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1956년 1月 2日 (月曜日) 맑음
12시가 넘어서 자리를 걷었다. 필운동(弼雲洞) 집도 오늘이 Last Time인 것 같다. 일어나기도 전에 새로 오는 아낙네가 구멍탄(炭) 아궁이를 만드느라고 야단 법석이다.
정희와 가정(家庭)을 가져야 하겠다. 그러나 때때로 아직 정희의 태도는 나로 하여금 절대(絶對)에 가까운 자신을 주지 않는다. 自身(자신)이 왜 自信(자신)을 갖지 않느냐고? 그것도 까다로운 질문(質問)이다....
우리가 아내와 남편의 관계(關係)를 갖는다는 것도 아직 거리(距離)가 존재(存在)하지 않을까? 절대(絶對)에 가까울 때 까지는....
타인(他人)에게 잔소리를 들었을 때 성을 내지 말자, 또 성이 났을 때에 잔소리를 하지 말자.
노하기 잘하는 사람은 타인(他人)을 벌하는 것 보다도 도리어 자신(自身)을 벌하는 수가 많다.
1956년 1月 4日 (水曜日) 맑음
오늘부터 관청(官廳)은 집무 개시(執務開始)이다. 아세아 반공연맹(亞細亞反共聯盟)도 사실상(事實上) 금일(今日)부터 사업(事業)을 시작(始作)하게 될 것이다.
하오(下午) 2시까지는 공교롭게 황 대령(黃大領)과 동반(同伴)하여 충무로(忠武路) 3가 등을 왔다 갔다 하다가 사무실(事務室)에 출근(出勤)하였다. 하오(下午) 5시경 정희의 전화(電話)가 있었다. Victory에서 만나 정희의 적적함을 위로(慰勞)해 주려고 했다.
1956년 1月 5日 (木曜日) 맑음
8th Army의 Mr. 박이 11시경 찾아와 인천사업(仁川事業)에 대하여 상의(相議)했다. 성사(成事)는 두고 보아야 할 일....
12시경 필운동(弼雲洞) 집에 가서 잔액(殘額)을 돌려받았다. 11월 5일부터 기산(起算)하여 오늘 1月 5日까지 ◎산분(算分)을 제(除)하고 H₩ 24,000 받았다. 있지 않았어도 한 달 분을 더 받은 얄미운 가주(家主)의 모습. 싸우다가 그만두었다. 단돈 십환이 귀한 때니 뜻있게 쓰자.
4시 50분 퇴근(退勤) 할 때까지 정희의 전화(電話)는 없었다. 오늘도 아마 결근(缺勤)한 모양(模樣)....
4시에 동화(東和) 지하(地下)에서 Mr. 박과 약속(約束) 하였으나, 시간(時間)이 늦어 5시 넘어 가보니 부재(不在), 약 30分 기다리다 청파동(淸波洞)으로 돌아갔다. 병환 중(病患中)의 정희가 혹(或)이나 전화(電話)가 있을까 하여 빨리 돌아갔다....
오늘은 국희(國姬) 엄마의 생일(生日) 날이라 양주(兩主)는 외출(外出).
8시 반경(八時半頃) 정희의 전화(電話)로 내일(來日) 12시 Victory에서 상봉(相逢)하기로 약속(約束)했다.
1956년 1月 7日 (土) 맑음
날씨가 매우 춥다. 영하(零下) 13도라는 레듸오 방송(放送)이다. 확실(確實)히 온돌방(溫突房)이라 잠자리에 불편(不便)은 있을 망정 춥지는 않다. 서울의 날씨가 춥다는 것을 비로소 오늘 느꼈다.
오래간만에 명동(明洞)에 나타나 삼화다방(三和茶房)에 들러 우 여사(隅女史)를 만나 홍 여사(洪麗史) 편(便)을 물었다. 홍 여사(洪麗史)에게 가능하면 병학사(兵學社)의 동업(同業)을 권고(勸告)하고 싶다.
잘 들린다는 충무로(忠武路) 도성다방(都星茶房)에다 연락(連絡)을 취(取)하여 놓았다.
하오(下午)에도 정희(正姬)의 연락은 없다.
몹시 춥고 몸이 불편(不便)해 나오지를 못하는 것인지....
◎ 표시 부분은 대부분 한자로 쓰인 오래된 일기 원문이 훼손되어 판독이 안 되는 부분.
아버님의 고교 졸업 앨범. 아버님은 평안북도 선천(宣川)에 있는 선천상고(宣川商高)를 졸업하셨는데, 그 이전 학창 시절이나 이후 서울에서 다니시던 대학 졸업 앨범은 모두 없어진 반면, 유독 고교 졸업 앨범만은 남아 있다.
앨범 제목은 追憶(추억)이며, 첫 번째 페이지 내용은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한자가 적혀 있는데, 각각 '학창생활기록', '제6회 졸업기념', '선천상업학교'이다.
학교 건물과 교무실 모습. 전쟁이 치러지던 일제시대라 그런지 선생님들도 모두 군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
학생들 모습도 고등학생이 아니라 모두 군복을 입은 군인처럼 보인다. 사진만 봐서는 고교 졸업 앨범인지 군부대 훈련소 사진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교실에서 수업받는 모습. 각 사진은 과목별 수업 장면을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사진 하단에 보면 한자로 公民(공민), 商作(상작), 國語(국어), 地理(지리), 商品(상품), 商算(상산), 英語(영어), 珠算(주산) 등 교과목 이름도 같이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국어'라고 표기된 가운데 사진의 칠판에 적힌 글자는 한글이 아니라 모두 일본어로,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던 시기 일본어가 국어로 강요되던 현장을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 같다.
사진 우측에 '全校生 一同(전교생 일동)'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으로 봐서, 전교생 모두가 모여 함께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아버님이 살아 계셨으면 94세이니 사진 속에 계신 분들 중에는 현재까지도 생존해 계신 분도 적지 않게 계실 것 같다.
일기 속에 '정희'라고 표현된 어머님과 찍은 사진. 어느 바닷가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 같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거리를 나란히 걸어 가시는 모습. 두터운 외투로 보아 한겨울인 것 같다. 사진 우측에는 복덕방이라는 간판의 일부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