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한국 음식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15)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15. 베이징의 한국 음식

신입사원 시절 지구 정 반대편 중남미 지역을 담당했는데, 중남미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한국에서 가는 직항 노선은 없었고 대신 미국의 뉴욕이나 LA와 같은 도시에서 항공기를 갈아타고 출장을 다녀야 했었다.


한식을 유독 좋아했던 나는 그렇게 뉴욕이나 LA를 경유할 때는 꼭 코리아타운의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한국 식당이 그다지 많지 않던 중남미와는 달리 미국의 대도시에 있는 코리아타운에는 너무나 다양한 한국 식당들이 있었고, 또 한국 교민분들이 많아 그런지 음식 맛도 한국의 웬만한 식당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 당시 그곳에서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한 번 먹으면 다음 여정까지 갈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미주가 아니라 중국의 베이징에 주재하게 되었는데, 중국 음식은 고기가 많이 사용되거나 기름진 음식이 많아서 육식을 못하는 내게는 그다지 맞지 않았고, 결국 베이징에서도 나는 주로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했었다.


베이징의 한국 식당도 당연히 베이징 최대 코리아타운 격인 '왕징(望京)'에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한국 음식 또한 다양성과 맛에서 미국 코리아타운의 한국 식당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왕징은 법인이나 집에서는 좀 멀어서 1주일에 한번 이상은 다니기 어려웠다.




너무 자주 다녀 구내식당처럼 인식돼서 그런지 식당 이름이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베이징 법인이 있던 건물에도 한국 식당이 하나 입주해 있었다.


그런데 이 식당은 1층 도로변도 아니고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사무공간 한편인 3층 구석에 있었다. 3층에 상업용 시설은 이 식당이 유일했었는데, 이 식당이 이렇게 외진 곳에서도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건물과 바로 옆 건물에 우리 회사 및 계열사 사무실이 모두 밀집되어 있어 근처에 한국인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계열사 직원들까지 모두 합치면 그 근처의 사무실에 있었던 한국인 주재원 및 교민 수가 적어도 300여 명 이상 되었을 것이고, 또 그 외에도 중국의 각 도시에 흩어져 있던 지방의 법인이나 한국에서 출장 오는 한국인도 매일 수십 명 정도 있었을 것이니, 그 한국식당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고객 수는 항상 어느 정도는 확보되어 있다고 그 식당 사장님은 판단했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 음식이나 다른 음식을 먹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어쩌다 한두 번이지 대다수의 한국인 주재원들은 통상 한국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회사 근처에 한국 식당이 오직 이 식당밖에 없었기 때문에 점심때 이 식당에 가면 이 부서 저 부서로 흩어져서 근무하고 있었던 거의 모든 주재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매일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그 식당이 마치 회사 구내식당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고기를 못 먹었던 나는 이 식당에서 된장찌개나 생선구이를 주로 먹곤 했었는데, 사실 이 식당 음식 맛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점심은 이곳에서 먹더라도 저녁에 회식이나 모임을 가질 때는 야근으로 멀리 갈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굳이 이 식당을 택하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마진이 높은 술도 팔 수 있고, 술안주 등 단가가 비싼 음식이 주로 팔리는 저녁 시간에 손님이 그렇게 없어서인지 결국 이 식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고, 회사 근처에 유일하던 식당이 없어진 이후엔 점심에 한식을 먹으려면 꽤 멀리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식당에서는 약 10여 명의 여성 종업원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20살도 안 돼 보이는 여성들이었고 모두 시골에서 돈을 벌려고 대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한편 특이한 점은 그들 모두 유독 키가 작았다는 점인데, 아마도 어린 나이에 가난한 시골에서 풍족하게 먹지 못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빈부차가 매우 심해서 대도시와 지방의 생활수준이나 소득 수준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컸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에게 어두운 기색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낙천적 모습에 항상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내가 된장찌개를 주문하면, 어눌한 한국어로 "응, 된-장-찌-개"라고 주문을 반복하며 확인하던 그들의 순수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녀들은 숙박도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었는데, 그 시절 돈 벌기 위해서 시골에서 베이징과 같은 대도시로 와서 일하는 식당 종업원들은 당연히 대도시의 그 비싼 숙박비를 해결할 수 없었고 결국 그렇게 일터인 식당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그런 그녀들에게 식당은 일터이면서 또 집이었던 셈인데, 박봉에, 장시간의 고된 서빙을 하면서, 잠자리까지 불편했음에도 그렇게 밝고 명랑한 표정을 지킬 수 있었던 그녀들의 여유와 만족이 대단했던 것 같았다.


