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 표시 부분은 대부분 한자로 쓰인 오래된 일기 원문이 훼손되어 판독이 안 되는 부분
1956년 1月 15日 (日) 맑음
오늘은 일요일(日曜日)이다. 열두 시까지 Colonel Ye와 함께 장기 노름을 하고 약속(約束)대로 조모 댁(祖母宅)에 정희(正姬)를 만나러 갔다.
조모 왈(祖母曰) "형님에게 연락(連絡)하여 ◎◎씨(氏)를 만나게 하라"라고....
미안(未安)하지만 전(前)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나는 형님(兄任)에게 두 번 나로 하여금 괴로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 동생입니다. 딸자식(子息)이 귀(貴)하면 ◎◎ 선처(善處)하시겠지요...
할머니가 백(百) 번 이야기한들 무슨 소용(所用)이었겠소
3시(時)가 되어 단성사(團成社)에 Manon Lescaut를 보러 정희(正姬)와 함께 갔었다.
1956년 1月 16日 (月) 맑음
본 연맹(本聯盟) 주최(主催)로 예술인(藝術人)들의 좌담회(座談會)를 갖으려고 총(總) 80여 명(餘名)을 초청대상(招請對象)으로 기안(起案)을 작성(作成)하여 사무총장(事務總長)에게 제출(提出)하다.
기안(起案)은 하되 결재자(決裁者)가 없으니 일은 할 수 없을 판(判). 자꾸만 자꾸만 기안(起案)하여 자꾸만 자꾸만 제출(提出)하자. 될 때가 있겠지........
사람은 값싼 동물(動物). 자기에게 순간(瞬間)이나마 상대적(相對的)인 보수(報酬)가 있음으로써 그 대가(對價)로서 상대(相對)에게 즐거운 웃음의 보수(報酬)나마 던져 준다.
오늘은 약간이나마 일감이 있기에 즐거워 옆에 사람들에게도 그리 불쾌감(不快感)을 주지 않았다.
상사(上司)가 자기 이름을 한 번 불러도 유쾌(愉快)해지는 것이 상사(上司)를 모시고 있는 자의 천성(天性)....
5시 반(五時半) 퇴근 후(退勤後)에 정희(正姬)를 만나기로 하고 Victory行. ◎◎에 오늘 저녁도 외식(外食)을 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고기압 아니 저기압 아닌 평온 상태(平溫狀態)에 있을지어다.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해들아 상기 아니 일어나냐
남이 다 출세(出世)하면 어쩌려고 하느냐?
1956년 1月 17日 (火) 맑음
허둥지둥 정오경(正午頃) 시내(市內)로 향(向)했다.
내일(來日)은 꼭 내일(來日)은 꼭 하면서도, 그 내일(來日)이 오면 또 내일(來日)이 되고 만다.
세상(世上)에는 친(親)한 사람이 없다. 친(親)하다고 하면서도 저나마 남을 해치면서라도 한자리하겠다는....
연맹(聯盟)의 인사 문제(人事問題)는 이사장(理事長)과 사무총장(事務總長)의 개인문제(個人問題)인지는 모르되 여태껏 결정(結晶)을 얻지 못하였다.
(※ 結晶 : 애써 노력하여 보람 있는 결과를 이루다)
선전부(宣傳部)! 이것은 나의 절대적(絶對的)인 벗이로되 또한 모르는 일이지.... 아부의 힘이 강(强)한 어떤 자가 또한 나타날 수도.... 여하간 나로서는 할 때까지 하는 길밖에 없지....
1956년 1月 18日 (水) 비(雨)
병신(丙申) 새해는 전년 연말(前年年末)부터 다양(多樣)하리라고 예측(豫測)했던 차(次)....
반공연맹(反共聯盟)과 또 시작되리라고 생각하는 병학사(兵學社)의 병서(兵書) 출판 건(出版件),
또한 작금(昨今) 급작(急作)히 말이 진전(進展)된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 정치학(政治學) 강의(講義) 등등(等等)....
만일 이 모두가 여의(如意) 추진(推進)된다면 그야말로 병신년(丙申年)은 동분서주(東奔西走) 격(格)을 면(免)치 못할 것 같다.
(※ 如意 :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다)
여하간(如何間) 일감이나 많으면 행복(幸福)하겠지....
어쩐지 "토정비결"의 말대로 결실(結實) 없는 한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점심(點心) 때는 정희(正姬)와 ◎◎이 왔기에 구내식당(構內食堂)에서 식사(食事)를 함께하고 저녁에도 정희(正姬)와 동양(東洋) 극장에 가려다 ◎◎이라 저녁만 먹고 돌아가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은 자(者)가 아니면 인생(人生)의 맛을 모른다.
※ 인터넷 검색해 보니 1956년 1년간 단성사에서 상영한 영화들이 포스터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블로그도 있던데, 여기에 보면 아버님 1월 15일 일기에 등장하는 '마농 레스코'라는 영화도 그해 1월 13일부터 상영된 것으로 나타난다.
아버님의 일제시대 고교 졸업 앨범. 2차 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0년대 초 어려웠던 그 시절에도 다양한 체육활동은 진행되었던 것 같다.
강에서 수영하는 사진에 나오는 학생들은 처음에는 발가벗고 수영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발가벗은 것은 아니고 '훈도시'라 불리는 일본식 전통 팬티를 많이 입고 있다. 일본어가 국어로 사용되었던 일제시대에는 팬티까지도 일본화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버님의 대학시절 사진인 것 같다. 통이 매우 넓은 통바지가 당시 유행이었던 모양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사진 속 뒤에 보이는 배경이 1950년대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측에서 두 번째가 아버님
군인인지 경찰인지 어쨌든 제복을 입고 있는 분과 찍은 사진. 30대 초반 시절이 아닐까 싶다.
축구 시합을 하면서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앞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아버님이다.
일기에 '정희'라고 표현되는 어머님과 함께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