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스위트홈 (2-2)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04)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4. 베이징의 스위트홈 (2-2)


전편 "3. 베이징의 스위트홈 (2-1)"에서 이어짐....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담을 기준으로 내외부 간 빈부격차가 그렇게 크다 보니 외부에서 아파트 단지로 진입하는 출입구 경비도 꽤 엄했는데, 황당한 얘기지만 나는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들어가는데도 번번이 제제를 받곤 했었다.


나름 고급차인 내 차를 타고 들어갈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걸어서 집으로 들어가려면 항상 아파트 단지 출입구 경비가 길을 막고, 누구냐? 어디를 가느냐? 왜 들어가느냐? 등등 온갖 질문을 해왔다.


결국 아파트 입주민 카드를 보여주어야만 그 시련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는데, 번번이 그래야 하니 망신스럽기도 해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내가 외모에 너무나도 신경을 쓰지 않아 옷차림이나 몰골이 담 밖의 가난한 중국인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들어갈 때뿐 아니라 베이징 거리를 걸어 다닐 때도 비슷한 경우를 당한 적이 적지 않다. 내 모습이 정말 거리의 흔한 중국인들과 너무도 구분되지 않아서였는지,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꽤 많은 중국인들이 외국인인 내게 길을 묻고는 했다.


한 번은 일요일에 예배를 마치고 따샨즈(大山子)에 있었던 교회 근처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꽤 젊은 중국인 남자 2명이 탄 자전거가 내 앞에서 갑자기 급정거를 하더니 베이징 방언이 매우 심한 억양으로 뭔가 말을 했다. 그들이 하도 급하게 멈춰 선 데다가, 또 너무 큰소리로 말을 하길래, 나는 한순간 혹 강도들을 만난 것 아닌가 싶어 잠시 당황하기도 했는데 잘 들어보니 그저 길을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외국인인 나는 그들이 묻는 장소가 어디인지도 전혀 모르겠고 또 중국어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과의 대화가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 아예 난 외국인이라 중국어를 전혀 못한다는 뜻으로 검지 손가락으로 내 입을 가리킨 후 바로 좌우로 손을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 내 행동에 그들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황급히 되돌아갔다. 중국어를 못한다는 의미로 나는 그런 제스처를 했는데, 그들은 나를 벙어리로 이해했던 것이다.


인상 등 외관으로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잘 구분되지도 않는 실정에서 베이징 시내의 관광지도 아닌 후미진 동네 먼지만 가득한 길을 너무나도 허름한 옷차림으로 대낮에 타박타박 걸어 다니고 있었으니, 그들은 내가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단지 그 동네 토박이인데 우연히 벙어리였던 것으로 받아들여 당황하고 민망해서 급히 자리를 피한 것이었다.




Palm Springs에 1년 정도를 살다가, 그 옆에 새로 건축한 아파트 Park Avenue (公园大道, 꽁위엔다따오)로 이사를 갔다.


어차피 혼자만 사는 인생이라서 Paris나 Toronto에서처럼 한번 집을 정해서 살면 귀찮아서 이사를 다니지 않았는데, 베이징에서는 왜 1년 만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는지 뭔가 굳이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을 것 같기는 한데 꽤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그 이유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Park Avenue 아파트)

https://beijing.maxviewrealty.com/village/park-avenue-45.html


사진) Park Avenue 내부 및 창 밖으로 보이는 조양공원 모습 (2006년 10월)


새로 이사 간 아파트 역시도 약 40평 정도의 크기에 방 3개, 화장실 2개가 있는 고급 아파트로 바로 전 거주했던 Palm Springs와 월세는 비슷했지만 새로 건축된 아파트라 내부 구조는 훨씬 좋았고, 또 조양공원(朝陽公園)이 바로 보이는 위치여서 베란다에서 보이는 경치도 매우 좋았다.


아마도 이 집이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 본 집 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집이었던 것 같다. 역시 주재원 신분으로 주택비가 회사에서 지원되었던 덕분에 감히 누릴 수 있었던 호사였다.


하지만 새로 건축된 아파트에 첫 입주한 경우였고, 게다가 창밖으로는 공원의 넓은 숲까지 보이던 아름다운 경치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말 안 좋았던 것이 있는데, 그즈음 베이징 시내 공기가 너무도 안 좋아져 정말 최악이었다는 점이다. 흰색 셔츠는 하루만 입어도 팔목이나 목 주위가 새까맣게 변했고, 코를 풀면 마치 먹물을 들여 마셨던 것처럼 콧물은 온통 까만색이었다.


