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출근길 걸어서 5km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05)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5. 베이징 출근길 걸어서 5km


어릴 때부터 걸어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또 실제로 먼 거리를 자주 걸어 다니곤 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종로에 있던 YMCA에서 미아리고개 너머 돈암동에 있던 집까지 약 6km가 넘는 거리를 그 어린 나이에 혼자서 걸어갔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재개발 이후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대학 때도 시간 여유가 생기면 고향 돈암동은 물론 연희동, 아현동, 후암동, 용산동 등 서울 옛 동네 주택가 골목길들을 헤매고 다녔다.


좁은 골목길의 그림자, 햇살, 허름한 주택들이 참 정겹게만 느껴졌고 그렇게 작고 꼬불꼬불한 주택가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과거 추억 속의 아련한 공간으로돌아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곤 했다.


사진) 고향 돈암동 골목길. 한국 귀국 직후 2014년 8월에 찍은 사진인데, 당시 이미 재개발이 착수되어 대다수 집이 빈집 상태였던 바, 이제는 아마 대규모 아파트들이 사진 속 저 자리에 대신 들어서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대륙 도시로 골목이 거의 없는 Toronto 시는 예외였지만 Paris,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등 내가 주재했던 모든 해외 도시에서도 시간만 생기면 그 도시들의 많은 골목길들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때 찍어 놓았던 골목길 사진들이 꽤 많았는데 안타깝지만 거의 모두 분실해 이제는 그 모습 그 장면들을 다시 볼 수 없고 회상하기도 어렵게 되어 버렸다. 내 기억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분실된 셈이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차이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가 있지만, 차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만 보는 세상과 실제 그 차창 밖 세상 안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직접 걸어 다니면서 느끼는 세상은 정말 많이 다르다. 단언하지만 똑같은 길을 매일 다니더라도 차만 타고 다니면 걸어서 다닐 때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은 결코 느낄 수 없다.


건강을 위한 이유도 일부 있었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베이징 주재 시절에도 매일 걸어서 회사에 출근했다. 조양 공원 앞 아파트에서 구오마오(國貿) 인근의 회사까지 대략 5km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출근했는데, 길 중간에 육교도 건너야 했고 신호등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 다 포함해서 약 1시간 정도에 그 거리를 주파하고 회사에 도착하곤 했었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나 여전히 그렇게 걸어서 출근했는데 2005년 당시만 해도 베이징 올림픽 개최 전으로 거리의 도로포장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그 정도 거리를 걸어 회사에 도착하면 까만 구두가 허옇게 변할 정도로 먼지가 많이 붙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도착하면 무엇보다 우선 화장실부터 가서 구두의 먼지를 물로 모두 씻어낸 후 사무실로 들어가곤 했었다.


한편 그렇게 걸어서 출근하다 보니 매일 아침 출근길에 꽤 다양한 사람들과도 마주칠 수 있었다. 직장 출근하는 사람, 학교 가는 학생, 정류소에서 버스 기다리는 사람, 장을 보러 나온 사람, 길거리 식당에서 아침밥 먹는 사람, 작은 공원에 앉아 서로 담소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 너무나도 다양한 중국인들과 가까이서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런 그들과는 친밀한 대화를 서로 나누거나 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매일 그렇게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다 보니 나중에는 국적 차이와는 관계없이 꽤 반가운 이웃을 만나는 것 같은 그런 기분까지 들기도 했다.


결국 그들도 한국의 서울에서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던 사람들과 크게 차이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살면서 당면할 수밖에 없는 그 수많은 희로애락(喜怒哀樂)들을 경험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삶을 살았을 것이다....




걸으면서 재미있는 경험도 했는데, 한겨울 걸어서 출근할 때는 날이 몹시 추우니 당연히 두터운 외투에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5km라는 거리를 속보로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열이 나서 두터운 그 외투는 벗어서 손에 들고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럴 때 몸의 열을 빨리 식히기 위해서 겨울이지만 두터운 외투 안에는 항상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한겨울에 외투를 손에 들고서 반팔 차림으로 베이징의 거리를 열심히 속보로 걷는 날 보고 길가에 앉아 담소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너 춥지 않냐?(你不冷吗)"라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내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는 상황을 모두 설명하기 어려워 그저 짧게 나도 "춥다(很冷)"라고 답을 하곤 했는데, 그 말을 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한겨울에 두꺼운 외투는 손에만 들고 다니면서 "춥다"라고 말을 하니, 그들에게 내 답변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황당한 답변이었을 것이다.


