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17-02)

by SALT

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사색 없는 생활은 허영과 경솔에 흐르고,

변명 많은 사교는 고립을 초래한다.

때때로 사색에 잠기고, 백번 생각해서 한마디 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존경받는다.



1956년 1월 1일 (일요일) 맑음


오늘 병신(丙申)의 새해를 맞이했다. 이 세상世上에 나온 지 벌써 서른한 번째의 새해를 맞는다.

어쩐지 예년(例年) 달리 색다른 사색(思索)에 잠긴다. 꿈에 대한 호감(好感)을 갖고 있던지, 꿈을 보고 싶고 꿈을 좋게 해석(解釋)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동굴(洞窟) 속의 수중(水中)에서 Swimming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벗과 함께....

처음에는 공포(恐怖)에 쌓였었으나 나중에는

통쾌(痛快)하였다.

사방(四方) 사오(四.五) 십리(十里) 되는

대(大) 동굴(洞窟) 속의 수중(水中)에서

좌왕우왕(左往右往)....

그리고 밖에 나와 보니

주변(周邊)에는 인가(人家)가 있었다.

주변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바로 내가 헤엄치던 대(大) 동굴(洞窟)....

그 안에 금붕어가 있길래 몇 마리 잡아 왔다.'


어떠한 의미(意味)가 내포(內包)된 꿈인지 일 년 열두 달 두고 보야야 할 일이다.

자유자재(自由自在)의 수중(水中) Swimming은

통쾌(痛快)한 사실이나

어쩐지 좁은 세계에서 움직일 것만 같고,

돌아오는 길의 금붕어는 올해에는 아마 장가갈 팔자라는 뜻일지 모르겠다.


아침 식사(食事)는 역시(亦是) 황(黃) 대령(大領)

식구(食口)와 함께 떡국 한 그릇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식사(食事) 도중(途中) 황(黃) 대령(大領)의 "너는 너 처가(妻家) 집에 가서 먹지 왜 여기서 먹어"라는 농담은 어쩐지 괴로웠다.

처가(妻家)도 없고 물론 내 집도 없으니 먹는 집이 내 집이지 별(別) 다를 바 있소......


하오(下午) 한 시(時)가 되도록 집에 있었다. 혹(或)이나 정희(正姬)의 전화(電話)라도 있지 않을까 하여...... 어젯밤 Victory Team Room에서 약속(約束)은 아마 무슨 사고(事故)가 있는 모양(模樣)이다.


전화가 와서 Victory에서 정희(正姬)를 만났다. 새해에 새 맛으로 그리고 새롭게 정희(正姬)를 대(對)해야지 괴롭던 과거(過去)이나 새해를 맞으며 행복(幸福)의 언덕으로 둘이서 함께 노력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작야(昨夜)의 약속(約束)은 Mr. 황(黃) 일행(一行)과 함께 요리(料理) 집에 갔다는 말로 순간(瞬間) 불쾌(不快)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범인(凡人)의 신경질(神經質)이라 생각하고 순간(瞬間)으로 Forget 할 수밖에......

정희(正姬)가 냉면이 먹고 싶다기에 냉면을 먹으러 갔다. 몸에 이상(異常)이 생긴 모양(模樣)이다. 선(善)으로 향하여 선처(善處)하자.


비련(悲戀)의 공주(公主) 에리자베스 영화(映畵)는 퍽이나 재미있었다.

저녁에는 필운동(弼雲洞) 집에 불을 때고 Mr. 정재용을 동반(同伴)하여 Beer 다섯 병으로 새해를 시작(始作)했다.


오래전(前)부터 정희(正姬)와 같이 술을 먹고 싶었지.....

오늘만이라도 정희(正姬)와 함께 새해의 새 밤을 보내고 싶었다. 자정이 넘고 두시가 되고 새벽이 되기까지

정희(正姬)와 단둘이 병신(丙申)의 새해, 행복(幸福)의 새해, 명랑(明朗)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아버님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 사진. 창씨개명(創氏改名)이 강요되던 시절이라 이름이 일본식으로 개명되어 있다.



고등학교 졸업앨범 편찬 위원들의 사진. 좌측에서 2번째가 아버님. 학교 교복이 아니라 무슨 죄수복을 입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물자가 귀하던 오래전 일제시대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의 사진이니 1943년이나 1944년쯤 되었을 것 같다.



고교 재학 시절 빙상부 모습. 첫 번째 사진 우측 2번째, 두 번째 사진 좌측 3번째가 아버님이다.


아버님이 다닌 학교는 평안북도 선천(宣川)에 있는 선천 상고였는데, 왜 빙상부 전원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SENSHO'라는 영문이 붙어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는데, 알고 보니 한자로 '宣川商高'라는 이름에서 '宣'과 '商'을 따서 '선상'이라고 줄여 부를 때 이 한자를 일본어식으로 발음하면 SENSHO가 된다.


이름도 학교명도 모두 일본어로 쓰이던 시절이었다.

우리들의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 세대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우측이 아버님. 바로 옆에 계신 분이 아버님 일기에 '정희'라고 표현되는 어머님이시다.



아버님과 어머님. 서울 시내 고궁에서 찍은 사진 같다.



창경궁(과거 이름은 창경원이었다)에서 찍은 아버님과 어머님 사진. 사진 속 날짜가 4287년 4월 24일이니 당시 사용하던 단기(檀紀)를 서기(西紀)로 환산해서 계산해 보면 1954년 4월 24일 초봄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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