그 정도로 공기가 좋지 않다 보니 집안도 예외가 아니어서, 창문을 꽉꽉 닿아 놓고 출근을 해도 미세먼지가 하루 종일 창문 틈으로 유입되어 바닥에 잔뜩 쌓였고, 퇴근 후 들어와 샤워하고 잠시만 맨발로 마루 바닥 위를 걸어 다니면 바로 그 미세먼지에 발바닥이 새까맣게 변할 정도였다.


베이징에 오랜 기간 거주했던 주재원이나 주재원 가족 중에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아마도 매일 같이 들여 마셔야 했던 베이징의 이 미세먼지 영향이 상당 부분 있었을 것이다. 바닥에 새까맣게 쌓일 정도의 미세먼지들을 매일 코로 흡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베이징을 떠난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차량도 일부 통제하고, 미세먼지가 배출될 수 있는 시설들은 폐쇄하거나 좀 더 외곽으로 이전시키는 등의 다양한 개선 조치들이 취해졌고 그런 조치에 따라서 올림픽 기간 베이징 공기의 질은 상당히 좋아졌었다 한다.


다만, 안타깝게도 올림픽 종료 이후에 공기의 질은 또다시 원위치해서 최근 베이징의 공기 질은 여전히 2005~6년도 당시만큼 안 좋다는 말을 종종 전해 듣는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마셨고, 캐나다에서 Chivas Regal을 마셨다면, 베이징에서는 진류푸(金六福)란 백주를 마셨다. 진류푸는 장을 볼 때 기타 식품과 함께 아파트 근처에 있던 징커룽(京客隆)이라는 슈퍼마켓 체인점에서 구매했다.


그런데 요즘도 가끔 그런 소식을 접하지만 당시에도 역시나 중국에는 가짜 상품들이 꽤 많았었는데 특히 식품이 가짜인 경우에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에 문제를 야기시켰던 심각한 사례도 있어서 시중에서 판매되는 가짜 술을 마신 사람들이 부작용으로 장님이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었다.


워낙 그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나 역시도 그런 가짜 식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가격이 비싼 술은 가격차를 노린 가짜가 많이 만들어졌고, 반대로 너무나 싼 술은 그 자체로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 해서, 중간 가격대의 별 3개짜리 진류푸를 사서 마시곤 했다.


베이징 주재 시절 사진을 찾다 보니 거실의 식탁 위에 당시 즐겨 마셨던 진류푸가 올려져 있는 사진 역시 한 장 있던데, 사진으로나마 오랜만에 그 시절 그 술을 다시 보니 술맛도 기억나고, 반갑기도 했다.


사진) 식탁 위에 있는 붉은색의 진류푸 술병 (2006. 10월)


사진) Park Avenue 아파트 내부 여기저기. 좌측 하단의 사진에는 건조한 겨울철 실내에의 습기 공급을 위해 방열기 위에 물 담은 냄비를 올려놓은 것도 보인다 (2006. 10월)




베이징의 겨울은 역시 추웠는데, 당시 집안의 난방장치를 최대한 가동하고도 너무 추워서 누안치(暖氣)라고 불리는 별도의 전기 방열기 장치를 사서 방안에 갖다 놓고 밤에는 풀가동하고 자곤 했었다.


아울러, 베이징도 서울처럼 겨울에는 꽤나 건조해서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누안치 위에 물을 가득 채운 냄비를 올려다 놓고 잠을 자기도 했었다. 그저 가습기를 하나 사서 가져다 놓으면 되는데 혼자 사는 마당에 귀찮기도 해서 그냥 물을 담아 방열기에 올려놓는 것으로 가습기를 대신해서 겨울을 보냈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냄비 안의 물은 모두 다 밤 사이 증발해 버린 상태였던 것으로 봐서 실제 가습기와 같은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베이징의 추운 겨울 새벽에 잠도 덜 깬 피곤한 몸을 일으켜 꾸역꾸역 출근 준비를 하고, 아직도 온기가 가득 남아 있는 따스한 잠자리를 뒤로 그리며, 컴컴하고, 썰렁하고, 냉기만 가득한 가로등도 별로 없는 베이징의 거리로 나와 하염없이 회사로 걸어가던 일을 반복했었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지만 때로는 힘들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4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사진 속 아파트들처럼 따듯하고 포근한 Sweet Home이 있어서 나름 그 힘든 시간을 버텨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살던 고급 아파트 단지 밖의 낡고 허름한 집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집은 역시 Sweet Home이었을 것이다. 비록 물질적이고 외형적 면에서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그들의 집이 그들에게는 매일의 노동으로 너무나도 지쳐있는 자신을 품어주고 위로해주는 똑같은 Sweet Home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 편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가 있었을 것인데, 생각해 보면 그런 편안함과 행복함이 오직 단 한 번만 살 수 있는 우리의 인생에서는 고급 아파트보다는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살면 살수록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keyword
팔로워 270
이전 03화베이징의 스위트홈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