사실 당시 내가 말하고자 했던 원문은 "원래 추워서 외투를 입고 나왔는데, 이렇게 빨리 장거리를 걷다 보니 몸에 열이 나서 그 열을 식히기 위해 외투는 벗을 수밖에 없었고, 빨리 열을 식히기 위해서 외투 안에는 반팔을 입고 다닌다."라고 말을 하려던 것인데, 이런 긴 문장을 중국어로 번역해 말할 실력이 전혀 안되니 그저 "나도 사람인데 안 춥겠냐?"라는 식으로만 짧게 답을 했던 것이었다.


베이징 공항에서도 비슷한 기억이 있는데, 항공기 탑승 전 보안 검사를 받을 때는 여느 공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외투는 벗고 검사를 받는다. 한 번은 겨울에 공항에서 보안 검사를 받기 위해서 검사인원이 보는 앞에서 두꺼운 외투를 벗고 반팔 옷을 입은 상태로 검사대에 올라섰더니 검사원이 놀라는 표정으로, 역시 "너 춥지 않냐?"라고 물어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사정 모두를 길게 중국어로 번역하기가 어려워 그저 "춥다"라고 간략히 답을 했는데, 순간 그 답을 들은 그 검사원이 검사하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이내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서 혼자 씩 웃으며 검사를 계속했던 기억도 있다. 멀쩡해 보이는 한 외국인이 한겨울에 베이징에 와서 반팔만 입고 춥다고 하고 있으니 미친놈쯤으로 보여 웃기만 하고 대꾸도 안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체질 탓인지, 두터운 외투 안에 또 긴팔의 옷을 입고 있으면 몸에 열이 날 때 정말 처리하기가 힘들고 매우 답답했다. 그래서 빨리 열을 식히기 위해 외투 안에는 어쩔 수 없이 한겨울에도 언제나 반팔을 입을 수밖에 없었는데, 회사에서 유독 나만 그렇게 하고 다녔으니 내가 꽤 특이한 체질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아파트 앞의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매일 아침 마주치곤 했던 아름다운 중국 여인도 있었다. 서쪽 위구르 지방 출신인지 피부도 유난히 희고 다소 이국적인 인상을 가진 서역인처럼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마주칠 때마다 말을 한 번 걸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번번이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다 얼마 후 내가 갑자기 중국 남부 광저우로 장기 파견 가게 되면서 매일 아침마다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던 그녀와의 짜릿한 조우의 시간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나버렸다.


출근길 중간쯤에서 마주치던 두 명의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부잣집 아이들인지 집 근처 학교에 다니지 않고 스쿨버스가 와서 태워가곤 했는데, 10인승쯤 돼 보이는 스쿨버스가 올 때까지 한 아이는 할머니가 다른 아이는 엄마가 항상 같이 기다려주곤 했었다. 조그만 아이들도 이후 약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장한 만큼 나는 더 늙어갔겠지만 말이다..


사진) 매일 걷던 거리의 한 부분인 쩐즈루(针织路) 근처. (2006년 10월 사진)


위 사진은 출근 시 매일 걷던 거리 한 부분으로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인 지역이었다. 그 당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비로 베이징 시내에는 이처럼 공사를 하는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사진에 보이는 지역에서도 우측의 완다(万达) 호텔 건물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인 상태였고,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도로도 포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진 왼편에는 꽤 멋진 담쟁이로 뒤덮인 오래된 미술학교 건물도 있었는데 이 일대 공사와 함께 그 낡은 건물도 당시 철거되었다.


