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17-01)

by SALT

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그러나 숙하(叔河)야! 나를 미워하지를 마라.

오빠들을 원망(怨望)하지를 마라...........

오빠들은 거리에서 살 수가 없어서 탈출(脫出)했단다.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너와 같이

다 월남(越南)했더라면 얼마나 행복(幸福)했겠니

그날 너는 오빠가 타는 기차(汽車)에

같이 타려고 하지 않았지, 그때 같이 탔더라면

너도 나와 같이 공부(工夫)할 수가 있지 않았겠니?


그러나 숙하(叔河)야 오빠를 원망(怨望)하지 말라

나는 지금 가장 불행(不幸)한 운명(運命)에

처(處)해 있단다.

너와 같이 왔더라면 이런 불행(不幸)이 있겠니.....

숙하(叔河)야 울지 마라....

사람이 불행(不幸)에 처(處)해 있을 때는 더욱 강(强)해져야만 한단다.


만일(萬一) 네 눈에서 눈물이 나거든 그 눈물은 하늘을 미워하는 눈물이 돼라.

그 눈물은 나라를 미워하는 눈물이 돼라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百姓)은 아니건대.....

한(韓) 나라에 생(生)을 얻은 것이

틀림없이 불행(不幸)이다

그러나 숙하(叔河)야! 울지 마라

우리는 더 강(强)하게......




일본 강점기 1925년 일제시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셔서, 징용되어 만주에까지 끌려갔다가, 해방 후 고향 정주를 거쳐, 서울로 월남하셔서 대학을 다니셨던 아버님의 일기장에 있는 글이다. 글 속의 '숙하'는 아버님의 여동생, 즉 나의 고모님이다.


요즘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정말 '헬조선'같은 시절을 살았던 세대가 아버님 세대가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일기에서 나라와 하늘을 미워하라고 했겠는가?


아버님의 글에서는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분단되어 여동생과 헤어져야 했고, 또 그렇게 헤어진 채 남쪽, 북쪽 모두에서 고생스럽기만 한 삶을 살아야 했던 당시 운명에 대한 원망과 한탄이 가득 느껴진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방 정리하면서 어느 날 우연히 아버님이 젊은 시절 기록한 일기를 발견했다.

그 일기를 아버님의 남은 사진과 함께 글로 올린다.


아버님 일기장 표지에는 '좁은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님께서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문'을 연상하시며 그렇게 제목을 붙이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었는지 그건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께 문의 드릴수가 없어 잘 모르겠다......



젊은 시절의 아버님.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대학시절 사진 아닌가 싶다.



대학시절 사진. 우측이 아버님



아버님 대학 졸업 앨범 사진. 그런데 정작 졸업 앨범은 분실되고 없다.



중앙이 아버님인데 양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서 혹 졸업식 사진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버님 좌측에 있는 분은 바로 위의 사진에도 나오는데 꽤 절친한 분이었던 모양이다.



얼굴 가득 비치는 햇살이 참 따듯하게 느껴지는 사진이다.



어떤 군인들과 찍은 사진인데 중앙이 아버님. 뒤에 보이는 나무판자로 된 주택이 1940~50년대를 보여 주는 것 같다.



맨 우측이 아버님, 대학시절 같기도 하고 졸업 직후인 것 같기도 하다. 4명의 남자 뒤로 보이는 주택들과 민둥산이 사진 속 시절의 서울이 언제인지를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