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걸어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또 실제로 먼 거리를 자주 걸어 다니곤 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종로에 있던 YMCA에서 미아리고개 너머 돈암동에 있던 집까지 약 6km가 넘는 거리를 그 어린 나이에 혼자서 걸어갔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재개발 이후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대학 때도 시간 여유가 생기면 고향 돈암동은 물론 연희동, 아현동, 후암동, 용산동 등 서울 옛 동네 주택가 골목길들을 헤매고 다녔다.
좁은 골목길의 그림자, 햇살, 허름한 주택들이 참 정겹게만 느껴졌고 그렇게 작고 꼬불꼬불한 주택가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과거 추억 속의 아련한 공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곤 했다.
사진) 고향 돈암동 골목길. 한국 귀국 직후 2014년 8월에 찍은 사진인데, 당시 이미 재개발이 착수되어 대다수 집이 빈집 상태였던 바, 이제는 아마 대규모 아파트들이 사진 속 저 자리에 대신 들어서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대륙 도시로 골목이 거의 없는 Toronto 시는 예외였지만 Paris,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등 내가 주재했던 모든 해외 도시에서도 시간만 생기면 그 도시들의 수많은 골목길들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때 찍어 놓았던 골목길 사진들이 꽤 많았는데 안타깝지만 거의 모두 분실해 이제는 그 모습 그 장면들을 다시 볼 수 없고 회상하기도 어렵게 되어 버렸다.내 기억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분실된 셈이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차이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가 있지만, 차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만 보는 세상과 실제 그 차창 밖 세상 안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직접 걸어 다니면서 느끼는 세상은 정말 많이 다르다. 단언하지만 똑같은 길을 매일 다니더라도 차만 타고 다니면 걸어서 다닐 때 느낄 수 있는 그 많은 것들은 결코 느낄 수 없다.
건강을 위한 이유도 일부 있었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베이징 주재 시절에도 매일 걸어서 회사에 출근했다. 조양 공원 앞 아파트에서 구오마오(國貿) 인근의 회사까지 대략 5km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출근했는데, 길 중간에 육교도 건너야 했고 신호등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 다 포함해서 약 1시간 정도에 그 거리를 주파하고 회사에 도착하곤 했었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나 여전히 그렇게 걸어서 출근했는데 2005년 당시만 해도 베이징 올림픽 개최이전으로 거리의 도로포장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그 정도 거리를 걸어 회사에 도착하면 까만 구두가 허옇게 변할 정도로 먼지가 많이 붙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도착하면 무엇보다 우선 화장실부터 가서 구두의 먼지를 물로 모두 씻어낸 후 사무실로 들어가곤 했었다.
한편 그렇게 걸어서 출근하다 보니 매일 아침 출근길에 꽤 다양한 사람들과도 마주칠 수 있었다. 직장 출근하는 사람, 학교 가는 학생, 정류소에서 버스 기다리는 사람, 장을 보러 나온 사람, 길거리 식당에서 아침밥 먹는 사람, 작은 공원에 앉아 서로 담소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 너무나도 다양한 중국인들과 가까이서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런 그들과는친밀한 대화를 서로 나누거나 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매일 그렇게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다 보니 나중에는 국적차이와는 관계없이 꽤 반가운 이웃을 만나는 것 같은 그런 기분까지 들기도 했다.
결국 그들도 한국의 서울에서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던 사람들과 크게 차이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살면서 당면할 수밖에 없는 그 수많은 희로애락(喜怒哀樂)들을 경험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삶을 살았을 것이다....
걸으면서 재미있는 경험도 했는데, 한겨울 걸어서 출근할 때는 날이 몹시 추우니 당연히 꽤 두터운 외투에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5km라는 거리를 속보로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서 열이 나서 두터운 그 외투는 벗어서 손에 들고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럴 때 몸의 열을 빨리 식히기 위해서 겨울이지만 두터운 외투 안에는 항상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한겨울에 외투를 손에 들고서 반팔 차림으로 베이징의 거리를 열심히 속보로 걷는 날 보고 길가에 앉아 담소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너 춥지 않냐?(你不冷吗)"라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내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는 상황을 모두 설명하기 어려워 그저 짧게 나도 "춥다(很冷)"라고 답을 하곤 했는데, 그 말을 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한겨울에 두꺼운 외투는 손에만 들고 다니면서 "춥다"라고 말을하니, 그들에게 내 답변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황당한 답변이었을 것이다.
사실 당시 내가 말하고자 했던 원문은 "원래 추워서 외투를 입고 나왔는데, 이렇게 빨리 장거리를 걷다 보니 몸에 열이 나서 그 열을 식히기 위해 외투는 벗을 수밖에 없었고, 빨리 열을 식히기 위해서 외투 안에는 반팔을 입고 다닌다."라고 말을 하려던 것인데, 이런 긴 문장을 중국어로 번역해 말할 실력이 전혀 안되니 그저 "나도 사람인데 안 춥겠냐?"라는 식으로만 짧게 답을 했던 것이었다.
