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17-04)

by SALT

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 표시 부분은 대부분 한자로 쓰인 오래된 일기 원문이 훼손되어 판독이 안 되는 부분.




1956년 1月 8日 (日) 맑음


일곱 날마다 다가오는 일요일(日曜日)을 일곱 날마다 똑같이 맞이하는 괴로움을 피(避)해서 구태여 오늘은 Colonel Ye와 같이 오전 중(午前中)에 집을 나왔다.


하오(下午) 4 시경(時頃)까지 동행(同行)하여 홍(洪) 여사(女史)를 만나기 위하여 도성다방(都星茶房)에 앉았다가 헤어졌다.


병수 씨(秉洙氏)와 함께 종로다방(鍾路茶房)에 들렀다가 국도극장(國都劇場) 앞에서 Colonel Ye 일행(一行)을 재회(再會)하여 '정복(征服)의 길'이란 영화(映畵)를 관람(觀覽)하고 돌아갔다.


혼자서 구경해야만 하는 괴로움도 느꼈으나, 누구하고 오더라도 짜증만 내는 내 신세(身世)라 차라리 고독(孤獨)을 즐길 뿐이다.


정오(正午) 전(前)에 한번, 저녁에 한번 정희(正姬)의 전화(電話)가 있었던 모양이다. 연락(連絡)을 기대(期待)할 뿐이지....

◎◎◎◎ 저녁을 굶고 자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사람을 가리켜 진실한 인격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를 취하기를 싫어한다.


이것은 동양의 성인, 공자(孔子)가 말한,

"배우고도 알지 못하는 것은 배우지 않은 것만 못하고,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알지도 못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과 다름없다....


1956년 1月 9日 (月) 맑음


어지러운 세상(世上)에 반공운동(反共運動)한다고 색(色) 다를리야 없는 모양

사단법인(社團法人) 한국 아세아 반공연맹(韓國亞細亞反共聯盟)의 초창기(初創期) 인사 문제(人事問題)에 있어 이사장(理事長)과 사무총장(事務處長)의 호흡(呼吸)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걸핏하면 현(現) Member는 그대로 유지(維持)할 수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는지....


이럴 때는 그야말로

'위대(偉大)한 실력(實力)의 보유자(保有者)' 또는

'위대(偉大)한 배경(背景)의 소유자(所有者)'가 아니면 자리를 유지(維持)할 수 없을 지경(地境).

이덕하(李河德, 아버님 성함)는 전자(前者)뇨? 후자(後者)뇨?


굳이 만나겠다는 ◎◎◎를 퇴근 후(退勤後) 청도(靑島)에서 만났다.

연대(延大)에 지망(志望)하겠다고....

저녁 때는 밤늦게까지 Colonel Ye 부부(夫婦)와 병수 씨(秉洙氏)가 와서 돈 걸고 화투(花鬪) 장난....




1956년 1月 10日 (火) 맑음


날씨가 급변(急變)한 탓인지 이름도 모르는 감기(感氣)에 걸려 요사이 새벽부터 기침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작야(昨夜) 전화(電話)로 상오(上午) 10시(時)에 Victory에서 정희(正姬)를 만나기로 하였다.


통 연락(連絡)이 없더니 토요(土曜)와 일요(日曜)에 출근(出勤)하였단다. 오늘은 사퇴권고(辭退勸告)를 회사(會社)로부터 받은 모양(模樣)이다.

작년(昨年) 1월 10일에 입사(入社)하였다니까 오늘로 만(滿) 1년(年)이고 보니 공교로운 기념(記念)이다. 하여간 어느 것이 좋겠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


저녁에는 농림부(農林部) 직원(職員)들과 저녁을 먹기로 약속(約束)하였다고....

아무리 친구(親舊)와 친구(親舊)의 아버지가 한자리에 있다 해도 내 생각에 삼가야 할 좌석(座席) 같지만 구태어 가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자기(自己) 생각(生覺)이 있겠지.... 더구나 요사이 같은 때에......


놀러 간다는 정희(正姬)가 적선동(積善洞)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청도(靑島)에 들렀다가 ◎◎◎과 함께 빈대떡 집에 가서 한잔 마시고 갔다.

송◎◎도 그러하지만 ◎◎◎도 이만저만이 아니라 한자리할만한 소질이 있다.


취한 김에 얼큰한 기분에 들어가니 Colonel Ye는 들어오자마자 병학사(兵學社)를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타인(他人)에게 뺏기겠다고 야단법석.

Colonel Ye 독촉에 1시(時)가 넘도록 계획서(計劃書) 작성(作成)에 잠도 못 이루고.....




아버님 고교 졸업 앨범 사진. 졸업생들 각자의 모습을 자신이 연출하여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좌측 사진 왼쪽 맨 위에 한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아버님인데, 일제시대 말기에 제작된 이 졸업 앨범 사진에서 학생이 한복을 차려입은 사진은 아버님의 이 사진이 유일하다.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시절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모두 군인처럼 훈련받는 모습의 사진이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졸업 앨범이 아니라 무슨 군부대의 훈련 모습을 찍어 놓은 것 같다.



사진 속 모습이 사회에 막 발을 디딘 사회 초년생처럼 보이는 걸로 봐서 31세에 작성하신 일기 속 내용이 작성된 그 시기와 비슷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우측 사진은 가운데가 아버님.



일기에 '정희'라고 표현되는 어머님과 함께 찍은 사진. 몇 년도에 찍은 것인지는 불명확하나 두 분 표정만 봐서는 결혼 전 연애 시절에 찍은 것 같다.

같은 장소에서 연이어 찍은 사진 같은데, 어머님 표정이 묘하게 다르다......




아버님이 1956년 1월 8일 관람하셨다는 영화 '정복의 길'은 검색해 보니 1947년 제작된 'Captain from Castile'이라는 영화인데, 유튜브에 아직도 꽤 많은 동영상이 있다.


https://m.imdb.com/videoplayer/vi148609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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