그 식당이 문을 닫은 후 몇 년 지나서 대만에 근무하던 시절 베이징에 회의가 있어 출장을 갔을 때 그 식당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베이징 LG 타워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낯이 익은 종업원이 있어 기억을 더듬어보니 바로 예전 3층 그 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이었다.


그녀는 그 식당이 문 닫은 후, 또 다른 한국 식당인 그곳으로 옮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단순히 서빙만 하는 종업원이 아니고, 관리자용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는 식당 중간급 매니저로 승진되어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도 흘렀고, 승진도 되었지만, 낙천적이고 미소가 편한 그 얼굴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그녀를 알아봤지만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내가 예전 3층에 있던 식당에 자주 갔던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고 그 식당에 대해 얘기를 하니, 그녀도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나를 대해줬고 반가운 기분에 매상 올려 준다고 음식도 몇 개 더 시켜 먹기까지 했었다.


(LG 타워 내 한국식당 모습)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hmk227&logNo=14015287081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일죽(一竹)'이라는 한국식의 일본 식당에도 자주 갔었다. 외관과 식당명은 일본풍이었지만 한국 음식과 차이가 없는 메뉴도 많았다.


이 식당은 베이징 현대자동차 빌딩 지하에 있었는데, 내가 근무하던 법인 사무실에서는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니었지만 음식이 매우 정갈하고 맛이 좋아서 자주 다녔던 곳이다. 내 기억으로는 베이징 근무 기간 먹어 본 한국 음식 중 이 식당 음식이 가장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식당에는 지분을 갖고 있는 동업자분인지 아니면 월급만 받는 사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 책임자가 한분 계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의 조선족이었다. 하지만 말투가 조선족 말투가 전혀 아니었고 한국 표준말과 너무도 차이가 없어 처음에는 당연히 한국인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전라도나 경상도 등 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도 서울에서의 거주기간이 길어지면 말투가 자연히 서울 말투로 바뀌어 가게 되는 것처럼, 같은 동포인 조선족도 표준말을 오래 접하면 당연히 서울 말투로 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비슷한 경우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서울에서 태어나고 20대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사촌누나가 포항 남자를 만나서 포항에 가서 살게 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언젠가 오랜만에 만나 보니 너무나 구수하고 또 자연스럽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좀 놀라서, "누나 고향이 어디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더니 자신의 사투리가 그렇게나 심하냐며 사촌누나는 허허 웃기만 했다.

그 집 매운탕은 정말 맛있었는데, 특히 전날 과음한 경우에 다음날 점심에 그 집 매운탕을 먹으면 숙취까지 한순간에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베이징 법인 근무를 마치고 광저우, 타이베이, 홍콩에 근무할 때도 베이징 출장 가면 그 매운탕 맛이 그리워 가능하면 출장기간 중 꼭 한 번은 그 집에 가서 매운탕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베이징 가시는 분이 있으면 그 집 매운탕을 꼭 추천하고 싶은데 아마 이제는 이 식당도 문을 닫은 것 같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빌딩 지하 일죽)

https://blog.naver.com/galtensh/220032402275




좀 특이한 한국 식당도 있었다. 법인 사무실이 있던 건물 앞 큰길 건너편에 작은 사무실들이 다수 입주한 'SOHO'라는 지역이 있었는데, 사무실이 많으니 건물 1~2층에는 당연히 식당들이 꽤 많이 입점해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한국 식당이었다.


그런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식당은 한국 식당이 아니라 중국 식당이었다. 하지만 중국식의 중국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한국의 중국집에서 먹었던 그런 한국식 중국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짜장면, 짬뽕, 깐쇼새우 등 한국에서 먹었던 메뉴는 다 있었고 맛도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중국의 중국 식당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단무지와 양파를 반찬처럼 주는 것도 한국과 똑같았다.