베이징 공항에서도 비슷한 기억이 있는데, 항공기 탑승 전 보안 검사를 받을 때는 여느 공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외투는 벗고 검사를 받는다. 한 번은 겨울에 공항에서 보안 검사를 받기 위해서 검사인원이 보는 앞에서 두꺼운 외투를 벗고 반팔 옷을 입은 상태로 검사대에 올라섰더니 검사원이 놀라는 표정으로, 역시 "너 춥지 않냐?"라고 물어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사정 모두를 길게 중국어로 번역하기가 어려워 그저 "춥다"라고 간략히 답을 했는데, 순간 그 답을 들은 그 검사원이 검사하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이내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서 혼자 씩 웃으며 검사를 계속했던 기억도 있다. 멀쩡해 보이는 한 외국인이 한겨울에 베이징에 와서 반팔만 입고 춥다고 하고 있으니 미친놈쯤으로 보여 웃기만 하고 대꾸도 안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체질 탓인지, 두터운 외투 안에 또 긴팔의 옷을 입고 있으면 몸에 열이 날 때 정말 처리하기가 힘들고 매우 답답했다. 그래서 빨리 열을 식히기 위해 외투 안에는 어쩔 수 없이 한겨울에도 언제나 반팔을 입을 수밖에 없었는데, 회사에서 유독 나만 그렇게 하고 다녔으니 내가 꽤 특이한 체질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아파트앞의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매일 아침 마주치곤 했던 아름다운 중국 여인도 있었다. 서쪽 위구르 지방 출신인지 피부도 유난히 희고 다소 이국적인 인상을 가진 서역인처럼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마주칠 때마다 말을 한 번 걸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번번이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다 얼마 후 내가 갑자기 중국 남부 광저우로 장기 파견 가게 되면서 매일 아침마다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던 그녀와의 짜릿한 조우의 시간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나버렸다.
출근길 중간쯤에서 마주치던 두 명의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부잣집 아이들인지 집 근처 학교에 다니지 않고 스쿨버스가 와서 태워가곤 했는데, 10인승쯤 돼 보이는스쿨버스가 올 때까지 한 아이는 할머니가 다른 아이는 엄마가 항상 같이 기다려주곤 했었다. 그 조그만 아이들도 이후 약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장한 만큼 나는 더 늙어갔겠지만 말이다..
사진) 매일 걷던 거리의 한 부분인 쩐즈루(针织路) 근처. (2006년 10월 사진)
위 사진은 출근 시 매일 걷던 거리 한 부분으로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인 지역이었다. 그 당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비로 베이징 시내에는 이처럼 공사를 하는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사진에 보이는 지역에서도 우측의 완다(万达) 호텔 건물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인 상태였고,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도로도 포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진 왼편에는 꽤 멋진 담쟁이로 뒤덮인 오래된 미술학교 건물도 있었는데 이 일대 공사와 함께 그 낡은 건물도 당시 철거되었다.
당시에 이미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최근의 거리뷰를 보니 14년이라는 세월이 더 흐른 2020년 현재 사진 속 저 지역 모습은 또다시 더 많이 변해 있었다.그렇게 점점 우리 과거는 새로운 것들로 바뀌고 대체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결국 2005~6년 매일 보던 그 거리는 이젠 영원히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중국식 길 건너기란 꽤 재미있는 방식의 길 건너기인데 길 건너려는 여러 사람 중 한두 명이 먼저 조금씩 도로 앞으로 걸어 나오면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따라 나와서, 결국에는 사람이 차도를 완전히 막아 길을 건너는 그런 방식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야금야금 전진해 길을 막아 버리니 신호등과 관계없이 차량 운전자는 꼼짝없이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서 행인들은 차도를 건너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출근길 5km 중간에 있는 도로들은 그들과 함께 섞여서 그렇게 건너 다녔다. 수백 명쯤 되는 무리가 그렇게 길을 건너는데 나 혼자만 신호등을 따라서 움직인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었다.
그때 그들과 함께 그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길을 건너던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영락없는 100% 순수 중국인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아침 1시간씩 걸어서 출근하던 것은 회사에도 꽤 알려져서, 한 번은 사장님께서 술자리에서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걸어서출근하냐?"라고 질책하듯이 질문한 적이 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는데, 결국 솔직히 평소에 생각했던 그대로 차 창밖으로만 보는 세상과 걸으면서 직접 느끼는 세상은 많이 다른데 내가 영업하고 거주하는 지역을 더 많이 느끼기 위해 걸어 다닌다고 답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답에 뭔가 좀 더 말을 하려는 듯했던 사장님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이후에는 다른 주제로 화제를 바꾸셨다.
사진) 회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 해가 짧은 겨울에 좀 일찍 출근하면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은 상태였고, 이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하늘에 떠 있는 달(사진 중앙 흰 점)도 볼 수 있었다 (2006년 11월)
아침에는 그렇게 걸어서 다녔지만 저녁에는 기사가 운전해 주는 내 차를 이용해서 귀가했다. 통상 저녁에는 술자리가 많아 술 취한 상태로 베이징의 거리를 걸어 다니기도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치안도 좀 걱정돼서 해가 떨어진 저녁이나 야간에는 기사를 불러서 차를 타고 다녔다.
당시 중국의 운전 관행은 꽤 거칠어서 운전을 하는 것이 좀 위험했는데 특히 외국인이 운전하던차가 사고를 내게 되면 외국인이 봉변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일부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받아서 개인적으로 중국인 기사를 고용해서 차를 타고 다녔다.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기사를 고용해서 차를 타고 다녔는데 당시는 중국 돈으로 한 달에 약 2천 RMB를 주면 하루 종일 운전하는 기사를 고용할 수 있었다.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34만 원 정도이니 매우 저렴한 금액이었는데, 중국 물가가 한참 많이 오른 최근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일 것이다.
2005~6년 매일 아침 출근길에 그 시절의 베이징 거리들을 느끼면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니, 그 당시 마주치곤 했던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들이 다시 떠오르기도한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수많은 공사가 진행되던 시절이었고, 그러한 공사 이후에는 베이징의 모습은 변한 곳이 너무도 많아서 이제는 그 시절 걸어 다니며 보았던 것 중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들이 너무도 많게 되었다.
그나마 몇 장 사진이 남아있어, 2005~6년 그 시절 출근길 거리를 회상하며 오래 전의 추억에 잠길 수 있으니 이것도 나름 큰 행운이고 요즘 말로 소확행인 것 같다....