹으로 삼팔선(三八線)넘어왔는데, 지금(至今) 그는 서울의 갑부(甲富) 부럽지 않게 살고, 고래 같은 집이 삼사 개(三四個)나 되지 않는가?


'마캬베리'의 수단(手段)방법(方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한다는 논리가 생각(生覺)난다.

여하간(如何間)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않을까?


2시에 정희(正姬)를 만나러 가기 위하여 단성사(團成社)로 갔다. 공일(空日) 날이라 대만원(大滿員)이다.

반역자(叛逆者)! 좋은 영화다. 인생(人生)반역자(叛逆者)는 누구며 나의 반역자(叛逆者)는 누구던가....


돌아오는 길 정희(正姬)는 갑자기 또 우울해졌다. 아무 말 없이. 유쾌(愉快)하던 나의 마음 역시 우울해졌다.

그러지 말지어다 슬프면 함께 슬프고, 기쁘면 함께 기뻐야지....

그것이 부부(夫婦)맹세(盟誓)가 아니겠는가?




아버님의 고교 졸업 앨범. 1940년대 당시 고등학교에도 요즘 고등학교에 있는 웬만한 체육부는 다 있었던 것 같다. 농구부, 야구부, 유도부, 테니스부, 역도부, 심지어 요즘 서울에서도 흔하지 않은 럭비공을 들고 있는 학생의 모습도 보인다.



군복 같은 옷을 입고 계신 아버님 모습인데, 사진 속 계신 분들 머리가 모두 길어 군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오래된 일을 '쌍팔년도'일이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쌍팔(88)은 1988년이 아니고, 단기 4288년 즉 서기로는 1955년을 말한다 한다. 사진을 찍은 시점은 실제 쌍팔년도(1955년)쯤이나 그보다 조금 더 이전이었을 것 같다.



성경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교인들의 야외 모임을 찍은 사진 아닌지 모르겠다......

아버님께서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지는 않았지만 모태신앙이시라고 들었다.



좌측 끝에 방탄모를 쓴 군인도 보이는 걸로 봐서 단체로 어딘가 군부대를 방문해서 찍은 사진 같은데, 좌측에서 네 번째 안경 쓰신 분이 아버님이다. 우측에 보이는 버스 어릴 적 아주 오래전에 보던 그런 버스다.



어버님과 어머님. 아버님은 정말 마르셨다, 건장한 남성의 육체미와는 전혀 거리가 있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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