제공되는 음식 메뉴도 그렇지만 또 사장님 부부가 한국말을 너무도 완벽하게 해서 당연히 한국인이 중국에 와서 한국식 중국 음식을 팔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단골이 되어 자주 가게 되다 보니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사장님 말씀은 자신과 부인은 한국에서 태어난 화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부부였는데 서울에 있는 중국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결혼을 마치고 중국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성장했으니 당연히 한국어는 완벽했고, 음식도 한국식 중국 음식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식당은 남편이 주방일을 담당하고 부인이 카운터 일을 보는 형태였는데, 두 부부 말고도 한 5살쯤 돼 보이는 딸아이가 항상 매장에 나와 있었다. 사장 부부가 모두 식당에 나와서 일을 하다 보니 아이를 볼 사람이 전혀 없어 아예 출근할 때 식당으로 같이 데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5살밖에 안된 아이지만 기특하게도 그 아이는 점심 시간 사장 부부가 한참 바쁘게 일할 때는 전혀 울지도 않고 귀찮게 하지도 않으며 항상 혼자서 잘 놀고 있었다. 물론 이 아이도 당시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중국에 오래 살게 되면서 점차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왕징에도 한국에서 먹었던 중국 음식 맛과 똑같은 음식을 제공하는 중국 식당이 몇 군데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왕징은 너무 멀어 점심에 그곳에 가서 식사를 하기는 어려웠는데, 이렇게 회사 가까운 곳에 한국에서 먹던 맛과 똑같은 음식을 제공하는 중국 식당이 생기니 너무도 편하고 좋았다.


음식 맛도 꽤 좋아서 그 근처에 근무하는 한국인 사이에서 그 식당의 인기가 점점 많아져 점심때 늦게 가면 나중에는 자리 잡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거기서 즐겨 먹던 '깐쇼새우' 맛은 지금도 그립다.


좀 재미있는 모습을 이 식당에서 보기도 했었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당 근처 사무실에 근무하는 것으로 보이는 백인들이 4~5명 무리 지어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먹는 음식도 짬뽕과 짜장면 같은 것이었는데, 백인들이 베이징까지 와서 한국식 중국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었다. 혹 그것을 정통 중국 요리로 잘못 이해하고 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SOHO 거리 모습)

1. https://bbs.zhulong.com/101010_group_201803/detail10018571/

2.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ban316&logNo=130155234424&from=search&redirect=Log&widgetTypeCall=true&directAccess=false




2005~6년 당시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시절로, 이 드라마 영향으로 중국에서는 지방 소도시에까지 한국 식당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던 시절이었다.


그 많은 식당 중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 외에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도 있었는데,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들 중에는 조리 방식이 중국식으로 상당히 많이 변해버린 그런 음식을 제공하는 곳도 있어서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김치찌개 위에 '고수(香菜, 샹차이)'가 뿌려져 나오는 그런 식당도 있었다.


물론 고수에 익숙해진 한국인 중에는 은근히 고수의 독특한 맛에 빠지게 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고수와 함께 먹는 김치찌개를 오히려 즐기기도 했었겠지만, 나처럼 고수를 싫어하거나 한국에서 먹던 맛의 한국 음식을 찾았던 사람들은 그렇게 중국화 된 맛의 음식을 제공하는 베이징의 한국 음식점은 한번 가서 그 조리방식을 알게 된 이후에는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징이 아니라 출장 등으로 처음 방문하게 되는 도시에 가면 어느 식당이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조리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한국식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으로 잘 못 알고 들어갔다가 한국 음식도 중국 음식도 아닌, 생소하고 특이한 음식을 먹어야만 했던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한 식당들은 당연히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조선족 또는 심지어 조선족도 아닌 한족이 음식을 만드는 식당들도 있었다.


특히 인구가 많지 않은 지방 소도시의 한국식당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 심했던 것 같은데, '광저우'편에서 언급하겠지만 중국 남부 지방 소도시에 있는 어느 한국식당에서 북엇국을 주문했는데 엉뚱하게 개고기탕이 나온 적도 있고, 티엔진의 외곽에 있는 식당에서는 오징어 볶음을 시켰다가 맛이 너무 이상해 도저히 먹지 못하고 그대로 나온 적도 있었다.