당시에 이미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최근의 거리뷰를 보니 14년이라는 세월이 더 흐른 2020년 현재 사진 속 저 지역 모습은 또다시 많이 변해 있었다. 그렇게 점점 우리 과거는 새로운 것들로 바뀌고 대체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결국 2005~6년 매일 보던 그 거리는 이젠 영원히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위 사진 속 거리 최근 모습)
https://j.map.baidu.com/82/p7s


사진) 매일 걷던 거리의 또 다른 부분, 차오양루(朝阳路)와 진타이루(金台路) 교차점 근처다. 첫 번째 사진은 2006년 7월이고, 아래 두 장은 이후 8년 뒤 2014년 10월 베이징에 출장 갔을 때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장소도 최근 모습은 아래 거리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또 변해 있었는데, 외로 그나마 다른 거리들만큼 많이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위 사진 속 거리 최근 모습)

https://j.map.baidu.com/03/R2q




매일 걸어서 출근할 때 유명한 '중국식 길 건너기(中國式過馬路)'도 매일 목격했다.


중국식 길 건너기란 꽤 재미있는 방식의 길 건너기인데 길 건너려는 여러 사람 중 한두 명이 먼저 조금씩 도로 앞으로 걸어 나오면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따라 나와서, 결국에는 사람이 차도를 완전히 막아 길을 건너는 그런 방식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야금야금 전진해 길을 막아 버리니 신호등과 관계없이 차량 운전자는 꼼짝없이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서 행인들은 차도를 건너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출근길 5km 중간에 있는 도로들은 그들과 함께 섞여서 그렇게 건너 다녔다. 수백 명쯤 되는 무리가 그렇게 길을 건너는데 나 혼자만 신호등을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었다.


그때 그들과 함께 그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길을 건너던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영락없는 100% 순수 중국인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식 길 건너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250945?sid=104




내가 매일 아침 1시간씩 걸어서 출근하던 것은 회사에도 꽤 알려져서, 한 번은 사장님께서 술자리에서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걸어서 출근하냐?"라고 질책하듯이 질문한 적이 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는데, 결국 솔직히 평소에 생각했던 그대로 차 창밖으로만 보는 세상과 걸으면서 직접 느끼는 세상은 많이 다른데 내가 영업하고 거주하는 지역을 더 많이 느끼기 위해 걸어 다닌다고 답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답에 뭔가 좀 더 말을 하려는 듯했던 사장님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이후에는 다른 주제로 화제를 바꾸셨다.


사진) 회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 해가 짧은 겨울에 좀 일찍 출근하면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은 상태였고, 이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하늘에 떠 있는 달(사진 중앙 흰 점)도 볼 수 있었다 (2006년 11월)




아침에는 그렇게 걸어서 다녔지만 저녁에는 기사가 운전해 주는 내 차를 이용해서 귀가했다. 통상 저녁에는 술자리가 많아 술 취한 상태로 베이징의 거리를 걸어 다니기도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치안도 좀 걱정돼서 해가 떨어진 저녁이나 야간에는 기사를 불러서 차를 타고 다녔다.


당시 중국의 운전 관행은 꽤 거칠어서 운전을 하는 것이 좀 위험했는데 특히 외국인이 운전하던 차가 사고를 내게 되면 외국인이 봉변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일부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받아서 개인적으로 중국인 기사를 고용해서 차를 타고 다녔다.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기사를 고용해서 차를 타고 다녔는데 당시는 중국 돈으로 한 달에 약 2천 RMB를 주면 하루 종일 운전하는 기사를 고용할 수 있었다.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34만 원 정도이니 매우 저렴한 금액이었는데, 중국 물가가 한참 많이 오른 최근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일 것이다.




2005~6년 매일 아침 출근길에 그 시절의 베이징 거리들을 느끼면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니, 그 당시 마주치곤 했던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수많은 공사가 진행되던 시절이었고, 그러한 공사 이후에는 베이징의 모습은 변한 곳이 너무도 많아서 이제는 그 시절 걸어 다니며 보았던 것 중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들이 너무도 많게 되었.


그나마 몇 장 사진이 남아있어, 2005~6년 그 시절 출근길 거리를 회상하며 오래 전의 추억에 잠길 수 있으니 이것도 나름 큰 행운이고 요즘 말로 소확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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