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스위트홈 (2-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03)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3. 베이징의 스위트홈 (2-1)


2005년 9월 베이징 도착 후 집을 구할 때까지 약 2달 정도 회사에서 2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야스거(雅詩閣)'라는 주거형 호텔에 체류했었다. 새로 부임했거나 몇 달간 장기 체류하는 출장자들 중에는 이 호텔에 숙박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법인에서 워낙 가까워 출퇴근하기 편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세탁기나 냉장고 등 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그릇, 냄비 등 취사도구도 모두 구비되어 있음에도 숙박비가 꽤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큰 방 두 개에 주방 하나 화장실도 두 개 있는 거의 30평쯤 되는 아파트 같은 이 호텔 숙박비는 당시 서울 방 하나짜리 호텔 숙박비의 1/5도 안되었던 것 같다. 숙박비가 이처럼 너무나도 저렴해서 좀 이상하고 미안한 생각까지도 들기도 했는데 14년이란 세월이 지난 요즘은 이 호텔의 숙박비도 중국의 급격한 경제력 부상, 물가 상승과 함께 동반 상승해 서울의 호텔 숙박비와 별 다른 차이가 없거나 어쩌면 좀 더 비싸졌을지도 모르겠다.




법인의 주재원들은 통상 자녀들의 과외라든가 또 자녀들이 다니는 외국인 학교와의 거리 등의 사유로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이나, 공항 근처의 고급 빌라 단지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가족이 없었던 나는 굳이 그런 것들을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었고, 되도록이면 한국인들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 아파트를 찾았는데, 조양공원(朝陽公園) 남문 근처에 있는 백인들이 주로 많이 거주하던 Palm Springs라는 아파트가 그런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중국어로는 쫑뤼취엔(棕榈泉)이라고 했는데, 주변 중국인 거주지역과는 높은 담으로 완전히 분리된 고급 아파트 단지로, 외국인이나 중국인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캐나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역시 회사에서 주택 비용을 부담해주는 덕분에 당시 중국 대졸 초임 한 달 치에 해당하는 월세를 내야 하는 이러한 고급 아파트에도 거주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해외 생활하면서 거주했던 주거지 같은 물질적인 측면만 본다면 나는 확실히 운 좋은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Palm Springs 아파트)

https://beijing.maxviewrealty.com/village/palm-springs-43.html


사진) Palm Springs 아파트 단지 출입구 및 내 집 현관문 (2006년 5월)


사진) Palm Springs 아파트 창 밖의 베이징 시내 모습 (2006년 5월 및 9월)


높은 담으로 분리된 이 고급 아파트 단지와 바로 앞 허름한 동네 사이에는 한눈에 봐도 너무도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담 안쪽이 개혁개방 정책의 결과로 부가 축적되기 시작하는 2000년대 초 중국이라면, 담 바깥쪽은 서울의 60~70년대 같은 모습으로 담 하나를 두고 두 지역 간 생활수준 차이나 거주환경 차이는 너무도 컸다. 즉 그만큼 빈부차가 너무나 뚜렷했던 것이었다.


출근하면서 화려한 아파트 단지의 정문을 벗어나면 곧바로 오래전 서울의 달동네에서 보던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리에서도 집안이 훤하게 보일만큼 작고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거리를 걷다가 보면 아침밥을 하는 아줌마, 학교 갈 준비하는 아이들, 부스스한 머리로 휴지 들고 동네 공동화장실로 향하는 아저씨 등등, 과거 어린 시절 서울의 달동네에서 보던 그런 모습과 너무 흡사한 모습을 그대로 다시 볼 수 있었다.


이제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과거의 그런 모습들을 눈앞에서 다시 생생하게 보고 있다 보면 마치 시간이 뒤로 거꾸로 흘러 유년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그만큼 부족한 것이 많은 삶을 살았을 가난한 그들의 얼굴 표정만은 바로 그 앞 높은 담 넘어 부자 아파트에 사는 중국인들의 표정보다 결코 어둡지 않았고 오히려 더 편하고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사는 것 같이 보였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더 많은 것에 집착하고 그 집착으로 인해 더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부자들보다, 주어진 훨씬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 수밖에 없는 '포기'와 같은 삶의 리를 어쩔 수 없이 이미 터득해서 그러한 표정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사진 우측 고층건물이 내가 거주했던 Palm Springs 아파트 단지. 사진 좌측에 있는 허름한 단층집이 서민들의 주택 겸 일터. (2006년 10월 차 안에서 찍은 사진)


영상) 2006년 10월 찍은 Palm Springs 단지 주변 모습.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고급 아파트와 그 아파트 단지 주변 군데군데 보이는 허름하고 낡은 단층집들이 대조된다.


한국에도 정말 국민 거의 모두가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해서 그때가 경제적으로는 풍성해진 현재보다 반드시 더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더 낭만이 있었고, 정이 있었고, 푸근했던 것 같다. 한국이 부를 얻고 성장해가면서 그러한 것들을 잃어버렸듯이, 중국 또한 성장해 가면서 똑같이 중요한 뭔가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사실 중국의 빈부차는 예상외로 매우 심각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혁개방의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서서히 부가 축적되어 가던 2005년 당시도 그랬다.


빈부차를 측정하는 지니(Gini) 계수를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는데, 2017년 기준으로 중국의 지니 계수는 46.7로 중남미나, 아프리카 국가와 유사할 정도로 빈부차가 크다. 같은 해 한국 지니 계수가 35.4였으니 공산당이 통치하는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보다도 훨씬 더 큰 빈부차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 지니계수 관련 기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4035694?sid=104


만민이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한다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살육까지 주저하지 않고 마침내 공산주의 국가를 만든 모택동의 공산혁명 결과가 결국은 자본주의 국가보다 빈부차가 더 심한 나라를 만든 셈이었으니, 모택동이 다시 살아서 이 결과를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베이징 법인의 현지인 직원들 중에는 중국 공산당 당원들도 있었는데, 그들과 이런 빈부차 문제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어 의견을 물으면 그들로부터 듣는 답은 항상 동일했다. 즉, 중국 공산당도 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나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당분간은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같은 답이었다.


즉, 중국 전체가 너무나 가난했던 실정이라 우선 부(富)를 만들어내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렇게 국가의 부가 축적되면 그다음 단계로 가난한 사람에게 그 부가 분배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혁개방을 이끌면서 등소평이 함께 내세운 선부론(先富論)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에서 계획하는 대로 과연 그렇게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정말로 미지수일 것 같다. 인간이 그들이 이미 움켜쥔 부와 그 부에 따라오는 권력을 쉽게 놓을 수 있을지....


결국 그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부르주아'가 가진 부(富)를 혁명이라는 강제적 방법을 동원해 '프롤레타리아'가 빼앗은 것이 바로 모택동의 공산혁명 아니었는지....




다음 편 "4. 베이징의 스위트홈 (2-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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