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 표시 부분은 대부분 한자로 쓰인 오래된 일기 원문이 훼손되어 판독이 안 되는 부분
1956년 1月 23日 (月)
대한(大寒)이 소한 댁(小寒宅)에 가서 얼어 죽었다더니,
오늘의 대한(大寒)은 소한(小寒) 못지않게 춥다.
드디어 연맹(聯盟)의 부서(部署)는 결정(決定)되었다.
감투는 쓰지 못하였으나, 여하(如何)튼 선전부(宣傳部)는 맡게 되었으니 스스로 만족해야지....
감투는 차기(次期) ◎◎ 대상(對象)이니 자신(自身)의 노력 여하(努力如何)에 달렸다.
Mr. 성(成)이 몹시 선전부를 맡고 싶어 하였으나, ◎◎으로 간 것을 보니 미안(未安)하다.
퇴근 후(退勤後)에는 Mr. Kim의 안내(案內)로 명동 곱창집에서 한잔하고, 제2차(第二次)로 Mr. 성(成)의 안내(案內)로 신당동(新堂洞) 모 주점(某酒店)에 갔다.
이쁜(예쁜) 시악씨(※ '색시'를 의미하는 듯)들도 배당(配當)되어 흥미진진(興味盡盡)하게 11시(時) 넘도록 한잔했다.
아무리 동지(同志) 운운하여도 역시 감투싸움은 면(免)할 수 없는 양(樣). 얄미운 것은 Mr. Kim의 거만일까....
1956년 1月 24日 (火) 맑음
주(主)여! 주(主)의 인도(引導)하시는 정희(正姬)와 행(行)하는 일이 주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하시옵시고, 항상(恒常) 주(主)의 이름 아래 살게 하심을 바랍니다.
주(主)여 우리는 不遇한 環境에 놓였나이다.
주(主)여! 우리에게 ◎◎을 주시사 주(主)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능력(能力)을 주시옵기를 기도(祈禱)하옵나이다.
1956년 1月 25日 (水)
여하튼 섭섭한 일이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다.
나 자신((自信)을 원망할 따름이다.
말 못 하는 쫓기는 마소가 되지 말고,
싸움에 이기는 영웅(英雄)이 돼라!
미래(未來)를 믿지 마라 유쾌(愉快)하여도!
죽은 것은 죽은 과거(過去)에 묻게 하라!
활동하라! 산 현재(現在)에 활동하여라!
속에는 염통 있고 위에는 신(神)이 있네
위인(偉人)들의 생애(生涯)는 가르치노라
우리도 장엄(莊嚴)한 생(生)을 만들고
그리하여 떠날 땐 시간의 사장(砂場)에
발자국 남겨 놓을 수 있으리로다
그 발자국 아마도 다른 사람이
장엄(莊嚴)한 생(生)의 바다 건너가다가
외롭게 파선(破船)된 배를 만다면,
보고서 다시금 용기(勇氣) 얻으리
그대여 향상(向上)하고 노력(努力)하여라
용감히 운명(運命)에 굴(屈)하지 말고
끊임없이 완성(完成)하고 추구(追求)하면서
일하고 기다리며 힘써 배우라.
H.W 롱-펠로-
※ 일기 마지막 부분의 시는 검색해서 확인해 보니 Longfellow라는 시인이 쓴 'A Psalm of Life'라는 시의 일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https://bakeee.tistory.com/18)
아버님의 고교 졸업 앨범. 1940년대 어려운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냈어도 사진 속의 학생들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는 당시의 방식대로 그 시간을 향유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군용 트럭 안에 타고 있는 분이 아버님 같은데,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특이하게도 트럭 문짝이 나무처럼 보인다.
왼쪽에 있는 분은 아버님 지인인데, 나중에 대학 교수를 하셨던 분이다. 어릴 적 아버님 따라서 이분 댁에 나도 몇 번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군인이셨던 큰 아버님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