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17-05)

by SALT

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 표시 부분은 대부분 한자로 쓰인 오래된 일기 원문이 훼손되어 판독이 안 되는 부분.




1956년 1月 12日 (木) 맑음

망할 놈의 기침 때문에 어젯밤은 한잠도 자지 못했다.

동절(冬節)에 감기(感氣)에 걸린 것이 삽십반생(三十半生)에 금년(今年)이 처음이고 보니....

나도 이제는 제법 낫살(나잇살)이나 먹은 모양이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서른 하고도 두 해를 맞이하니,

돈도 모르고 벼슬도 모르고 지내 온 나의 반생(半生)도 야릇하기 짝이 없구나.


정오(正午)까지는 ◎정동(◎井洞) 새 집에 가서 도서실(圖書室) 정비(整備)를 하였다. 물론(勿論) 내 집도 아니고 내 책(冊)도 아니지만....


하오(下午) 1시(時) 가까이 되어 중앙청(中央廳)으로 출근(出勤)했다. 어떤 여자(女子)의 전화(電話)가 있었다고 아마 정희(正姬)겠지....

하오(下午) 2시경(時頃) 정희(正姬)의 전화(電話)가 다시 있었기에 Victory에서 상봉(相逢)했다.


오래간만에 영화(映畵) 구경 가기로 하고 단성사(團成社)에 갔다. 전투영화(戰鬪映畵)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무엇을 먹고 싶어?"라는 내 질문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라는 정희(正姬) 대답이다...


혼자 가고 싶지 않다는 정희(正姬)를 택시에 몸을 실어 보내고 나는 명동(明洞)에 홍여사(洪女史)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상봉(相逢)치 못하였다....




1956년 1月 13日 (金) 맑음


황성수(黃聖秀)씨(氏)가 부산(釜山)에 출장 중(出張中) 오늘 아침 비행기로 상경한다기에 직원 이, 삼명과 마중 나갔다.

한시 십오 분 착륙하는 K.N.A를 약 시간반이나 기다렸다. 상관의 거동에 ◎◎이 따라다니는 것도 하나의 업무(業務)에 속(屬)하는 것이겠지....


하오(下午) 3시(三時)부터는 본(本) 연맹(聯盟) 재무문제(財務問題)를 위(爲)하여 국무회의실(國務會議室)에서 상공회의◎(商工會議◎) 주최(主催)로 상공업자(商工業者)의 연석회의(連席會議)가 있었다.


하오(下午) 5시 반경(五時半頃) 종료(終了)되어 Victory에서 기다리는 정희(正姬)를 맞으려 곧 퇴근했다.

저녁에는 정희(正姬)와 함께 중국요리(中國料理) 집에서 식사(食事)를 하고 이럭저럭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조속(早速)한 정희(正姬)의 질문(質問)에는 "인생(人生)은 길다"라는 우답(愚答)밖에 없었다.




1956년 1月 14日 (土) 맑음


새해 새달에 들어서도 아직 일감이 신통치 않다.

공씨(孔氏), 황씨(黃氏) 대인사 문제(對人事問題)가 그리 신통치 않은 모양(模樣). 오늘도 별일 없이 소일(消日)이니 심심하기 짝이 없다.


아부하는 자(煮)가 승리(勝利)할 것만 같다.

소위(所謂) Mr. 황(黃)의 사람이 나까지 합(合)하면 4명(名)이고, 공씨(孔氏) 사람이 사동(使童)까지 합(合)하면 2명(二名)일까?


선전부(宣傳部) 일은 내가 적당(適當)하다는 것은 자신(自身)만 인정(認定)하는 것은 아닌데 아부를 합(合)하야만 여의(如意)하게 되겠는지....

※ 如意 : https://ko.dict.naver.com/#/entry/koko/49950cc5880c41219d54900f0a90a069)


저녁에는 심심하더라니 정희(正姬)와 함께 조모 댁(祖母宅)에서 나와서 신신백화점(新新百貨店)에 들렀다가 광화문(光化門) 근방(近方)을 Walking 하고 헤어졌다.




※ 아버님 일기 내용에 등장하는 'K.N.A'는 검색해 보니, 대한항공(KAL)의 전신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4292178&cid=62011&categoryId=62016




아버님 고교 졸업앨범 사진. 복장과 환경은 많이 다르지만 사진 속 학생들의 모습과 활동을 보면 1940년대에도 결국 요즘과 비슷한 인생의 고민을 하며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대학 시절이나 졸업 직후 사진인 것 같다.



30대 초반에 찍은 사진이 아닐까 싶다. 사진 뒤편의 1950년대 서울 거리 상점들 모습이 대다수가 가난했을 그 시절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친구분들과 어느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이다. 역시 30대 초반 시절이 아닐까 싶다. 우측 끝에 계신 분이 아버님.



'Y's Men International'이라는 기관명이 보이는 데, 검색해 보니 YMCA를 후원하는 국제기관이다. 이 기관의 멤버로 활동하셨던 모양이다. 우측 사진에는 'Y's members visit to MC Front'라고 적혀 있는데 MC Front가 어느 곳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좌측 상단 사진은 1958년이라 적혀 있으니, 아버님이 35세이실 때 찍은 사진이다.

좌측 하단 사진에 앉아 계신 두 분은 아버님과 어머님이다.

우측 사진 아래위 두장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바뀐 그림 찾기'하는 것처럼 일부 사람이 바뀌어 있다.



어머님은 왼쪽에 서 있는 여자분들 중 3번째 분 (남자는 제외). 아버님은 중앙의 태극기 우측에 서 계신 분이다.



아버님과 어머님. 사진을 가득 채운 햇살이 참 따사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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