우리가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북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도 베이징에는 꽤 있었는데, 그중 자주 갔던 곳은 '류경식당'과 '해당화'라는 곳이었다.


두 식당 모두 베이징 시내에 여러 개의 점포를 갖고 있었던 체인점이었는데, '류경식당'은 '뉴런지에(女人街)'있는 곳을 자주 갔었고, '해당화'는 '똥따치아오(東大橋)' 근처에 있는 곳을 자주 갔었다.


(해당화 '똥따치아오'점 모습)

http://kr.aving.net/news/view.php?articleId=11883


내 기준으로는 베이징의 북한 식당 중에서는 음식 맛에서나 서비스 수준 그리고 또 종업원의 미모에서마저도 해당화가 가장 우수했던 것 같다. 특히 해당화의 김치나 총각김치는 정말 너무도 맛있었는데, 어린 시절 겨울 내내 땅 속에 묻어 두었던 김칫독에서 막 꺼내 먹던 그 김치를 오랜만에 다시 먹는 것 같은 그런 향수 가득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말로는 실제로 북한에서 그렇게 땅 속에 묻어 두었던 것을 가져온다고 했는데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다.


똥따치아오(东大桥) 해당화에서 겪었던 일이다. 여러 명이 같이 가서 방에서 식사를 할 경우 북한 종업원들이 방으로 들어와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연주나 노래 같은 간단한 공연을 하는 서비스를 해 주곤 했었다.


하루는 같이 간 일행들과 좀 조용히 할 얘기가 있어 공연을 하러 막 방에 들어온 종업원에게 "오늘은 공연을하셔도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일행과의 얘기가 끝나고 그 공연을 혹시 지금 다시 해줄 수 있냐고 문의를 하니, 이미 손님이 거절했으니 다시 공연해 줄 수 없다고 종업원은 딱 잘라 말했다. 아마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았다.


북한 사람들의 자존심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중국어 배울 때 중국인 선생에게서도 들을 수가 있었다. 자신이 중국 동북 지방에 살던 때 아는 북한인이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여 음식 같은 것을 간혹 주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받지 않는데, 자신이 자리를 비우고 나면 다 먹거나 아니면 싸간다는 것이었다.


그 중국인 선생의 기억으로는 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남에게 아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그런 사람들이라고 했다. 60~70년대만 해도 북한이 중국보다는 훨씬 더 잘 살았다는데,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도입 이후 상황이 역전되어서 이제는 우리 동포 북한인들이 중국인의 동정을 받는 처지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베이징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은 외모나 체격, 말솜씨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빼어난 수준이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 중 미모가 뛰어난 인력만 선발해서 중국 등 해외에 있는 북한 식당에 보낸다고 다.


그런데 그렇게 미모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한국인과 염문이 퍼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당화의 한 종업원과 모 회사의 한국인 주재원이 눈이 맞아 함께 제3 국으로 도피한 후에 그곳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2017년 전후로, 중국 내 북한 식당들이 UN의 대북 압박정책의 일환으로 상당수 철수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하니, 북한의 핵에 대한 무모한 집착 때문에 애꿎은 북한의 일반인만 해외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어쩌면 베이징을 다시 방문해도 너무나시원했던 해당화의 총각김치 맛은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북한 식당 철수 관련 기사)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8&aid=0004330246


그런데 이유는 다르지만, 북한 식당뿐 아니라 한국 식당도 최근에는 유사한 상황이라고 한다. 2005~6년 당시에는 이 글에서 언급한 한국 식당 말고도, 베이징 도심 곳곳에는 그 규모가 작지도 않은 한국 식당들이 많이 있었는데, 2019년 15년 만에 중국에 다시 부임했다는 특파원의 아래 기사를 보면, 중국 국력의 신장, 한국에 대한 배타적 정책 등등으로 베이징 한국 식당들도 과거 위상을 잃고 이제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라 한다.


(베이징 특파원의 한국 식당 관련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2354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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